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학
미래학
  • 임춘택 / 카이스트 교수
  • 승인 2012.11.21 21: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래학과 기술사상

정치학ㆍ경제학의 실패, 그리고 미래학

삼성과 애플의 ‘스마트폰 전쟁’에서 승자는 누구일까?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근본원인이 월가의 도덕적 해이 때문일까? 남유럽국가들의 재정위기는 과도한 복지 때문일까?
그런데 국제 신용평가사나 세계적인 경제학자들도 글로벌 금융위기의 촉발 시기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 남유럽 국가재정 위기가 프랑스, 영국, 독일까지 전파될 지 아직 잘 알지 못한다. 정치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정권도 교체해봤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다. 21세기 들어 세계는 더욱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이렇듯 미래 전망은 불투명하고 예측은 쉽지 않다. 미래학(futures studies, futurology)이 필요한 이유다.
미래예측이 잘 맞지 않은 사례들도 많다. 영국 왕립학회 회원이던 켈빈 경은 1895년에 ‘공기보다 무거운 기계는 날 수 없다’고 했지만, 10년도 안 돼 라이트 형제는 비행 시험에 성공하게 된다. 워너 브러더스 영화사를 창설한 워너 회장은 1927년에 ‘누가 배우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하겠는가?’하고 무성*더빙 영화의 전성을 예언했다. 1943년에 IBM 회장은 ‘세계 시장에서 컴퓨터는 5대 정도만 팔릴 것이다’고 전망했다. 한편, 1950년대에는 10년 안에 원자력으로 가동되는 진공청소기가 나올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미래학이 체계화되고 신뢰성을 갖게 된 것은 과학기술이 지구와 인간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깊이 연구하게 된 1970년대 이후다. 로마클럽에서 1972년에 발행한 <성장의 한계 The Limits to Growth> 보고서는 1900년대부터 1970년까지의 데이터를 토대로 2100년까지의 인구ㆍ산업화ㆍ오염ㆍ식량생산ㆍ자원고갈에 대해 예측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또한, 1973년 앨빈 토플러의 <미래 쇼크 Future Shock>는 컴퓨터와 정보기술이 가져올 미래사회를 상당히 정확하게 예측했다는 평가다.
한편, 미래를 예측하는 일이 반드시 미래학만의 영역은 아니다. 정치학에서는 권력의 이동(power shift)과 경제력, 문화적 영향력 등을 토대로 국가별 흥망성쇠를 진단한다. 기업의 성공과 실패, 금융과 자본의 흐름을 예측하는 것은 경영학과 경제학의 오랜 화두다. 관건은 예측의 신뢰성에 있다. 전 세계의 수많은 정치학자들이 소련의 갑작스러운 붕괴를 예측하지 못했고, 우리나라에서도 김일성ㆍ김정일 부자가 사망하면 북한 정권이 붕괴할 것이라고 전망한 정치학자들이 상당수였다. 주식시세나 환율, 국제유가를 제대로 맞춰 ‘정보=돈’인 전문가는 극소수다. 
미래예측에는 항상 불확실성과 오판 가능성이 동반되므로, 어떻게 이를 줄일지가 초점이다. 세계적인 미래학자인 짐 데이터(Jim Dator) 하와이대 교수(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 초빙 예정)는 미래예측에서 고려해야 할 5가지 요소로 STEEP(Social, Technological, Economy, Environmental, Political factors) 즉, 사회ㆍ기술ㆍ경제ㆍ환경ㆍ정치를 지목한다. 이 중 정치나 경제가 미래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로 종종 거론되지만, 현대사회 들어 정치는 영향력이 약화됐고 경제는 발전의 원인이라기보다는 그 결과다. 이에 기반을 둔 미래예측이 잘 맞지 않는 이유다. 다음, 사회와 환경은 미래에 영향을 주긴 하나 중간결과(throughputs)의 성격이 강하다.

