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표절과 연구 윤리
논문 표절과 연구 윤리
  • 이인호 기자
  • 승인 2012.10.17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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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지난 9월 28일과 10월 1일 MBC 뉴스데스크에서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의 논문 표절 의혹이 보도됐다. 첫 번째 보도는 1993년 안 후보가 공동저자로 발표한 논문이 제1저자인 김 모 씨가 지난 88년 제출한 석사학위 논문과 일치한다는 내용이었고, 두 번째 보도는 안 후보의 1990년 박사학위 논문이 서울대 서 모 교수의 1988년 박사 논문에서 볼츠만 곡선식을 인용 없이 그대로 가져왔다는 내용이었다.
논문 표절 의혹은 사회 이슈로 대두되더라도 표절 여부의 판단이 명확하지 않을 때가 많고, 명확하게 나오더라도 오랜 검토를 통해서 발표된다. 또한 대중들이 받아들이는 표절의 여부와 학계의 판단에 차이가 발생하기도 한다.
안철수 대선 후보의 논문 표절 의혹에 대해 한국뇌신경과학회가 발행하는 국내 학술지 ‘Experimental Neurobiology’의 편집자로 있는 우리대학 김경태(생명) 교수는 “학위 논문에는 동료과학자들과 함께 연구한 내용을 싣게 되는데, 학위 논문을 타 저널에 싣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안 후보의 학위 논문 표절 주장은 잘못됐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한 학술지 편집자로 있는 우리대학 A 교수도 “볼츠만 곡선식을 베꼈다고 표절이라 하기에는 볼츠만 곡선식은 학계의 일반적인 지식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에 표절이라 간주하기 힘들다”며, 안 후보의 표절 의혹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처럼 표절 의혹이 발생하고, 큰 논쟁거리가 되는 주요한 까닭은 논문 표절 여부 판단이 한편으로는 상당히 주관적이며, 해당 학문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어야 판단 가능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교육과학기술부가 공개한 ‘연구윤리확보를 위한 지침’에 따르면 표절이란 타인의 아이디어, 연구내용*결과 등을 정당한 승인 또는 인용 없이 도용하는 행위를 말하는데 이 기준이 모호하여 논란의 여지가 발생하곤 한다.
이처럼 표절을 바라보는 언론 및 대중들과 학계의 시선이 차이가 나는 까닭은 대중들이 표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반 대중들은 논문을 접할 기회가 사실상 없기 때문에 논문 작성과 연구부정행위가 연구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체감하기 힘들다. 또한 매년 수천 편 이상 게재되는 논문의 표절여부를 전부 검사하는 기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표절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표절유무를 처음으로 판단하는 주체는 각 연구실에 연구비를 제공하는 연구재단이다. 연구재단에서는 논문 계획서 단계부터 조사해 의도적인 표절을 차단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는 논문을 게재할 때 각 학술지의 검토위원이 표절을 검사하게 된다. 검토위원이 표절을 검사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은 논문의 핵심 키워드를 입력하여 비슷한 논문을 검색하는 것이다. 논문이 게재되고 나서는 연구자들이나 학술지의 독자들이 표절여부 심사를 의뢰하여 표절유무를 판단한다.

   

우리나라 논문 표절은 상당한 빈도수로 발생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이상민 국회의원에게 제출한 ‘최근 5년간 대학별 교수 논문 표절 사례 및 조치결과’ 자료에 따르면, 2008년 1월 초부터 2012년 6월 말까지 총 83건의 표절 사례가 적발됐다. 그 중 공학 분야의 논문 표절 건수는 14건, 이학 및 자연과학 분야는 6건으로 조사됐다. 이 사례들을 분석해보면 연구논문 표절(35건)과 논문중복게재를 포함한 자기표절(17건)이 주를 이뤘고, 연구실적물 표절(10건) 및 중복게재(4건), 저서표절(3건) 및 중복출판(1건)이 뒤를 이었으며 창작실기작품 중복 발표와, 연구계획서 표절, 연구보고서 표절의 사례도 있었다. 조치결과로는 경고(23건)가 가장 많았으며, 감봉(6건), 연구비 반납 및 제한(11건), 재임용탈락(2건), 정직(10건), 해임 및 파면(7건) 등이 있었다.
