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동화, 비틀어 읽고 영화로 채색하고
고전 동화, 비틀어 읽고 영화로 채색하고
  • 정지욱 / 영화평론가
  • 승인 2013.05.01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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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영화 속 동화의 세계

우연히 마법의 콩을 얻게 된 잭. 심어진 콩의 줄기가 훌쩍 자라 하늘나라에 이르게 되고, 콩나무에 올라 거인의 성에 가게 된 잭은 거인이 잠든 사이 금화와 황금을 낳는 닭, 스스로 연주하는 하프를 가져온다는 모험 이야기. 어린 시절 꿈과 희망을 키워주던 동화 중의 하나인 ‘잭과 콩나무(Jack and the Beanstalk)’의 줄거리다.
올 해 들어 어릴 적 읽었던 동화들이 애니메이션 뿐만 아니라 실사영화로 만들어져, 극장에서 만나는 색다른 즐거움에 빠질 수 있었다. 애니메이션 ‘눈의 여왕’은 물론 실사영화로 만들어진 ‘헨델과 그레텔: 마녀사냥꾼’, ‘잭 더 자이언트 킬러’, ‘오즈 그레이트 엔드 파워풀’ 등이 그것이다.

스크린으로 우리 곁에 새롭게 찾아온 세 편의 고전 동화
우선 올해 초 신학기를 앞두고 개봉했던 고전 동화를 원작으로 한 세 편의 영화를 살펴보자.
지난 2월 중순 개봉한 ‘헨델과 그레텔 : 마녀사냥꾼(Hansel and Gretel: Witch Hunters, 2013)’은 총과 석궁으로 무장하고 새롭게 찾아온 헨델과 그레텔 오누이가 성인버전으로 관객들 앞에 나섰다. ‘과자로 만들어진 예쁜 집’으로 상징되던 원작과는 달리 토미 위르콜라 감독의 손으로 빚어낸 이 작품은 화려한 액션과 성인용으로 꾸며낸 소소한 재미가 눈길을 끈다. 마녀의 집에서 겪은 어린 시절 덕에 당뇨와 외상증후군(PTSD)에 시달리는 오누이지만 멋지게 성장한 이들이 펼치는 현란한 액션이 감칠맛 나는 3D 효과로 스크린에 옮겨 놓은 것이다.
2월 말 개봉한 ‘잭 더 자이언트 킬러(Jack The Giant Killer, 2013)’는 ‘유주얼 세스펙트’ 등으로 알려진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연출로 개봉 전부터 주목 받은 작품이다. 원작과 틀은 유사하지만 거인을 물리치고 공주와 왕국을 구해내 영웅이 되는 잭을 그려 놓았다. 스케일이 커지고 가족영화로 손색이 없을 만큼 교훈적인 즐거움이 가득하다는 점에서 주목받은 작품이다.
3월 초에 개봉한 ‘오즈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Oz: The Great and Powerful, 2013)’은 ‘이블 데드’, ‘스파이더맨’으로 알려진 샘 레이미 감독의 손으로 만들어졌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오즈의 마법사’ 이전의 이야기로 회오리바람에 휘말려 마법의 세계로 날아간 마술사 오스카가 겪게 되는 모험을 담고 있다. 달달한 멜로와 함께 풀어가는 이 작품은 아기자기하고 산뜻한 색감과 환상적인 아름다운 풍광, 그리고 귀여운 조연 캐릭터들을 3D로 맛볼 수 있는 작품이다.
비단 이들 뿐 아니라 지난해에도 고전 동화를 원작으로 했던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백설공주’를 원작으로 한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Snow White And The Huntsman, 2012)’과 ‘백설공주(Mirror, Mirror, 2012)’, 카트린 브레야 감독이 연출한 성인용 고전동화라 할 수 있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The Sleeping Beauty, 2010)’을 만날 수 있었다.