미래예측의 핵심요소는 기술

결국, 미래예측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기술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특히, 산업혁명 이후 지난 250년의 세계사를 보면 이 점은 선명하다.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세계를 제패했고, 프랑스, 독일, 미국, 일본은 모두 후발 산업혁명 국가들이다. 미국의 남북전쟁은 농업기반의 남부와 상공업 기반의 북부 간 ‘산업재편 전쟁’이며, 1ㆍ2차 세계대전은 ‘무기기술 전쟁’이었다. 2차 대전 승전국인 영국·프랑스가 패권을 내주고 쇠퇴하는 반면 패전국인 독일·일본이 경제 대국이 된 아이러니는 ‘기술력’으로만 온전히 설명된다.
인류역사도 기술 중심의 역사, 즉 기술사관(技術史觀)으로 볼 때 가장 명쾌하게 이해될 수 있다. 구석기ㆍ신석기ㆍ청동기ㆍ철기 시대로 인류사를 구분하는 이유가 단순히 유물물리적 성질 때문만은 아니다. 사회생활이나 종교·정치·군사가 모두 당시 지배적 기술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춘추전국 당시 유가ㆍ묵가ㆍ도가ㆍ병가ㆍ법가 등이 백가쟁명(百家爭鳴)을 했는데, 오늘날 기술ㆍ무역전쟁 시대에는 기계ㆍ전자ㆍ화학ㆍ재료기술 등이 합종연횡하며 기업과 국가의 명운을 건 첨단 경쟁을 하고 있다. 따라서 기술을 단지 제품성능을 개선하는 수단이나 개별 발명의 산출물로만 인식해서는 올바른 역사인식을 할 수 없으며, ‘체계화된 기술 지식(systematic tech-knowledge)’ 즉 ‘기술사상(技術思想)’으로 이해해야 한다.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는 과거 정치·군사 사상가였던 공자나 묵자, 제갈공명과 같은 역할을 하는 ‘기술사상가’로 평가할 수 있다. 

21세기에는 기술사상이 국가운명을 좌우

기술사상적 관점에서 앞의 질문에 답해본다. 우선, 스마트폰 전쟁의 승자는 삼성으로 전망한다. 최근 판매실적이 좋아져서가 아니라, 스티브 잡스 생존 시부터 양사 기술의 사상적 특징을 관찰해온 결과다. 극복하기 어려운 기술보다 베끼기 쉬운 디자인을 앞세운 애플, 호환성과 고객 편의성보다 독창성과 혁신을 앞세운 애플의 기술사상은 ‘옳은 것이 이긴다’로 압축되는 반면, 시장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삼성의 기술사상은 ‘이기는 것이 옳다’로 압축된다. 물론 정의롭지 않은 기술사상이 좋다는 뜻은 아니다.
두세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모두 ‘중국’이다. 즉,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이 잘못해서 경제위기가 초래된 것이 아니라 세계 제조업의 블랙홀인 중국이 근본원인이라는 것이다. 1991년 탈냉전 이후 전 세계는 미국을 정점으로 한 북미축, 독일을 정점으로 한 유럽축, 일본ㆍ중국ㆍ한국을 정점으로 한 아시아축 등 3대 축간 경쟁이었다. 현재 세계 엔지니어의 1/3을 중국이 배출하고, 아시아의 논문 수는 북미, 유럽을 앞질렀다. 특허는 미국-일본-독일-중국-한국 순이지만, 현재 추세대로라면 4년 이내에 미국은 중국이나 일본에 추월당할 전망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미래다. 지난 50년의 경제성장은 우리 민족의 두뇌가 갑자기 좋아져서도 아니고 베트남에서도 2천 년 이상 써왔다는 ‘젓가락 기술’ 때문도 아니다. 기술권력의 축이 동아시아로 넘어오는 시기에 최고의 인재들이 조선ㆍ철강ㆍ자동차ㆍ전자ㆍ화학 분야 등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미래의 ‘기술장군’과 ‘기술사상가’를 배출할 기술사관학교로서 카이스트와 포항공대 등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