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폐장 선정 주민투표가 남긴것] 뿌리깊은 지역감정 되살아나
[방폐장 선정 주민투표가 남긴것] 뿌리깊은 지역감정 되살아나
  • 정현철 기자
  • 승인 1970.01.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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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개입 등 주민투표 공정성 불신
지난 3월부터 시작된 방사성폐기물처리장(방폐장) 유치문제가 군산, 영덕, 경주, 포항 4개 지역이 후보 신청을 하고 경합을 벌인 가운데 지난 2일 주민투표를 통해 찬성률 (89.5%)이 가장높은 경주가 최종 유치 지역으로 선정됨에 따라 마무리됐다. 유치에 실패한 다른 3개 지역도 84.4%(군산), 79.3%(영덕), 67.5%(포항)라는 비교적 높은 찬성률을 보였다.

19년 간 표류해온 방폐장 유치문제가 높은 투표율과 찬성률로 마무리 지어진 만큼, 이번 사태는 여러 가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포항시청 첨단과학과의 한 관계자는 “특정인들만 관심을 가졌던 방폐장이 일반 주민들에게도 널리 알려지고, 특히 안전성과 같은 오해의 소지가 큰 문제들이 조금이나마 바로 알려진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으며, 혐오시설 유치의 대표적인 선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우리 포항지역이 비록 유치지역이 되지 못했지만, 가까운 경주지역에 방폐장과 한국수력원자력공사, 양성자가속기가 들어서게 되면 인접지역인 포항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적으로도 이익이 되는 일”이라며 “이번 유치 신청은 단순히 선정 여부를 떠나 국내 전력의 약 10%를 사용하는 우리 포항이 모범을 보여야 했던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약 8개월간 끌어온 방폐장 유치문제는 이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되면서 많은 후유증과 또 다른 문제들이 발생할 전망이다.

이번 주민투표에 대해 반핵국민행동이 ‘수많은 불법과 불공정 시비 속에 진행된 주민투표’라고 주장한 만큼 우리 지역도 이를 피해가지 못했다. 포항KYC의 최광열 대표는 “중립 입장에 서야 할 공무원들이 그러지 못한 것 같다”며 “부재자 투표의 경우 유권자들이 자발적으로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공무원들이 직접 나서서 통*반장들을 통해 이를 부추겼다”고 말했다. 또한 포항시가 주민들을 대상으로 울진 등 원자력 시설이 잘 되어 있는 곳을 견학시켜준 일에 대해서도 “유치를 반대하는 측에도 이러한 재원을 마련해 주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며 형평성 문제를 제기했다. 이번 방폐장 유치와 관련한 산업자원부의 실책 역시 간과할 수 없었다. 최 대표는 “후보지 선정에 있어 가장 먼저 봐야 할 것이 안전성인데 정부는 이것을 뒷전으로 미루고 ‘누가 수용할 것인가’에 더욱 초점을 맞추었다”며 후보지 선정에 있어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 외에도 탈락지역에서 방폐장 유치 찬반의 과열경쟁으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군산과 같은 경우 유치 찬성 활동을 해온 몇몇 회원들이 반대 단체 회원들에게 폭행을 가하는 사태가 벌어졌으며, 특히 이번 문제로 인해 조장된 지역감정과 같은 지역 내에서 찬반으로 갈림에 따라 생긴 주민 감정의 골은 정부와 각 지방자체단체가 치유해 나가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이번 일을 통해 드러난, 시 당국에 대한 주민들의 불신 역시 커다란 문제점의 하나로 지적됐다. 포항시청의 한 관계자는 “주민들이 대의기관으로서 시의회를 뽑았는데도 불구하고 시의회의 결정을 믿지 못해 결국 주민투표까지 갔으며, 특히 주민투표를 통해 선정될 경우 그 결과를 뒤엎겠다는 환경단체의 태도는 아직까지 성숙된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못한 증거”라며 아쉬움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