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마음을 여기에 보여주세요
당신의 마음을 여기에 보여주세요
  • 임정은 기자
  • 승인 2013.03.20 23: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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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속마음을 시원하게 털어놓아 본 적이 있는가? 작년 12월 14일 생긴 ‘POSTECH‘s Post Secret(이하 포스텍 시크릿)’이 우리대학의 고민 배출구가 되어주고 있다. 포스텍 시크릿은 프랭크 워렌(Frank Warren)이 시작한 ‘Post Secret’을 모태로 한다.
워런의 이야기를 소개한 TV 프로그램에서 영감을 받은 고려대 문화이벤트 기획 동아리 ‘쿠스파(KUSPA)’는 워런의 허가를 받아 2011년 7월 우리나라에 Post Secret Korea를 만들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Post Secret Korea보다 주목받은 것은 ‘옆 대나무숲’이었다.
옆 대나무숲은 주로 동종 업계에 있는 사람들끼리 불만이나 애환을 토로하는 장으로 △출판사 옆 대나무 숲 △IT회사 옆 대나무숲 △신문사 옆 대나무숲 등이 있다. 정치ㆍ사회학자들은 옆 대나무숲 열풍을 우리사회의 갑-을 관계에서 을들의 반발로, 사회적 약자들의 저항이라고 분석했다.
옆 대나무숲이 갑에 대한 을의 반항이라면 우리대학에서 포스텍 시크릿은 왜 생겨나게 됐는가? 포스텍 시크릿 운영자는 “우리대학 사회가 너무 좁아서 하고 싶은 말을 못하거나, 혼자서만 안고 가야하는 이야기들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포스텍 시크릿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학 내에서 소문으로 인한 고민을 털어놓은 글들을 보면 ‘포스텍’이라는 좁은 사회에서 생기는 답답함을 포스텍 시크릿을 통해 공감하며 치유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포스텍 시크릿에 올라오는 글은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기 위한 글, 의견을 묻기 위한 글, 고민을 털어놓는 글, 치유하고 용기를 주는 글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글은 마음을 전달하기 위한 글이다. 이성간에 좋아한다는 고백부터 친구에게 용서를 구하는 글까지, 직접 말할 용기가 없는 이들에게 포스텍 시크릿은 마음을 전달하는 통로가 되어준다.
포스텍 시크릿에는 유난히 ‘연애’에 관련된 글이 많은데 이런 글들에 사람들은 함께 설레고 공감하고 진지하게 고민한다. 특히 연애에 관한 내용의 글이 많은 것은 연애가 학생들의 주요 관심사인 이유도 있겠지만, 좁은 우리대학 사회에서 소문을 내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풀 곳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글들이 많아서 우리대학 학생들의 최대 관심사가 연애 문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나타내는 ‘좋아요’가 가장 많이 눌러진 글은 한 대학원생의 진로에 대한 불안함에 관한 고민을 토로하는 글이었다. 이 글의 ‘좋아요’ 수는 현재 340여개로 다른 글들이 100여개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일부 글에서는 댓글로 인한 논란이 생기기도 했다. 결혼적령기 여자의 남자친구에 관한 고민을 담은 글에 달린 비난성 댓글, 동성애에 관한 고민의 글에 달린 공격적인 댓글, 특정 댓글을 비난하는 저격성 사연의 글 등으로 댓글은 많은 논란이 됐다. 이에 포스텍 시크릿 이용자들은 댓글 기능을 없애자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댓글 기능에 대해 운영자는 “포스테키안들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포스텍 시크릿은 고민 해결을 원하는 사연이나 위로받고 싶어하는 사연도 많기 때문에 댓글 기능을 유지할 것이다. 일련의 사건들 이후에 댓글 의식이 이전에 비해 성숙해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의사소통이 아니더라도 고백을 하는 행위 자체로 사람들이 치유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강한 감정 표출과 행동으로 얻은 카타르시스는 부정적 감정을 잠시 가라앉혔다가 되살려내 습관적으로 강한 반응을 되풀이 하게 된다는 결과 또한 있다. 포스텍 시크릿에서는 아직 그런 과격한 감정 표현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옆 대나무숲이 처음에는 부당한 일에 대한 고발로 시작해서 점점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어놓는 장이 된 것을 생각한다면 포스텍 시크릿도 현재와 같은 상황이 유지될 것이라고 보장할 수는 없다. 이것은 성숙한 댓글의식에 더하여 앞으로 우리의 포스텍 시크릿을 만들어 나갈 때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