참을 수 없는 타인의 즐거움
참을 수 없는 타인의 즐거움
  • 이승훈 기자
  • 승인 2013.11.06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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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는 길


학부생들은 졸업한 선배들에게 연구나 회사 일의 재미에 대해 묻곤 하지만, 졸업한 친구들은 서로 일이 할만한지에 대해 묻는다. 어린 누군가에게 미래에 하게 될 일이란 ‘흥미’ 혹은 ‘꿈’에 걸맞은 단어지만, 나이를 먹은 당사자들에게 일이란 ‘책임’, ‘의무’에 가까운 단어들로 변해있다.
일을 공부 혹은 연구로 치환해도 이야기는 달라지지 않는다. 처음에 꿈과 즐거움을 말하던 친구들은 나이를 먹으며 점점 지겨움과 책임을 말하기 시작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전하는 ‘잘 지내니’라는 말에는 보통 ‘그냥 살지’, ‘힘들다’ 등의 자조적인 푸념들이 돌아오며 나만이 힘든 것이 아니라 모두가 힘들다는 공감대 뒤에 숨어 나의 태만함을 합리화한다. 나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의 문제, 모두의 문제라는 식으로. 마치 ‘즐거운 일’ 같은 것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처럼.
혹여 누군가 ‘재밌게 살고 있어’라는 이교도적인 말을 내뱉을 때면 그 말을 부정하기 위해 애쓴다. 누군가 일을 즐기고 있다는 것은 ‘일은 원래 재미없는 것이다’라는 그들의 진리에 적합하지 않기에 최선을 다해 그 반례를 깨부순다. ‘아직 어려서’, ‘업무의 강도가 낮아서’와 같은 그럴법한 이유를 만들어내 곧 힘들어질 것이라며 그의 즐거움을 끌어내리고 나서야 비로소 안도한다. 모두 나처럼, 우리처럼 힘들어해야만 한다며 타인의 즐거움을 훼방놓으며 나의 불안함을 해소한다.
어쩌면 사회가, 그리고 현실이 그러할지도 모른다. 정말 사는 것은 별것 없는 일이며 다들 힘들게 살아가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어려움을 타인을 통해 정당화하고 일의 즐거움을 부정하는 것은 개인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일을 힘들게 만드는 수많은 이유만을 바라보기보다는 일을 즐겁게 만드는 단 몇 가지의 이유만을 생각하며, 비록 진부할지라도 즐거움 그리고 꿈을 이야기하는 것이 더 아름다운 일이다. ‘사는 게 별것 없다’라고 생각하며 현재의 어려움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안주하기에 우리는 너무 어리다. 별것 없는 인생이 되지 않기 위해서, 꿈을 이야기하던 어릴 때의 그 반짝이는 눈으로 우리가 다시 꿈과 즐거움을 이야기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