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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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재영 기자
  • 승인 2012.09.05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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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노동자 사태, 예산절감의 명암
청소노동자들이 대학본부 앞에서 임금 삭감에 대한 항의농성을 벌인 지 3일째인 지난 7월 27일, 장태현 부총장은 ‘청소 용역업체 변경과 관련하여 말씀드립니다’라는 제목의 메일을 대학 구성원들에게 보냈다. 부총장은 이 글에서 “학교는 투명성과 공정성을 위해 공개경쟁입찰을 도입한 것이며, 청소노동자의 임금 하락은 불가피한 결과였다”며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하지만 공개경쟁입찰의 원리를 생각해보면 청소노동자 임금 결정의 주체는 사실상 대학임을 알 수 있다. 최저가 공개경쟁입찰은 기본적으로 낙찰 기준으로 삼는 예정가격을 비공개로 결정해놓고, 그 예정금액보다 높은 가격을 입찰한 업체 중 최저가의 업체를 선정하는 방식이다. 이번 청소 용역 입찰 결과, 15억 8천만 원을 입찰한 업체가 낙찰되었으므로 예정가격은 실제 낙찰 금액인 15억 8천만 원보다 적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계약비 대부분을 인건비로 지급하는 청소 용역 계약에서, 대학은 기존 용역업체와의 계약금이었던 17억 7천만 원보다 1억 9천만 원 이상이 더 낮은 금액을 하한가로 설정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대학은 적절한 예정금액 책정을 통해 충분히 청소노동자의 임금을 어느 정도까지 보장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실제로 학교가 청소용역 계약 입찰 조건으로 제시한 내용은 고용승계와 최저임금 보장 두 가지에 불과했다. 이외에 입찰가격에 참고사항이 될 수 있는 기준금액과 기존 청소노동자들의 급여 등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았다. 결국, 이번에 새로 선정된 업체는 청소노동자 임금을 최저 임금 수준으로 가격을 책정하여 입찰하였고 낙찰됐다. 용역업체 측도 자신들이 책정한 임금이 기존 임금의 70~80%라는 사실을 낙찰 이후에 알게 되었다고 밝혔고, 만일 이 발언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1차적인 책임은 임금 대폭 삭감의 여지를 제공한 대학 측에 있다. 하지만 학교는 “현재로서는 정당한 절차에 의해 낙찰된 신규업체가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주체라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면서 사실상 책임을 용역업체에 떠넘기고 있는 실정이다.
투명성과 공정성을 앞세운 계획된 예산절감이 아니라면, 포스텍이 글로벌 리더를 양성한다는 지성의 전당이라면 이제는 대학 측이 절약한 1억 9천만 원의 금액을 청소노동자 임금 추가 지급이나 청소노동자 복지 처우 개선 등으로 쓰는 등 현실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는 없지만, 언제든 다시 채울 수는 있다. 그리고 해결의 열쇠는 전적으로 대학의 태도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