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가리는 달콤한 긍정주의
눈을 가리는 달콤한 긍정주의
  • 이인호 기자
  • 승인 2013.05.22 0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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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는 길
‘하면 된다’로 대표되는 표어는 우리 사회에 이미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개인에게 있어 긍정의 사고는 그 자체로 동기부여가 되고 성취도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개인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긍정적 사고는 맹목적으로 변해 독이 되고 있다.  우리는 주위에서 긍정적인 사고의 강요를 볼 수 있다. 단체 활동이나, 단체 프로젝트를 할 경우에 주제의 타당성이나 목표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하기보다는 ‘할 수 있다’는 말로 심도있는 비판을 덮어버린다.
긍정적 사고는 개개인에게도 강요된다. 미디어에서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애써 긍정적으로 사고해 역경을 극복해나가는 초인적인 인물상이 올바른 것으로 묘사된다. 또한 매사에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인물이 옳은 사고방식을 가진 것으로 표현된다. 이런 견해가 통용되는 사회에서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은 좋은 것으로, 부정적인 사고방식은 배척해야할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하면 된다’라는 말과 의욕만으로 불가능한 것도 해결될 만큼 현실은 간단하지 않으며 긍정적 사고도 만능이 아니다.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과중한 업무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떠맡은 사람에게는 계속되는 고통이 있을 뿐이다. 벽에 가로막힌 상황의 해결법은, 그저 직진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상황의 부정적인 문제점을 꿰뚫어보는 냉철한 눈이다. 그러므로, 절망적인 상황에서 좌절하고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 죄악시돼서는 안된다. 오히려 이는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선행 조건인 것이다.
긍정적인 사고를 타인에게 강요하지 말자. 더 이상의 해결책이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 그저 ‘넌 할 수 있어’, ‘다시 한 번 해봐’라고 말하는 것은 당사자에게 힘을 보태주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고통으로 등을 떠미는 짓이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간접적으로 질책하는 것밖에 되지 못한다.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라면, 이들이 멈추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데에 죄책감을 갖지 않도록 보다듬어 주는 것이 오히려 제삼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