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기능성 유기분자
생기능성 유기분자
  • 신인재 / 연세대학교 화학과 교수
  • 승인 2012.12.05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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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행성 신경질환이나 암과 같은 난치성 질환을 치료하는 의약제로 이용 가능

생기능성 유기분자의 중요성
지난 20세기 말부터 생명체의 유전자 서열을 밝히는 게놈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인간을 포함한 많은 생명체의 유전자 서열이 밝혀지게 됐다. 21세기에는 이들 유전자의 세포 및 생체 내에서의 기능이 무엇인지 규명하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생명체의 유전정보는 DNA에서부터 RNA를 거쳐 단백질로 이어진다. 단백질은 그 자체로서 기능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변형과정을 거쳐 더 복잡한 생물학적 과정에 관여한다. 단백질 변형과정에서 가장 많이 일어나는 것 중 하나가 단백질에 탄수화물(또는 복합당질)이 결합된 당단백질을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 고등동물 단백질의 경우 50% 이상이 당단백질로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따라서 생체 내 단백질 및 복합당질의 역할을 이해하는 것은 생명현상을 규명하는 기초 연구로서 뿐만 아니라 질병 치료제 개발이라는 응용 연구 측면에서도 대단히 중요하다.

   
▲탄수화물칩을 이용한 단백질과 탄수화물 사이의 상호작용 분석. 형광 물질이 붙은 단백질이 탄수화물칩 상의 특정 탄수화물에 결합하고 있음

생명과학자들은 단백질 및 복합당질이 관련된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오랫동안 생물학적인 방법을 통해 연구해 왔다. 그러나 1990년대 말부터 유기분자를 이용하여 세포 내 단백질 및 복합당질의 기능을 규명하는 연구(화학생물학 연구라 함)가 진행되면서 현재 이 분야 연구가 각광을 받고 있다. 이 연구방법은 기존의 생물학적인 방법에 비해 실험의 수월성, 생체 분자 기능 조절의 용이성 그리고 의약제 개발의 높은 가능성 등 몇 가지 장점이 있어 과학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본 연구팀은 생기능성 유기분자를 개발해 단백질 및 복합당질 관련 생물학적 과정을 조사하고, 더 나아가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세포 내 복합당질은 당단백질 및 당지질의 형태로 주로 존재하고, 이들은 단백질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다양한 생리학적 과정에 관여하고 있다. 또한 복합당질과 단백질 사이의 상호작용은 암 전이, 염증 유발,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에 의한 감염 등 많은 병리학적 과정에도 연관돼 있다. 따라서 복합당질과 단백질 사이의 상호작용을 조사하는 것은 기초 연구뿐만 아니라 병인 규명, 질병 치료제 개발 및 질병진단법 개발에도 대단히 중요하다. 2002년 이전까지는 여러 분석기기를 이용해 단백질과 복합당질 사이의 상호작용을 조사했지만 기존의 방법들로는 짧은 시간 내의 상호작용을 조사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본 연구팀은 단백질과 복합당질 사이의 상호작용을 적은 양의 샘플을 이용해 빠른 시간 내에 분석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자 했다. 그 결과 본 연구팀은 2002년에 다양한 탄수화물이 유리표면에 고집적으로 고정된 탄수화물칩을 최초로 개발했다. 본 연구팀은 탄수화물칩이 단백질과의 상호작용을 고속으로 분석하는 데 유용하고 또한 복합당질과 관련된 다양한 연구에도 유용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현재 탄수화물칩은 복합당질 기능 연구에 있어서 핵심 기술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병원균을 손쉽고 간단히 검출하기 위해 형광물질이 결합된 탄수화물 복합체를 제조해 그 유용성을 검증했다.

난치성 질환 정복의 꿈, 멀지 않다
본 연구팀은 또한 근육세포를 신경세포로 분화시킬 수 있는 유기분자를 최초로 개발해 퇴행성 신경질환의 새로운 장을 개척했다. 신경세포는 인체 내의 다른 세포와는 다르게 일단 죽으면 재생되기가 대단히 어렵다. 신경세포의 사멸로 인해 발생하는 질환으로는 뇌졸중, 치매, 파킨슨씨병, 루게릭병 등의 퇴행성 신경질환이 있다. 이들 질환의 치료법으로는 신경세포 사멸을 억제시키는 화학요법과 줄기세포를 신경세포로 분화시켜 환자에게 이식하는 세포치료법 등이 있다. 제약회사, 국가연구소 및 대학 연구실에서 천문학적인 연구비를 사용하며 화학요법에 필요한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그러나 화학요법은 신경세포 사멸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억제시킬 수는 있지만 이미 사멸된 신경세포를 재생시키지는 못하기 때문에 신경질환을 근본적으로 치료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줄기세포를 이용한 세포치료법은 신경질환 치료에 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윤리적인 문제와 기술적으로 해결할 문제가 많다. 본 연구팀은 줄기세포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체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세포 또는 조직을 생기능성 유기분자를 이용하여 신경세포로 분화시키고, 이를 환자에게 이식시켜 신경질환을 치료하고자 했다. 이 방법은 환자 몸속에서 세포를 얻어 분화시키기 때문에 환자에게 분화된 세포를 이식시킬 경우 면역 거부 반응이 없으며, 치료에 이용될 세포를 손쉽게 구할 수 있고, 성체세포를 이용하기 때문에 암세포로 바뀔 가능성이 없다는 장점이 있다.

