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는 길
오르는 길
  • 이승훈 객원기자
  • 승인 2012.11.21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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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콤플렉스
어느덧 수능 시험이 끝나고 수험생들이 분주 해지는 입시철이 다가왔다. 지금 수험생들에게는 자신의 수능 점수와 희망 지원대학과의 괴리가 가장 큰 스트레스의 원인이겠으나 이맘때쯤이 되면 나는 그들과는 다른 종류의 스트레스를 겪곤 한다. 이른바 ‘수능 콤플렉스’라고 말할 수 있는, 지난 시절에 대한 기억이 이 스트레스의 원인이다.
많은 학생들이 입시철이 되면 자신이 겪어온 입시와 수능 점수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나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이맘때쯤에는 내 수능점수에 대해서 그리고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 학교와 성적을 고민하던 시절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합격소식을 들었을 때 기뻤던 감정들도 말하곤 하지만 돌아오는 길이 왠지 허전한 것은 그 이후에 입시성공담에 필적할 만한 내 고유의 ‘성공담’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학교에 입학하고 지금까지 7여 년의 시간 동안 이런저런 많은 자기소개서를 써내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들’, ‘자신의 노력으로 무엇인가를 이루었던 기억’과 같은 많은 문항들을 채웠던 것은 언제나 ‘열심히 노력해서 명문대를 합격했다’라는 이 학교 모든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진부한 성공담이었다. 늦은 밤 포장마차에서 흔히 들려오던 “내가 왕년에” 로 시작하는 과거 성공담의 이야기. 나도 결국은 내가 7년 전에 성공했었다는 이야기밖에 전할 수 없는 보통 사람이 돼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아쉬움이 늘 나를 둘러싸곤 했다.
그때, 좋은 성적을 받았던 과거의 나는 계속 그 자리에서 미화돼 가고 그 시절에 묶여 있는 현재의 나는 끊임없이 미화돼 가는 과거의 나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자신을 채찍질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다시 11월 즈음이 되면 나는 그에 버금가는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는 생각에 지난 삶들을 부정하고 자책한다.
사실 천천히 지난 삶을 돌이켜보면 수능에 필적할 만한 큰 성공담은 만들지 못했을 지라도 즐거웠던 기억들과 스스로에게 의미 있다고 할 수 있는 경험들을 만들며 살아왔다. 그럼에도 내가 아직 그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여전히 수능이라는 경쟁체제에 길들여져 현재의 나는 틀리지 않은, 그저 남들과 다른 삶을 살고 있을 뿐임에도 남들과 비교를 하며 정말 이것이 수능점수 몇 점, 백분위 몇 퍼센트의 삶이 맞는 것인지를 끊임없이 자문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은 언제나 빠르게 지나서, 어느덧 올해 신문도 마지막을 향해 간다. 그리고 매일 같은 하루일뿐이지만 새로운 해를 기다리는, 사실은 새로운 나를 기다리는 연말이 다가온다. 아직 연말 분위기를 내기에는 조금 이르지만 혹시 나처럼 과거의 자신에게 얽매여 있는 사람이 있다면 과거의 기억과 그 경쟁체제 속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각자의 삶이 성공담으로 장식되기 보다는 ‘행복담’ 으로 장식되길 바란다. 나는 아직까지도 인간 개개인의 삶이 비교될 수 없다는 그 고리타분한 진리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