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부착형 고감도센서
피부부착형 고감도센서
  • 서갑양 / 서울대학교 교수
  • 승인 2012.11.21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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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섬모 상호체결을 이용한 피부 부착 기능

최근 들어 얇고 쉽게 휘어지는 박막형 유연센서(Flexible device)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미세한 압력이나, 온도, 화학물질, 전기신호 등을 실시간으로 감지할 수 있는 플렉서블 센서에 대한 개발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특히, 이러한 센서를 이용한 스마트 플렉서블 디바이스뿐만 아니라 피부나 장기 등에 직접 부착하여 생체신호를 읽는 실시간 진단 기술도 주목을 받고 있다. 이와 같은 다기능 센서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실리콘, 나노와이어(nanowire), 탄소 나노튜브(carbon nanotube) 등의 재료를 마이크로/나노 스케일에서 원하는 형태로 배열하여 장치를 만들고, 개별 구역들로 구성된 서로 다른 기능을 하는 장치들을 하나의 디바이스로 통합해야 한다. 그런데 이를 위한 제작 과정은 복잡한 단계의 공정을 수반함에 따라 비용이 상승하고 생산성이 낮으며 대면적으로 제작하기 어려운 문제가 존재해 왔다.
다양한 종류의 자극 중 압력의 크기를 측정하는 방법으로는, 기계적인 외부 자극에 의해 재료의 전기적 물성이 변화하는 압전 특성을 이용한 방식이 대표적이며, 이러한 방식의 경우 압력에 의한 저항이나 정전 용량의 변화를 트랜지스터 등의 소자를 통해 측정하게 된다. 그러나 본 연구진은 간단한 제작공정으로 대면적의 압력센서를 제작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기 위해 자연에 존재하는 미세섬모 배열구조에 착안했으며, 특히 이러한 아이디어는 딱정벌레(Coleoptera/Beetle)의 흉부 안쪽과 겉날개에 존재하는 고종횡비 미세섬모 배열 구조를 통한 날개 잠금 장치에 대한 관찰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딱정벌레의 날개 길이는 몸체에 비해 약 3배 이상 길며 다양한 역학적 조건과 극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매우 섬세한 표면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딱정벌레의 날개는 몸통에 비해 상대적으로 손상에 취약하므로 딱정벌레는 날개를 쓰지 않을 때에는 몸통에 날개를 접은 후 날개 잠금장치를 통해 고정시켜 날개가 마찰에 의해 쓸리는 것을 막고 외부 힘과 같은 환경적 요인에 의한 날개 손상을 최소화하는 한편, 날개 접합 부위에는 안정적인 결합을 유지하기 위해 미세섬모의 접촉 세기를 감지하는 신경기관도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고종횡비 미세섬모 구조가 표면 접착력을 크게 증가시키는 이유는, 높은 밀도로 배열된 섬모들 간에 상호작용이 발생하면서 중성 분자 사이에 작용하는 인력인 반데르발스 상호작용(van der Waals interaction)이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반데르발스 힘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극성 분자에서 전자의 운동으로 순간적인 쌍극자가 형성되면 그 옆의 분자도 일시적인 편극이 일어나 유발 쌍극자가 생성되고, 이렇게 생성된 두 쌍극자 사이에서 인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데르발스 힘은 다른 화학결합에 비하면 약한 편이지만, 미세섬모 배열 구조를 통해 넓은 표면적을 극대화시킨다면 두 구조물 사이에 강한 상호결합을 유도할 수 있다. 본 연구진은 이러한 원리를 이용하여 벨크로처럼 반복적인 탈/부착이 가능한 신개념 나노구조 잠금장치를 고안한 바 있으며, 여기에서 더 나아가 미세섬모 구조물에 나노스케일의 금속을 입혀 전기적 성질을 부여했고, 외부 자극에 의해 섬모 결합의 전기저항이 달라지는 특성을 이용한 새로운 개념의 압력센서를 제시했다.

