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채색한 문학적 상상력, SF
과학을 채색한 문학적 상상력, SF
  • 고장원 / SF칼럼니스트
  • 승인 2012.10.17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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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소설, 그 존재 의의와 간략한 역사
현대 산업사회에서 인간은 과학 없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어렵다. 거두절미하고 석유정제 기술 없이 자동차 기름은 고사하고 싼 값에 대량 소비할 수 있는 팬티와 브래지어를 시장에 어떻게 공급한단 말인가. 복사기 없이 지금처럼 효율적인 사무환경과 비즈니스 여건이 조성될까. 첨단통신기술의 도움 없이 언론이 오늘날과 같은 위상을 확보할 수 있을까. 심지어 싸이월드와 세컨라이프 같은 사이버 메가 커뮤니티에서는 사이버부동산을 포함하여 물리적 실체로 존재하지 않는 온갖 것들까지 사고파는 시대 아닌가.
   

과학은 상아탑 속의 독립된 존재가 아니다. 교통수단의 발달로 전국은 물론이고 태평양 건너까지 일일생활권에 들게 되자 국가간 무역과 증권시장, 패션 그리고 문화상품 등이 발 빠르게 유통됨은 물론이고 불과 며칠이면 급성 전염병이 지구촌을 한바퀴 도는 세상이 되었다. 특히 의료기술의 발달은 괄목할만하다. 올해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병원에서는 피부암으로 귀를 잃은 환자의 팔에 갈비뼈 연골을 이식해 귀를 만든 후 다시 이식하는데 성공했다.1) 최근 유전공학의 발달 추이로 보건대, 일찍이 1970년대 폴란드의 과학소설 작가 스타니스와프 렘이 예견했던 대로 DNA를 정교하게 조각해서 혈연관계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백만장자의 자식이라 여기지 않을 도리가 없는 아이가 조만간 태어날지 모른다.
이처럼 과학은 단지 인간의 삶을 안락하게 만들어주는데 그치지 않고 사회문화와 법 그리고 윤리의 테두리 안으로 비집고 들어와 우리의 의식세계에까지 심대한 영향을 준다. 가령 KTX와 광역철도망 기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그 취지가 좋다 한들 세종시로의 수도행정기능 일부 이전은 실현되지 못했을 것이다. 흔히 거론되는 ‘과학자의 윤리의식’같은 문제는 갈수록 긴밀해지는 과학과 인간사회의 관계에서 아주 지엽적인 차원에 지나지 않는다. 과학은 그 발달추이가 빨라질수록 그리고 그 파급범위가 넓어지고 다양해질수록 인간사회와 인간 자체에 대한 정의를 계속 다시 수정하라고 주문할 것이기 때문이다. 복제인간의 허용문제를 둘러싼 뜨거운 논쟁이 좋은 예다. 한발 더 나아가서 만일 인간의 지성을 넘어서는 인공지능이 탄생한다면 그리고 이러한 존재가 그에 걸맞는 권리와 대우를 주장한다면, 혹은 인간보다 훨씬 앞선 문명을 자랑하는 외계인들이 지구를 방문하는 날이 온다면, 만물의 영장이라 자부해온 인간의 위상은 여지없이 흔들릴 것이다.
과학소설이 진면목을 드러내는 순간이 바로 이 대목이다. 과학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라지만 그것이 인간의 손에 넘어가는 순간 치명적인 대량살상무기로 돌변하거나 기존의 윤리와 관습을 여지없이 무너뜨려버리기 일쑤다. 그러나 과학이 빚어내는 이러한 여파는 (그것이 인류에게 이롭든 해롭든 간에) 과학의 연구대상이 아니다. 이 뒷수습은 인류가 자신을 돌아보는 거울로 오랜 동안 갈고 닦아온 문학, 그중에서도 과학소설의 몫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영국의 과학소설가 브라이언 올디스는 과학소설이 “우주에서 인간의 정의와 그 위상을 혼란스럽지만 진보하는 지식 안에서 추구하는 것”이라 정의하였다.
