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성 속 모방과 창조
모래성 속 모방과 창조
  • 유온유 기자
  • 승인 2013.05.01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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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는 길
아이들은 모래사장에 한 번 자리 잡으면 붉은 노을이 뉘엿뉘엿 물들어 갈 때까지 모래성의 세계에 빠져든다. 부드러운 모래는 아이들의 손에서 비밀의 정원이 되었다가도 바닷속 근사한 왕궁으로 모습을 바꾼다. 모래의 세계에 몰입해 많은 이야기를 만들던 아이들은 하지만 미련 없이 그간 쌓아 올린 모래성을 허물고 돌아선다. 아무것도 없던 모래사장에 아이들의 꿈이 피었다가 사그라져도 어느 하나 슬퍼하거나 부질없다고 아이들을 말리지 않는다.
지구에 생명체가 살기 시작한 이래 인간의 문명도 어쩌면 아이들의 모래성과 닮아있다. 사람들의 많은 꿈과 이야기를 담은 모래성은 해변에 잠시 머무르는 이방인처럼 속절없이 떠난다. 모래성 속 세상에 아무리 몰입해도 해가 저물 때면 돌아가야 하는 아이들처럼 시간 앞에서 굴복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아이들의 놀이가 지켜질 수 있었던 것은 모래성이 허물어질 것임을 생각하지 않아서이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탈바꿈하면서 갖게 된 것은 아마도 허물어짐에 대한 두려움이 아닐까 싶다. 누구나 마음속에 자신만의 모래성 하나는 가지고 있으면서 이것이 곧 허물어지리라는 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결국, 흔적도 없이 세월의 파도에 쓸려나갈 사실은 잊은 채 모래성 속의 세계에 빠져 자신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것만 받아들이는 면역학적인 해자만을 유지하는 우리 모습을 볼 수 있다.
모방과 창조는 반의어이기에는 공통분모가 하나 이상이고 유의어이기에는 사이비하다. 정성 들여 만든 모래성에서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는 것은 창조이지만 마음속에 자리 잡은 모래성에 비춰 현실에 대입하려는 모방은 배타와 아집을 만든다. 아이들이 모래성에 미련을 두지 않는 것은 그것이 꿈에 대한 매개체이지 이상 자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해 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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