   
▲환자의 근육조직을 생기능성 유기분자를 이용하여 신경세포로 분화시켜 이식
 
근육세포는 우리 몸에 주축이 되는 세포로서 여러 가지 생물학적인 점을 고려할 때 본 연구에 적합한 세포이다. 따라서 근육세포를 신경세포로 분화시킬 수 있는 유기분자를 개발하고자 했다. 수백 개의 화합물을 합성해 이를 쥐의 근육세포와 배양시켜 신경세포로 분화시킬 수 있는 생기능성 유기분자인 뉴로다진을 발굴했다. 이 화합물은 쥐의 근육세포뿐만 아니라 인간 근육세포도 신경세포로 분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그전까지 유기분자를 이용하거나 생물학적인 방법으로 줄기세포나 신경 전구세포를 신경세포로 분화시키는 연구가 많이 수행됐지만, 유기화합물을 이용해 근육세포를 신경세포로 분화시킨 예는 없었다. 이 연구결과가 실제로 환자를 치료하는데 이용되기에는 좀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지만, 유기분자를 이용해 인체를 형성하는 주세포인 근육세포를 신경세포로 분화시켜 신경질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연 연구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본 연구팀은 생체 내에서 다양한 작용을 하고 있는 HSP70 단백질의 저해제를 개발해 세포내 작용기전을 규명하는 한편 의약제로 이용하고자 했다. HSP70는 샤페론 단백질의 일종으로 생체 내에서 많은 중요한 생물학적 과정에 관여하며, 다양한 난치성 질병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를 들면 HSP70는 암세포에서 특히 많이 발현돼 암세포가 죽는 것을 억제시키는 역할을 하고, 더 나아가 항암제를 처리했을 경우 이 단백질의 생성량이 증가해 항암제에 의해 암세포가 죽는 것을 억제시키기도 한다. HSP70 관련 또 다른 질병 중 하나는 동양인에게도 발병하지만 백인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유전병의 일종인 낭포성 섬유증이다. 이 질환은 환자의 돌연변이 CFTR 단백질을 HSP70가 제거해 세포막에 염소이온 채널인 CFTR이 발현되는 것을 방해해 생기는 질환이다.
본 연구팀에서는 HSP70의 작용을 억제하는 생기능성 유기분자인 아폽토졸을 수백 개의 유기분자에서부터 발굴했다. 이 화합물을 다양한 암세포에 처리한 결과 기존의 항암제에 비해 우수한 항암효과를 보였고, 다른 항암제와 동시에 처리했을 때 더 좋은 항암 효과를 보였다. 또한 동물실험을 통해 아폽토졸이 정상세포에는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암세포 사멸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또한 아폽토졸을 돌연변이 CFTR를 발현하는 세포에 처리했을 때 정상 CFTR을 발현시키는 세포의 약 20% 정도에 해당되는 염소이온 채널로서의 활성을 세포가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정도의 염소이온 채널 활성은 정상적으로 살아가는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아폽토졸이 낭포성 섬유증 치료제로 유용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현재까지 HSP70 저해제를 임상에 사용한 예가 거의 없기 때문에 본 연구팀에서 개발한 아폽토졸은 향후 이 분야 연구에 많은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HSP70가 관여하는 복잡한 생물학적 과정을 이해하는 데에도 아폽토졸이 많은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인간의 건강을 위협하는 난치성 질환이 전 세계적으로 많이 발병하고 있다. 특히 최근 노인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만성, 난치성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본 연구팀이 개발한 생기능성 유기분자는 퇴행성 신경질환이나 암과 같은 난치성 질환을 치료하는 의약제로 이용될 수 있고, 또한 복잡한 생물학적 과정을 규명하는 데에도 유용할 것으로 생각된다.

   
▲HSP70 저해제의 의약학적 응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