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기초과학 연구 생태계의 상생을 지향하다
지속가능한 기초과학 연구 생태계의 상생을 지향하다
  • 이재윤 기자
  • 승인 2013.10.16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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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기초과학연구원(IBS) 방향 토론회

과학벨트의 핵심 연구사업이 떠오르다
세계적 수준의 기초과학 연구단지 조성 및 연구리더 육성을 위해 2011년 11월 설립된 기초과학연구원(이하 IBS)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사업의 핵심 연구기관이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일본 RIKEN을 벤치마킹하여, 기존 대학이나 출연연과는 차별화된 5년 이상의 대형 장기집단 연구수행을 추진하고 있다.
IBS 연구단은 독립된 공간에 집결해 공동연구를 수행하는 단위 연구조직으로 연구단장과 더불어 5개 내외의 연구 그룹, 기술ㆍ행정 지원인력 등으로 구성된다. 각 연구단을 이끄는 연구단장은 연간 100억 원 규모의 연구비를 지원받으며, 연구 내용, 수행방식, 인력 운영 등 연구단의 자율과 독립성을 보장받는다. 연구자가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을 조성해 선진국 추격형의 기초과학 연구를 선도형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연구단은 현재 대전광역시 대덕특구 내 엑스포과학공원으로의 입주가 추진되고 있는 본원, KAIST, GIST, DUP연합(DGIST-UNIST-POSTECH) 등 캠퍼스연구단, 기타 대학 및 출연연 등 외부연구단으로 소속이 나뉜다. 현재 DUP연합 캠퍼스연구단 중에는 우리대학의 △기하학수리물리연구단 △원자제어저차원제어계연구단 △복잡계자기조립연구단 △면역미생물공생연구단 등 4개 연구단이 포함되어 있다. IBS는 2017년까지 본원에 중이온가속기를 건립하고, 본원 15개, 캠퍼스연구단 25개, 외부연구단 10개 등 총 50개 연구단을 선정해 운영할 계획임을 밝혔다.
그러나 IBS는 설립 초기부터 ‘이공계 생태계를 고사시키는 거대 공룡’이 아니냐는 눈총을 받게 되었다. 단일 연구단 당 100억 원에 달하는 연구비 및 연구단장 선정의 형평성이 주요 쟁점이다. 실제 개인연구 지원사업 중 최상위에 속하는 국가과학자 사업에 선정된 8명의 과학자 중 5명이 기존 국가과학자 연구과제를 중단하고 IBS 연구단장으로 이동하는 등 IBS가  기초과학계의 판도를 흔들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지난 8월 29일 서울대 이일하 교수가 우리대학 생물학전문연구정보센터(BRIC) 커뮤니티에 올린 ‘IBS로 노벨상의 꿈을… 뿜겠다, 정말!’이라는 글이 이러한 불만의 기폭제가 되었다. 이 글은 노벨상을 타보겠다는 목표로 소수의 연구단장에게 올림픽 대표식 몰아주기를 하고 있어 일반 연구자의 연구비 씨가 마르고 있다고 비판하며, 기초과학을 키우기 위해서는 IBS를 현실에 맞게 축소하는 대신 개인 연구과제를 대폭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국내 생명과학 연구자 사이에서 영향력이 높은 이 커뮤니티에는 이일하 교수의 의견에 동조하는 의견이 점차 확산되어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다.