스토리텔링의 보물창고 고전 동화
요즘 영화를 보면 고전 동화 뿐 아니라 고전을 원작으로 한 작품들이 많다. 아마도 이것은 소재 고갈에 허덕이는 세계영화산업이 직면한 현실 때문일 것이다. 고전의 영화화 작업은 이전에도 자주 있던 현상이지만 요즘처럼 소재 고갈이 심각한 현실에선 더 절실하게 활용될 수밖에 없다. 고전이 지닌 풍부한 스토리텔링은 원작이 지닌 이야기를 조금만 비틀어도 새로운 이야기로 깜짝 변신하기 때문이다.
영화 ‘헨델과 그레텔 : 마녀사냥꾼’에 등장하는 오누이가 총과 석궁을 들고 마녀를 퇴치하는 퇴마사로 나설 줄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이들 오누이의 활약을 보며 관객들은 즐거워하고, 영화의 짜릿한 재미에 빠져든다.
‘오즈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 또한 영화를 보기 전까지 생각지 못한 이야기로 영화가 전개된다. 도로시가 마법의 세계로 가기 이전의 이야기를 펼쳐 보일 줄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깜짝 선물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원작에 대한 비틀기, 또는 새로운 해석이 가능한 것은 고전동화가 지닌 탄탄한 이야기 구조와 풍부한 스토리텔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헐리웃 뿐 아니라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공포영화의 대표작인 김지운감독의 ‘장화홍련(2003)’은 고전동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관객들에게 이며, 우리고전 ‘전우치전’을 새롭게 담아낸 최동훈 감독의 ‘전우치(2009)’도 고전을 리메이크한 대표작이라 하겠다.
비단 동화 뿐 아니라 고전 문학도 영화로 제작되고 있는데 이 또한 마찬가지다. 지난 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많은 관객을 모았던 톰 후퍼 감독의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 2012)’에서도 그 예를 볼 수 있다.

세월이 지날수록 영화의 맛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동화
세계영상산업의 기술력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특히 영화에서 보여주는 컴퓨터 그래픽은 물론 3D 기술 등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 가고 있다. 영화를 보는 이는 물론 만드는 사람들에게도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그려낸 장면이 스크린에 펼쳐질 때 느끼는 감동을 어찌 글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일반 고전소설과는 달리 동화의 세계는 꿈과 모험 그리고 환상으로 가득하다. 따라서 발전된 영상기술을 테스트 해보는 것은 물론 실현해볼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콘텐츠가 바로 동화라 하겠다.
지금부터 3~40년 전은 물론이거니와 바로 십여 년 전 작품에 사용된 영상기술을 봐도 요즘 젊은이들은 고소를 금치 못한다. 그만큼 뭔가 부족하고 어색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아바타(Avatar, 2009)’ 이후로 영화산업은 각종 영상기술의 발전에 집중했고, 더 화려하고 완성도 높은 작품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팀 버튼 감독이 선보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 In Wonderland, 2010)’는 고전 동화의 비틀기는 물론 발전된 영상기술을 총체적으로 집약시킨 대표작품이라고 하겠다. 이렇듯 세월이 지날수록 고전 동화 속 상상의 세계에 대한 영화적 묘사가 더 세밀해지고 완성도 높게 만들어지는 것은 영상기술의 발전과 비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상기술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더 풍성하게 제작될 수 있는 것이 바로 고전 동화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일 수밖에 없다.

제작진의 숨통을 열어주는 건 고전이 안겨주는 보너스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고전동화는 매우 매력적인 소재이며, 또한 제작비 절감의 호재로 작용한다. 원작자 사후 70년이 지나면 지적재산권(판권)에서 자유로워진다. 세계적으로 지적재산권에 대한 규제가 더욱 강화된 요즘 원작에 대한 부담감 없이 마음껏 비틀기를 해가며 영화를 만들 수 있다면 이 보다 더 매력적인 소재가 있을까? 이런 점이 헐리웃에서 고전 동화를 원작으로 영화화 하는 것에 방점을 두게 된 것이다.
또한 요즘 세계적으로 고전을 읽는 것이 트렌드로 등장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고전 동화는 물론 고전 문학의 중요성을 인식하지만 그림책 내지는 문고판 정도로 접했던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고전 동화와 고전 문학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지만 다시 읽거나 접하기에 부담을 느낀 요즘 관객들에게 이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를 마케팅 한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고 매력적인 작업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어릴 적 읽고 접했던 수많은 동화들. 그 안에 담긴 무궁무진한 스토리텔링을 염두에 두고 여러 영화들을 만나볼 기회가 앞으로도 계속 펼쳐질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우리가 어릴 적 읽었던 동화와는 사뭇 다른 새로운 해석으로, 또는 원작의 올곧은 해석이되 새롭고 신비한 영상으로 만나게 될 작품들을 기대해보는 것이 결코 미련하거나 엉뚱한 것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