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교를 사랑하라고 하지 않는다
나는 학교를 사랑하라고 하지 않는다
  • 이종찬 / 물리 통합
  • 승인 2012.09.05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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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05년도에 포스텍 물리학과에 입학했으며, 2009년도에는 우리대학 물리학과 대학원으로 진학했다. 장장 8년째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나는 여러가지 이유로 우리학교를 사랑한다. 당연한 얘기로, 가족들 간에도 조화로운 순간들과 상처를 주는 순간들이 있듯이, 나 역시 우리학교에 대해서 실망하는 순간들과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순간들을 경험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우리학교를 사랑한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나의 사랑의 이유를 설명하며 학교를 사랑하라고 말하지 않으려 한다. 예컨데, 포스텍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설립이념을 설명하는 것-정말 위대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은 물론 좋은 일이지만, 사랑을 느끼고 말고는 설명하고 강요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내가 학생들에게 큐피드의 화살을 쏘아 ‘포스텍을 사랑하라’라고 주문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아 진짜 갖고싶은 능력이다. 누구에게 쏠지는 비밀이지만). 내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하고싶은 말은 그래서 학교를 사랑하라는 말이 아니라 성숙한 사회적 시민으로서의 시각을 가지자는 말이다. 성숙한 시각으로 학교를 바라보고 판단하고, 그리고 ‘행동’하자. 이것이 나의 주문이다.

학생들은 진공 속에 있는 원형의 포스텍을 가정한다

포스텍의 학생들은 이학, 공학에 특화된 재능을 가진 학생들이고 문제를 단순화해 사고하는 데 익숙해져있다. 그래서인지 많은 경우 우리 학생들은 대학-학과 혹은 대학본부-내에도 구성원 수 만큼의 여러 주체들이 있고 그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운영되는 조직이라는 점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학생들은 자신들에게 영향을 주는 포스텍을 ‘포.스.텍’이라는 하나의 이데아로 가정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어떤 학생들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자극에 대해 일차원적인 반응만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에 ‘진공 속에 있는 원형의 포스텍’은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의 ‘포스텍’의 모습은 비록 완전한 원형은 아니고 매끈함과 모난 구석들이 혼재하는 복잡체이며, 학생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변화에 큰 영향을 받는다. 하나의 좋은 예가 이번에 국가 이공계장학금이 줄어들면서 SMP, 서머세션 등의 혜택이 함께 줄어든 것이다. 이것은 포스텍이 학생의 혜택을 줄였다는 1차원적인 시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회적 맥락으로 볼 일이다. 국가이공계장학금 이전에도 우리대학은 학생들 전원에게 장학혜택을 제공했다. 그러나 국가에서 이공계 장려 정책으로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공계장학금을 받게 되자, 대학에서 남는 장학혜택을 어떻게 활용할지를 고민하다 낸 결론이 바로 SMP, 서머세션이었던 것이다. 포스텍은 학생들에게 주는 혜택을 줄인 것이 아니라 들어온 외부의 사회적, 재정적 압력에 대해 이공계장학금의 감소분을 교비장학금으로 메꾸는 대신 기타 혜택을 줄이는 ‘선택’을 한 것이다.

현실의 포스텍은 복잡계/복합체다

성숙하고 사회적인 포스테키안이라면 이상적인 포스텍을 염원하는 동시에 현실의 포스텍을 받아들이고 성숙한 피드백을 줄 수 있어야한다. 그러나 표면의 한 사건을 보며 학교와 학생의 근본적 신뢰를 부정하는 목소리들을 들으면 가슴이 아플 때가 많다. 현실의 포스텍은 완전한 원형이 아니고 매끈함과 모난 구석들이 혼재하는 복잡체인 것도 사실이지만,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학교는 학생들이 아파할 모난 구석들을 매끈하게 할 준비와 자세가 되어있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봤을 때 학교의 구성원들은 인내심과 책임감으로, 학생들의 의견을 수용하고 존중할 자세가 되어있으며 나는 그것에 감사한다. (물론 종종 그렇지 않은 경우를 만날 수도 있다. 여기는 현실이라니까!) 학생들은 성숙한 성인으로서 현실의 포스텍은 모든 것이 이미 둥글고 잘 차려진 상태가 아니라 모난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은 부딪혀가며 바꿔가야하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해야한다. 그리고 성숙한 학생으로서 ‘학교’라는 복합체(이자 복잡계)의 어떤 부분-부서-에 어떻게 접근하고 어떻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지 알아야한다. 이것은 정규 교과 과정에는 없지만, 훌륭한 리더이자 시민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공부해야하는 것이다.

이제는 학생들이 응답할 차례다

제한된 자원을 가지고 어떻게 학생들의 만족과 발전을 극대화하는가가 ‘대학 운영의 예술’이라고 볼 때, 아직 우리대학은 개선할 여지가 많다. 그리고 포스텍의 개선과 발전을 위해서는 학생 여러분들의 성숙한 조언과 피드백이 필수적이다. 긍정적인 것은 지금 포스텍의 리더십이 이전의 어느때보다 전 구성원의 입장을 존중하고 의견 개진을 장려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인내심과 책임감을 갖고 학생들의 의견을 경청하려는 분들을 만나뵐 수 있었다. 이제는 학생들이 성숙한 문제제기, 발전적인 제안을 통해 학교에 기여할 차례다. 학교는 학생의 만족과 발전을 염원하고 있고, 피드백 회로는 가장 강력한 내부 혁신 통로다. 이제는 학생들이 응답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