누가 내 연구비를 옮겼을까?
이에 IBS는 각계 전문가의 비판과 충고를 경청하며 발전 방향을 함께 논의하기 위해 지난 9월 26일 더케이 서울호텔 한강홀 별관에서 ‘IBS 연구단 방향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는 IBS 오세정 원장의 개회사 이후 △IBS 송충한 정책기획본부장 △서울대 이일하 교수 △우리대학 김승환(물리) 교수의 발표가 있었고, 패널토론 및 질의응답이 뒤를 이었다. 이 자리를 통해 IBS 사업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각계의 의견을 운영 개선에 대폭 수용하겠다는 오세정 원장의 개회사 때문인지 토론회는 다소 누그러진 분위기로 진행되었으나 연구단 운영방안에 대한 발표와 첨언이 오가면서 열띤 기류가 흐르기도 했다.
이날 첫 발표를 맡은 송충한 정책기획본부장은 IBS 사업이 기존의 기초연구예산과 별도의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2011년 IBS 설립 이후 기초연구사업 예산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는 근거를 들어 연구비에 대한 논란을 일축했다. 또한 100억 원은 기준단가의 개념이며, 실제 연구비는 연구단의 성격과 규모, 연차에 따라서도 차등을 두고 있고 연구비는 연구단 구성원 전체에 배분되는 구조이므로 연구자가 감당 못할 거액의 연구비 지원으로 창의력을 저해하고 있다는 주장을 반박했다.
이후 패널토론에서 우리대학 원자제어저차원제어계연구단장 염한웅(물리) 교수 또한 자신의 연구단 구조를 직접 제시하며 연구비에는 그룹 리더, 연구원, 행정직원, 학생 인건비 등 모든 운영비가 포함되고 있고, 그룹 리더들이 각각 독립적인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므로 연구단장 1인이 100억 원을 사용한다는 것은 오해라고 강조했다. 염 교수는 2012년 창의연구단장협의회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중 78%에 해당하는 창의연구단 연구자들이 리더 연구자의 적정 연구비가 10억~15억 원 규모라고 응답한 사례를 들어 현행 IBS 연구비가 적정 수준임을 뒷받침했다.
뒤이어 발표를 맡은 이일하 교수는 IBS 사업으로 순수 기초과학 예산이 실제로 확충되었고 국가 전체 연구자들의 처우도 개선될 것이라고 내다보았으나, 향후 IBS 사업이 기초과학의 저변에 미칠 영향에 대한 학계의 우려를 대변했다. 우수 연구자 증가로 연구비 수주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 인식에 따라 2009년 기초과학 R&D 예산이 2배 가량 증액될 계획이었으나 IBS 구축으로 사실상 무산되었다는 서강대 김건수 교수의 주장을 근거로 들었다. 이어서 향후 50개 연구단이 모두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상황에서 매년 5천 억의 예산이 투입될 경우 기획재정부가 기초연구사업에 미칠 영향에 대해 일반 연구자들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여기에 IBS 측은 최근 연구비 기근이라는 상황 인식은 낮은 과제 선정율 때문이며, 이는 주로 3년마다 새로운 연구과제를 선정하는 기초과학계의 경향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 발표를 맡은 우리대학 김승환(물리) 교수는 전체 기초연구를 생태계 피라미드 관점에서 재조망해 예측 가능한 연구지원체계가 확립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김 교수는 직년 새정부 출범 이후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의 노선이 전환되며 혼선과 어려움이 있지만 기초과학 공동체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발전적인 토론을 할 것을 제의했다.


국제적 수준의 기초연구로 발돋움하려면
이후 패널 토론에서 남원우 이화여대 교수는 현재 연구단장 지원자를 소수 심사자가 평가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며 국내외 심사자를 각각 10인씩 배정해 3차에 걸쳐 심사를 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여기에 많은 패널들이 현재 연구단장이 추천하고 IBS가 심의하여 선정하는 그룹리더 또한 공정한 공개 경쟁으로 선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최승현 UC 샌디애고 교수는 IBS가 생산적인 과학계 커뮤니티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국제성과 다양성을 빼놓을 수 없는데, 현재 IBS는 국내 연구 투자 체계에만 매달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기초과학’이라는 목표에 편중되어 시야가 좁아지고 있다며 보다 넓은 분야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과학을 추구할 것을 주문했다.
방청객으로 참여한 UC LA 조언 발렌타인 교수는 ‘연구비 지원 심사에 관한 국제적 표준’에 해당하는 6대 원칙을 제시하며 IBS 심사체제에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발렌타인 교수는 “내가 알기로는 IBS의 많은 제안서들이 해당 분야 전문가들에 의해 심사되지 않았으며 심지어 연구제안서의 분야에 속하지 않은 과학자들에 의해서도 결정이 내려졌다”라고 주장했다. “막대한 연구비를 왜 상대적으로 소수인 연구자한테 주어야 하는지, 반대로 다수의 연구자한테 더 적은 연구비가 돌아가는 게 어떻게 정당화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라고 말하고, IBS의 심사 절차가 국제 표준에 미흡하다며 개선 필요성을 지적했다. 
이날 IBS는 △대규모 연구가 적합하지 않은 분야에 50억원 내외의 예산 도입 △해당 연구분야의 IBS 외부 전문가들로 연구비 적정성 심의회 도입 △연구단장, 그룹리더 선정, 평가방법 개선 △타 연구자 교류 협력 활성화, 젊은 연구자, 중견 연구자 양성 등의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내년인 2014년까지 IBS 연구단 목표의 절반인 25명이 연구단장으로 선정될 예정인, IBS가 모두가 바라는 지속가능한 기초과학 연구 생태계 지평을 넓혀나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