현대과학소설의 효시로는 1818년 메리 셀리가 발표한 <프랑켄슈타인: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를 꼽는 것이 상례지만, 그 맹아는 2세기 시리아 지방의 로마인 루키아누스가 지은 <참된 역사 True History>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현대의 과학지식과 맞비교하기는 곤란하지만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중세 그리고 근대를 거치면서 작가들은 당대의 과학지식에 비추어 외계에 대한 나름의 사색을 세태풍자와 버무려 놓았다. 개중에는 독일의 요하네스 케플러와 영국의 프랜시스 베이컨 그리고 프랑스의 까밀 플라마리옹처럼 과학자 출신으로 과학소설을 쓴 사례도 있다.
20세기 초 과학소설은 H. G. 웰즈와 줄 베르느를 필두로 하여 올더스 헉슬리와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찐 그리고 조지 오웰 등을 통해 과학문명시대를 통찰하는 사색의 문학으로 그 진가를 드러냈다. 하지만 이러한 문학형식이 영속성 있는 하나의 장르문학으로 자리 잡게 된 계기는 1920~30년대 미국 펄프잡지 시장의 성장 덕분이다. 휴고 건즈백과 F. 올린 트리메인, 데스먼드 W. 홀 그리고 존 W. 캠벨 같은 명편집자들의 활약에 힘입어 과학소설은 펄프잡지 시장에 주요한 컨텐츠 공급원이 되었고, 1940~50년대 이 시장이 절정에 달한 이래 오늘날까지 과학소설의 본고장하면 미국을 떠올리게 되었다.
1960년대부터 21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과학소설은 몇 차례 진통을 거쳐 문학적으로 더욱 성숙하게 된다. 1960년대 말 영미권의 일부 작가들을 중심으로 전개된 뉴웨이브 운동은 과학소설이 단지 진기한 아이디어 문학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을 살피는 성찰의 문학이 되도록 과학소설 전반에 자극을 주었다. 1970년대에는 페미니즘 SF가 하나의 대안으로 제기되면서 남성독자 대상의 가부장적 사고에 젖어있던 플롯과 내러티브에서 여성이 주체적인 캐릭터로 부상했다. 1980년대에는 일본의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큰 영향을 준 사이버펑크 운동이 영미권에서 일어났다. 과학문명의 낙관적인 비전 대신 현대산업사회의 어두운 면을 주변부 인생들의 삶을 빌어 그려냄으로서 과학소설은 순문학 못지않게 세련된 이야기를 풀어냈다.
1990년대부터 21세기 초까지의 과학소설은 하나로 특징짓기에는 곤란한 다원화 양상을 보여준다. 한편에는 과학을 작품의 근간으로 충실히 삼는 하드SF가 건재한 가운데 사이버펑크가 한층 업그레이드된 세기말 버전이라 할 포스트 사이버펑크 작품들과 과학과 환상을 사회공학으로 진지하게 접붙이려 시도한 뉴위어드(New Weird) 작품들 그리고 포스트 휴먼에 대한 정의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특이점SF(Singularity SF) 등이 백가쟁명하고 있으며 하위장르 간 교배도 활발하다. 예컨대 한때 우주판 서부극이라 비난받던 스페이스오페라는 최근 하드SF와 결합되면서 지적인 독자들을 충분히 흡인할 수 있는 세련된 문학으로 거듭나고 있다.
혹자는 과학이 한없이 발달하다 보면 기존 문학과 과학소설 간의 차이가 없어지면서 과학소설이란 정체성이 퇴색될 것이라 주장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류가 과학을 손에서 내려놓지 않는 한 과학소설이 던지는 문제제기와 그것이 의미하는 가치는 영원히 유효할 것이다, 그러한 문학형식을 뭐라 이르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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