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채색한 문학적 상상력, SF
과학을 채색한 문학적 상상력, SF
  • 이승훈 객원기자
  • 승인 2012.10.17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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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와 현실 과학 간의 상호작용
SF가 Science Fiction의 약자인 것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과학이 포함된 소설과 영화를 의미하며 국내에서는 흔히 ‘공상 과학 소설’이라고 번역된다. 현실적이지 못한 것을 막연히 그려본다는 뜻인 ‘공상’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한국 사회에서 SF에 대해 가지는 일반적인 인식 정도를 알 수 있다.
국내에서 SF라는 장르는 중고등학생 때 자주 접하는 무협/판타지 소설들에 대한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나라 많은 학부모들이 그리 바라는 ‘과학영재’의 과학이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음에도 그들에게 SF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장르소설로 국내에서 인식돼 왔다는 것이다. 과연 SF는 Science Fiction이 아니라 과학이라는 탈을 쓴 Science Fantasy에 지나지 않는 저급한 콘텐츠에 지나지 않는가? 실제로 SF라는 장르 내에서 과학은 SF에 어떤 소재적/기술적 도움을 줬으며, 과학은 SF로 인한 상상력, 그 ‘공상’에 기반을 두어 어떻게 그 지평을 넓힐 수 있었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이 글은 쓰였다.
역사소설, 로맨스 등의 특정 소재를 다룬 모든 소설, 영화들이 그래왔듯이 SF도 대중의 과학적 관심사에 따라서 그 소재가 꾸준히 변해왔다. 특히 이 경향성은 SF 소설에 비해 영화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이는 SF 소설이 영화에 비해 역사가 길기 때문에 그 시대의 관심사에 따라 영화화하려는 소재를 취사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다시 말해 이미 SF 영화 내에서 소비되고 있는 대다수의 소재라는 것이 대부분 과거에 쓰였던 소설 내에서 상상됐던 것과 크게 벗어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소설들이 현재와 같은 과학기술이 발달하기 전에 쓰였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결국 SF가 상상했던 범위에서, 과학기술이 발전해왔다는 비약까지 가능해진다.
실제로 스티븐 호킹은 SF 소설에 대해 “한때 허구에 불과했던 상상 속의 산물(Science Fiction)들이 과학적 사실(Science Fact)로 판명되는 것을 생각하면, 현재 기술력의 한계일 뿐, 이론적으로 분명히 가능한 것은 많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프랑스의 과학소설가인 쥘 베른이 SF 소설에서 언급했던 달 로켓, 잠수함 등은 현재 기술로 모두 가능하다. 물론 실제로 이 SF 소설에서의 개념이 과학기술을 통한 로켓, 잠수함 등의 현실화에 도움을 줬는지 정확히 측정할 수는 없으나, 흥미로운 것은 쥘 베른이 이와 같은 개념을 만들어냈던 시대는 1800년대이며 그 당시 기술로는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토탈 리콜’에서 등장했던 ‘로봇택시’, SF내에서 빈번하게 활용되는 ‘로봇’, ‘사이보그’, ‘마이너리포트’에서 등장한 증강현실과 새로운 디스플레이, 인터페이스의 기술들은 현재에 와서 거의 실현되고 있다.
그렇다면 반대로, SF내에서 과학은 크게 다음과 같은 소재들로 소비된다. ‘유전자 조작’, ‘복제 인간’등의 개념이 포함된 생명과학적인 소재, ‘제2차 세계 대전’, ‘체르노빌 원전 폭발’등과 연결된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 ‘우주와의 교신’, ‘외계생명체’등이 포함된 스페이스 오페라, ‘IT기술로 인한 감시체제’, ‘빅브라더’의 개념이 포함된 미래감시체제, ‘인간이 되려는 로봇’, ‘로봇과 인간의 대립’ 등을 담은 로봇물 등이 현재의 SF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과학적 소재라고 말할 수 있다.
각 소재에 포함되는 관련 영화로는 DNA를 통한 생물체의 복원을 담은 ‘쥬라기 공원’, 유전자에 근거한 차별을 담은 ‘가타카’, 로봇과 인간의 전쟁으로 황폐해진 미래를 담은 ‘터미네이터’, 외계생명체를 담은 ‘에어리언’, 외계와의 교신을 담은 ‘콘택트’, 미래의 감시체제를 다룬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마이너리티 리포트’, 로봇을 통해 인간의 정의를 묻는 ‘A.I’, ‘블레이드 러너’ 등의 영화들이 SF의 범주에 포함된다. 이 영화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SF가 단순히 허무맹랑하고 흥미 위주의 이야기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로 인한 사회적 영향력, 과학기술의 윤리적인 면을 다룬다는 것이다. 물론 많은 SF 소설 및 영화들이 볼거리와 흥미 위주로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관객들 또한 SF를 접하는 기본자세는 SF에서 보여주는 사회적/윤리적 문제보다 3D와 화려한 그래픽에만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하드 SF라고 불리는 초기의 SF들이 철저한 과학적 사실에 기반을 두어 만들어져 온데 반하여 최근에 이르러서 SF의 범위는 ‘현재에는 없을지라도 인간의 인식이 닿을 수 있는 부분을 다루는 장르’로 재정의 됐다. 물론 SF에 철저하게 과학적인 사실만이 담겨야 하는가, 지나치게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담겨도 되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있다. 하지만 과학도 SF도 기존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고 상상한다는 측면에서 같은 맥락에 있다고 보며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과학은 SF로 인해 더 넓은 상상의 지평을 얻게 될 것이며, SF 또한 과학으로 인해 더 풍요로운 소재와 현실적인 개연성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