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과기대에서 바라본 국제화의 두 얼굴
홍콩 과기대에서 바라본 국제화의 두 얼굴
  • 박지용 / 산경 08
  • 승인 2013.09.04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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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난 1학기에 홍콩과학기술대(HKUST)에 단기유학을 다녀왔다. 홍콩과기대는 1991년 포스텍과 카이스트를 벤치마킹하여 설립됐고, 세월이 흘러 반대로 우리나라에서 국제화를 벤치마킹하는 학교로 잘 알려져있다. 줄곧 들어는 왔지만 진정 어떤 모습을 지향하는 것인지 잘 와닿지 않는 것이 바로 국제화이다. 그래서인지 그 필요성을 쉽게 공감하기 힘든 면이 있다. 하지만 홍콩과기대에서의 생활은 국제화란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주기 충분했다.
첫째로 학생과 교수 모두 외국인 비율이 매우 높다. 이는 외국인이 많은 홍콩의 특성에도 기인하지만, 홍콩과기대의 제도들도 크게 기여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단기유학 기간 동안 학교 측에서 사소한 것부터 챙겨주는 세심한 배려와 제도에 외국인으로서 불편한 것 없이 생활할 수 있었다.
둘째로 교내 모든 활동이 영어로 이루어진다. 영국 식민지의 역사 때문에 원래 영어가 통용되는 곳 아니냐고 흔히 생각할 수 있지만, 중국에 반환된지 15년이 된 지금의 홍콩은 중국의 모습을 많이 닮아있었다. 실제로 홍콩에서 영어가 안 통하는 곳이 더 많다. 그렇기에 교내 활동이 영어로 이루어지는 데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일상생활에서는 여전히 광둥어를 쓰지만, 수업은 물론 랩에서 조교도 모두 영어로 진행하며 심지어 선배가 후배에게 도움을 주는 멘토 제도에서조차 영어를 써야 한다. 이런 제도는 외국 학생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고 동등한 조건에서 학교생활을 하며 학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고 있다.
셋째로 개방적 마인드를 들 수 있다. 처음 학교에 적응하던 무렵 혼자 외국인이라 과목 프로젝트를 위한 팀을 구하기 쉽지 않았는데 홍콩 학생들이 먼저 선뜻 같이 하자고 제안해왔다. 또 자기들끼리는 광둥어가 훨씬 편할텐데도 전혀 내색 없이 외국인인 필자를 위해 많은 배려를 해주었다.
필자는 포스텍에서도 외국인과 함께 전공과목을 들은 적이 몇 번 있다. 솔직히 고백컨대 그 때 외국인과 같은 팀을 하는 것을 피하고자 했었다. 의사소통의 문제로 시간과 노력이 배로 드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홍콩 학생들에게서 그런 배타적인 태도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이렇게 외국인 그리고 다른 환경에 대한 개방적인 모습은 대단히 인상적이었고, 처음으로 국제화의 필요성에 공감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그렇지만 홍콩과기대의 국제화는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모습만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이를 보여주는 몇 가지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재학생들에게 수업에 대해 물어보면 대부분 “중국 학생들이 많으면 A 학점 받기 힘들다”라고 말한다. 또한 팀 프로젝트를 할 때 중국 학생들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높다. 이 뿐만 아니라 학기 말 홍콩과기대가 어떤 것 같냐는 학생들의 질문에 필자가 “격차가 있기는 하지만 보고 배울만한 친구들도 많다”라고 대답하자, “같이 공부했던 학생 중에 중국 학생 있어요?”, “외국 학생인가요?”라고 되물어오기도 했다. 많은 학생 뿐 아니라 교수님까지도 같은 반응이었다.
실제 중국 본토 학생들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학생들 인식 속에 중국 학생에 대한 경계가 매우 높다는 걸 알 수 있었고, 심지어 체념의 정서까지도 느껴졌다. 실제 느낀 홍콩 과기대는 성적의 양극화가 꽤나 심각해 보였다. 여기서 하위권을 형성하는 학생들 대부분은 늘 홍콩 로컬 학생들이다. 중국 학생 뿐 아니라 외국 학생들의 성적이 전반적으로 높다. 한 외국인 재학생은 홍콩 로컬 학생들이 깔아줘서 우리가 GPA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할 정도다.
필자는 기숙사 Hall 7 에 살았는데 이곳은 RC와 DICE를 섞어 놓은 곳으로 면접을 통해 입주자를 선발한다. 그래서 외국인도 많고 로컬 학생들의 영어도 유창하다. 처음 이곳 학생들의 영어 실력에 감탄을 했는데, 그것은 일부 모습에 불과했다. 실제 Hall 7에 거주하는 로컬 학생들 대부분은 국제학교 출신이었고, 수업에서 만난 로컬 친구들은 영어를 그렇게 잘 하지는 못했다.
그렇다보니 수업에서 질문도 영어로 해야 하는 수업 분위기 속에서 영어에 자신 있는 학생들만 적극적으로 답하고 나머지는 서로 눈치 보는 분위기였다. 홍콩 학생들의 수업 분위기도 꽤나 소극적이라 놀랐던 기억이 난다.
홍콩 과기대의 교외 활동은 양분되어있는 양상이다. 하나는 로컬 학생들 중심의 동아리와 기숙사 활동(이곳의 기숙사 활동은 동아리 활동 못지않다), 또 하나는 외국인 학생회(ISA) 등이 주최하는 글로벌 활동이다. 그래서인지 동아리나 기숙사 활동은 홍보에서부터 광둥어로 이루어지고, 글로벌 활동에는 대부분 외국인과 국제학교 출신 학생들이 참여한다. 적어도 필자가 느끼기엔 두 활동의 교집합은 많지 않은 듯하다.
대부분의 국제학교의 등록금이 대학교 등록금을 웃도는 현실을 생각하면, 기회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학생들의 나태함과 게으름을 탓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그런 차이를 고착화하는 시스템을 탓해야 하는 걸까? 쉽지 않은 질문이다.
홍콩에서 지낸 한 학기 동안 국제화에 대해서 이전까지 보지 못한 모습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물론 한 학기의 짧은 기간 동안, 그리고 교환학생으로서 내부 구성원이 아닌 입장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ilingual Campus’가 선포되고 지금까지 국제화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화의 롤 모델 격인 홍콩 과기대의 모습을 반추해 보는 것도 포스텍의 국제화에 대한 건설적인 대안을 논의하는데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국제화지만 세계적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그렇다면 과연 누구를 위한 국제화가 되어야할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