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더위보다 뜨거웠던 강의 열기…석학을 만나다
여름 더위보다 뜨거웠던 강의 열기…석학을 만나다
  • 정재영 기자
  • 승인 2012.09.05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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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대학교 강신표(문화인류학 및 문화사회학) 명예교수

마지막 강의라는 생각으로 열정을 쏟아 부었던 수업


그의 행동, 그의 말 하나하나가 문화인류학자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준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문화인류학, 특히 한국학에 있어 세계적인 문화인류학자로 명망 높은 강신표 교수는 작년 여름부터 <인류학>강좌와 관계된 모든 것들을 기록해놓은 파일을 꺼내 보였다. 인문사회학부와 주고받은 이메일, 강의계획을 메모한 종이, 작년 수업에서 학생들이 남긴 기록물 등을 보관하고 있었다. 수업 시간마다 항상 학생들에게 메모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그는 어떤 것이든지 ‘기록’하는 것이 습관이고 일상이었다. 문화인류학에서는 작은 실마리 하나하나가 큰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강 교수의 강의는 색다른 수업 방식과 독특한 강의법으로 학생들에게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올해 희수(77세)를 맞은 선생은 이번 우리대학에서의 특강을 마지막 강의라는 생각으로 열정을 쏟아 부었다고 말했다. 우리대학 학생들은 비록 인문학적 배경지식은 조금 부족할지라도 가르치면서 똑똑하고 훌륭한 인재들이라는 것을 다시 느꼈고 큰 보람도 느꼈다며, 평소 얼굴과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지만 이번 강좌에서는 수강생 전체의 얼굴과 이름을 외울 정도로 애착이 깊었다고 설명했다.
문화인류학을 연구하게 된 계기와 과정에 대한 물음에 자신은 ‘행운아’였다며 긴 이야기를 짧게 요약했다. “한약방의 아들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의사가 되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중고등학교 시절 당시 이광수의 <흙>과 심훈의 <상록수>에 나타난 농촌계몽운동, 영국의 <페비안 소사이어티> 잡지를 읽으며 관심을 두게 된 사회혁명 등 여러 시대적 배경의 영향으로 문과대학에 진학했다. 그렇게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 진학했고 대학원 석사까지 마쳤다. 1966년 덴마크에서 제3세계의 엘리트들을 무상으로 초청하는 유네스코 세미나가 10주간 열렸었는데 한국대표로 참여하게 됐고, 그때의 주제가 ‘사회조사 방법론’에 관한 세미나였으며 남는 시간에는 영국에 가 인류학자를 만나보는 기회도 얻었다. 그리고 이다음 해인 1967년 포드 재단에서 처음으로 한국학을 위해 50만 불을 지원하고 저명한 인류학자들이 투입됐는데, 한국의 젊은 연구자로 내가 추천됐다. 그래서 하와이 대학 인류학 박사 과정으로 유학을 가게 됐고, 그 당시 발표했던 논문이 미국 인류학회에서 3년 연속으로 공개 논문으로 선정되는 등 세계적인 인류학자들 앞에서 발표하고 토론하는 기회를 가졌다.”
강의가 끝나고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각종 세미나의 사회 요청, 심사위원장, 책 집필, 책 번역 마무리 등이 할 일이 쌓이고 넘쳤다며 우선순위를 정해놓고 하나하나 끝내야 할 실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태까지 그래 왔듯, 강 교수는 한국의 문화를 세계의 널리 알리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고 밝혔다. 우리나라 인류학 1세대로서, 석학의 열정과 도전의 불꽃은 여전히 불타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