논문에는 데이터와 그 데이터의 해석이 포함되는데, 이 중에서 대다수의 논문 표절은 데이터 자체를 도용하는 경우보다는 데이터 해석을 표절하는 사례이다. 이와 같은 사례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유는 다른 논문에서 아이디어나 설명을 가져올 때, 인용을 하지 않고 마치 자신이 처음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쓰는 행위나 기존의 자신의 논문을 일부만 바꾸어 다른 저널에 게재하는 자기표절이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표절이 밝혀진 경우에는 해당 학술지의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가 표절 논문을 게재한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할 수 없게 된다. 또한 학술지 간의 연결망이 구축되어있기 때문에 중복게재 시에도 마찬가지로 해당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할 수 없게 된다. 또한 학술지 발행사에서 대학에 연락을 하고, 해당 대학에서는 조사위원회가 열려 표절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김경태 교수는 “과학자의 가장 중요한 윤리덕목인 정직성을 어기는 표절 등의 연구부정행위가 일어나면, 그 과학자는 학계에서 과학을 할 자격이 없는 것으로 여겨지고, 그에 대한 조치가 취해지게 된다. 조치의 경중은 부정행위를 고의적으로 저질렀는지를 기준으로 정해진다”고 말했다.
논문표절이 발생하게 되는 이유로는 1차적으로 연구자 개인의 윤리의식 결여이다. 또한 교수의 능력을 논문의 수로 판단하는 사회의 실적주의도 논문 표절 발생에 큰 몫을 했다. A 교수는 “대학에서 교수에게 논문을 많이 쓰고 질을 높일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논문의 질은 논문이 실리고 몇 년이 지나야 판단할 수 있지만, 논문의 수는 바로 결과가 나타난다. 그러나 논문을 쓸 주제가 많지 않기 때문에 빠른 시간 내에 논문의 수를 늘리기 위해, 또, 설마 내가 걸릴까 하는 마음에 표절을 하게 된다”라며 사회에서 가하는 압박으로 인해 표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편, 논문표절이 사회적인 이슈로 자주 등장하자 학술진흥재단은 지난 2007년 연구윤리정보센터 설립을 지원했다. 현재 연구윤리정보센터에서는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윤리 교육에 활용할 수 있는 관련 자료를 제공하고 있으며, 수집한 데이터는 연구윤리정보센터 홈페이지 ‘좋은연구’(http://www.grp.or.kr)에 공개돼 있다. 또한, 연구실 단위로 대학원 과정 입학생을 대상으로 연구생활 교육이 이뤄지기도 하고, 각 학회에서도 지속적인 연구윤리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대학에서도 연구 부정행위 발생 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를 설치하는 규정이 있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부정행위에 대한 조사의 착수 및 조사결과의 승인·제보자 보호 및 피조사자 명예회복 조치·연구진실성 검증결과의 처리 및 후속조치에 대한 심의 및 의결의 권한이 있으며 부정행위 관련자에 대한 총장에게 징계조치를 권고할 수 있다. 최근 5년간의 표절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부정행위에 대한 조치는 경고부터 파면까지 부여될 수 있다.
5년간 논문표절 사례 적발에 우리대학 교수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대학원의 비중이 큰 우리학교 특성상 연구윤리문제는 더욱 중요한 상황이다. 그에 더해 중앙일보가 지난 9일 발표한 2012 대학평가 자료에 따르면 작년 상위 20% 국제학술지에 게재한 논문 수가 1인당 2.2편으로 국내 1위에 올랐다. 이를 뒤집어 보면 논문 수에 비례하여 우리대학 교수들과 대학원생들이 받는 압박도 매우 강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연구실 수준에서 지도교수가 직접 가르치는 연구생활 교육 이상의, 연구윤리를 다루고 있는 교과목은 학부와 대학원의 교과과정을 통틀어 전무한 상황이다. 연구자에게 논문은 연구의 표현이고, 연구자로서의 삶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논문 게재의 근본적인 목적은 학계의 발전을 위해 최신의 연구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설명하는 것이다. 우리대학의 구성원 역시 논문표절 문제는 주위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더불어 학교 단위의 관심도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