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자의 생존 스토리, 시청자에게 경쟁 시스템을 강요하다
출연자의 생존 스토리, 시청자에게 경쟁 시스템을 강요하다
  • 정덕현 / 칼럼니스트
  • 승인 2013.10.16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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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알다시피 오디션 프로그램의 형식은 현실을 재현하고 있다. 경쟁사회.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지 않으면 자신이 밟히는 이 사회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오로지 위너가 되는 일이다. ‘루저’니 ‘잉여’니 하는 쓸쓸하기 그지없는 청춘들의 씁쓸한 신조어들에 포함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 어마어마한 수치의 참가자들에서 추리고 추리는 오디션 프로그램은 그래서 그 자체가 현실의 축소판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현실을 반영한 축소판이 그대로 현실은 아니다. 거기에는 현실과 대응하여 부족한 욕망을 실현시켜주는 판타지가 첨부되어 있다. 공정하지 못한 현실이지만 적어도 이 오디션 시스템은 공정하게 스펙 같은 것 따지지 않고 오로지 노래 실력 하나만을 본다는 것이다. <슈퍼스타K2>의 허각 신드롬은 정확히 이 현실반영과 판타지의 성공적인 접목을 통해 벌어진 현상이다. 그 후 지상파에서도 <위대한 탄생>, <K팝스타>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경쟁적으로 쏟아져 나왔고, 너무 많은 비슷한 형식은 <보이스 코리아>나 <쇼미더머니> 같은 새로운 형태의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차별화를 도모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서로 경쟁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오디션이 벌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경쟁. 경쟁. 경쟁. 오디션 프로그램의 판타지는 꼭대기에 선 이들에게만 부여된다는 것이 서서히 대중들에게 인지되면서 이 무한 경쟁의 시스템은 점점 피로감이 누적되게 되었다. 게다가 이제는 합격과 불합격을 갖고 벌이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밀당의 패턴을 대중들은 읽기 시작했다. 오디션 형식은 더 잔인해졌다. 이른바 콜라보레이션 미션은 오디션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경쟁자들이 함께 무대를 꾸며 하모니를 선사하고 그 둘 중 한 명을 떨어뜨리는 시스템. 이 무대 위에서는 합격된 자도 탈락한 자도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다. 이 시스템은 함께 노력한 동료도 결과적으로는 경쟁자로서 나눠지게 되는 현실을 반영한다. 그만큼 시스템이 무정해진 것이다.
콜라보레이션 미션은 대중들에게 지친 경쟁 속에서의 한 순간의 화합을 화음의 하모니로 보여주기 때문에 감동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 자체가 경쟁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결과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이 시스템에 승복하고 만다. 제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저 시스템 속에 들어가면 누군가는 붙고 누군가는 떨어진다는 것. 그러니 그것이 화음이라고 해도 자신을 좀 더 부각시키고 드러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즉 오디션 프로그램을 반복적으로 보다보면 어느 순간 우리는 사회가 경쟁적이라는 것을 점점 인정하게 되고 심지어 당연시하게 된다는 점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경쟁사회의 시스템을 다른 한편으로는 교육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본래 사회가 경쟁적인가. 어쩌면 그것은 본래 그런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시스템이 경쟁적인 것일 뿐인지도 모른다. 마치 <설국열차>에서 칸마다 계급이 나뉘어 저마다의 역할을 하고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이 열차를 설계한 윌포드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일 뿐인 것처럼, 머리칸으로만 진격하려는 커티스(크리스 에반스)에게 남궁민수(송강호)가 앞이 아니라 옆을 뚫어 이 시스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처럼 우리는 어쩌면 새로운 사회를 꿈꿀 수도 있을 것이다.
쟝 보드리야르는 “디즈니랜드는 실제 미국이 디즈니랜드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즉 가상의 디즈니랜드를 세워둠으로써 나머지(실제 미국)는 진짜인 것처럼 오히려 보게 만든다는 것이다. 즉 가상이나 현실이나 다 가짜라는 얘기다. 이 말을 빌어와 오디션 프로그램에 적용하면 이런 이야기가 가능할 것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실제 현실의 오디션이 가짜라는 것을 감추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오디션 프로그램은 현실의 경쟁시스템을 그대로 가져와 진짜인 척 하지만 거기에는 현실에서 벌어지기 힘든 기적의 드라마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은 은연 중에 우리를 교육시킨다. 현실 역시 경쟁의 오디션이라는 무대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그러니 스스로의 기적을 만들기 위해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 한다고.
하지만 그 누가 세상이 어쩔 수 없는 경쟁과 생존의 무대라고 말하는가. 그것은 어쩌면 누군가에 의해 조장된 것일 수도 있다. 너도 원하지 않고 나도 원하지 않는 경쟁과 생존을 왜 우리가 사회의 시스템으로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오디션 프로그램이 주는 눈물겨운 생존의 이야기는 때론 감동을 주지만, 그 이면에 놓여진 시스템에 대한 강요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