미세섬모 결합 센서의 모식도와 사진 및 작동 원리를 나타낸 모습


센서의 재료로 사용되는 높은 종횡비의 나노 섬모 다발은 모세관력 리소그래피(capillary force lithography)라 불리는 공정을 통해 손쉽게 제조할 수 있다. 모세관력 리소그래피는 나노/마이크로 크기의 규칙적인 패턴을 제조하기 위한 공정 방법 중 하나로, 속이 비어 있는 기둥 모양의 패턴이 무수히 배열된 실리콘 마스터 위에 고분자 물질을 떨어뜨리면 모세관 현상에 의해 고분자 물질이 기둥을 채우는 현상을 이용한 것이다. 이 때, 평소에는 액체 상태였다가 자외선을 가하면 경화되는 특성을 가지는 물질을 이용하면 100nm 지름의 미세섬모가 제곱센티미터 당 10억 개 이상 존재하는 매우 정교한 패턴을 손쉽게 대면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구조물 위에 백금을 얇게 코팅한 후 두 개의 미세섬모 배열을 서로 맞닿게 결합시키면 미세섬모 간 상호체결(interlocking)이 발생하면서 상/하 부재 사이에 전기전도성 결합이 생성된다. 이러한 미세섬모 결합은 외부의 아주 작은 자극에도 결합 길이가 변하면서 전기 저항의 변화가 발생하게 되므로 실시간으로 정밀한 외부자극의 변화를 감지해 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얇은 PDMS(polydimethylsiloxane) 막으로 양쪽 면을 밀봉시키면 높은 유연성을 가진 센서가 완성된다.

(c) 압력 공간분포 측정

미세섬모간 상호결합에 따른 저항 변화의 원리를 이용한 본 연구진의 센서는 외부 자극의 종류에 따라 미세섬모의 반응이 변화하기 때문에 피부가 느끼는 것과 유사하게 누르는 힘(pressure), 당기는 힘(shear), 비트는 힘(torsion)과 같은 복합적인 외부 자극을 감지할 수 있다. 압력의 경우 감지 가능한 최소 크기는 5Pa로, 사람 피부에서의 부드러운 접촉이 1000Pa 정도의 압력임을 감안할 때 매우 미세한 크기의 자극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표면 전단의 경우 최소 0.001N, 비틀림 힘의 경우에도 최소 0.0002 Nm의 매우 작은 힘을 감지할 수 있었다. 동일한 센서 구조에서 서로 다른 종류의 자극을 감지할 수 있는 성질은 현재까지 알려진 다른 종류의 압력센서와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본 센서에 사용된 고분자 미세섬모는 높은 복원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약 10,000번의 반복 자극 실험에서도 신뢰성 있는 결과를 가진다.
또한 이렇게 만들어진 센서가 실시간으로 정밀한 외부자극을 감지할 수 있는지 실험적으로 확인해 보기 위해, 초소수성 표면으로 코팅된 센서 위에 매우 작은 20마이크로리터 크기의 물방울을 떨어뜨려 본 결과 0.4초의 시간 동안 물방울이 여러 차례 표면과 부딪히면서 튕기는 현상을 실시간으로 감지해낼 수 있었다. 또한 손목에 센서를 부착하여 평상시와 운동을 하고 난 후의 맥박의 주기 변화 및 혈관 압력의 차이를 관찰해 봤는데, 평상시(분당 60회, 압력 100Pa 내외)와 운동 후(분당 100회, 압력 300~400Pa)의 차이를 뚜렷하게 측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센서를 64개의 공간으로 분할해 무당벌레의 위치를 감지하는 실험을 통해 미세한 압력의 공간적인 분포도 측정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자연에 존재하는 미세섬모 결합의 원리를 이용한 본 연구진의 센서는 비교적 저렴하고 간단한 방법을 통해 높은 정밀도와 유연성을 가지면서 넓은 면적으로 제작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본 센서 기술은 IT분야에서는 태블릿,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등에 사용될 수 있는 박막형 압력감지 센서, 로봇공학 분야에서는 휴머노이드 로봇의 촉각(haptic)센서 및 인공피부 센서와 각종 정밀 기기 관련 분야로의 활용이 기대된다. 또한 의공학 분야에서도 생체신호 관찰을 위한 피부 부착형 장비 및 수술 보조기구와 관련하여 새로운 파급효과를 줄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본 연구진도 앞서 언급한 다양한 분야로의 활용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