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의 자정제, 문화콘텐츠 심의
대중문화의 자정제, 문화콘텐츠 심의
  • 이재윤 기자
  • 승인 2012.05.02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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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업에서 심의기구의 역할과 영향력, 상호작용

최근 들어 ‘악마를 보았다, 1분 30초 삭제 후 상영’, ‘비스트 - 비가 오는 날엔, 유해매체물 지정’, ‘23개 웹툰 유해매체물 결정 사전통지서 발송’과 같은 이슈들이 떠오르고 있다. 이는 모두 문화콘텐츠의 심의 및 규제에 관한 것으로, 우리나라는 방송법과 영화법, 청소년보호법에 따라 영화, 방송, 음반, 만화 등 거의 모든 문화 콘텐츠를 심의하고 있다.
문화콘텐츠란 인간의 감성ㆍ가치관ㆍ아이디어 등 문화적 요소를 담아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문화상품을 총칭하는 말로,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키워드이다. 각 콘텐츠의 심의를 담당하는 위원회는 대중문화의 건전성과 공공윤리 확보, 청소년 보호 등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일부 납득하기 어려운 심의결과가 콘텐츠의 생산자와 소비자를 당혹케 하는 경우도 많다.
포항공대신문은 본 기사를 통해 문화콘텐츠 심의기구가 우리나라 문화산업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평가하고, 나아가 문화작품에 대한 심의가 시작된 해방 이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통해 심의기준과 관련 법률의 변화를 시대상에 비추어봤다. 또한 ‘본초비담’의 정철 작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최근 화제가 되었던 웹툰 심의사건의 경과와 시사성에 대해 살펴봤다. 본지는 이를 통해 문화콘텐츠 심의를 둘러싼 각 계층의 갈등을 살펴보고 이들의 이해관계가 부딪히는 ‘심의 기준’의 공정성에 대해 논의하려 한다.
<편집자주>

문화콘텐츠를 창작하여 공급하는 문화생산자 계층과 이를 구매하여 감상하는 문화소비자 계층 사이에 이들 콘텐츠의 가치와 건전성에 대한 평가를 담당하는 심의기구가 포함된 형태가 현재 국내 문화산업의 구조이며, 이들 중 심의기구가 문화산업 구조에 미치는 영향력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심의기구가 설정하는 기준의 틀을 통과하기 위해 콘텐츠의 내용이 맞추어져 생산되기도 한다. 생산자가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는 연령대ㆍ시간ㆍ장소 등도 이들에 의해 제한되면 이처럼 심의기구는 단순히 유해 콘텐츠의 필터링 기능을 넘어서 대중 문화산업을 주도하고 통제할 수 있는 주체로 작용하며, 이에 따른 부정적 측면은 긍정적 측면과 단적으로 대비된다.
심의는 원래 ‘논란의 소지가 있는 표현물을 자세히 조사, 검토하고 협의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행정권이 주체가 되어 실시한 사전심사절차를 통과하지 못한 표현물의 유통을 금지하는 제도’인 검열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행위다. 그러나 문화콘텐츠의 발전을 촉진하고 질적 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심의제도가 자칫 일방적인 대중문화 통제로 변질될 수 있는 만큼, 심의기구의 존재는 문화산업계의 ‘양날의 검’으로 작용할 수 있다.
현재 정부부처와 산하위원회 및 관련 법률 등에 의해 구성되는 심의기구가 ‘공정한 심의’를 수행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작품의 유해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모호하며, 일반적으로 심의과정이 비공개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작품의 유해성을 판정하는 기준이 명확히 명시되지 않은 채 심의기관의 독단으로 작품을 평가하는 불합리한 규제는 문화산업 발전의 장해가 되며, 심의 주체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검열로 남용될 우려가 있다.
실제로 콘솔 게임업계의 경우 같은 내용을 담은 시리즈의 게임에도 게임물등급위원회(이하 게등위)로부터 각각 다른 등급을 부여받거나, 게임을 공급하는 업체가 달라질 경우 심의수수료를 재차 징수하는 등 평가과정이 주관적이고 불합리함을 성토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게등위는 이러한 게임에 대한 심의기준을 명확히 공개하지 않은 채 비영리적으로 공급되는 게임에까지 손을 뻗치며 심의를 받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심의기구에 의해 유해하다고 판정된 작품은 이용이 제한되어 판매량도 감소하며 작품성에 비해 평가 절하되는 경우가 많다. 심의가 단순히 콘텐츠의 유해성뿐만 아니라 상품으로서의 가치와 가능성까지 크게 좌우하는 것이다. 심의과정에 있어 평가가 공정하지 못하다면 콘텐츠 생산자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창작활동 의욕을 상실하고, 소비자는 다양한 문화적 체험의 기회를 박탈당하게 된다. 따라서 심의기구의 폐쇄적인 독단이 아닌, 소비자와 생산자가 함께 참여하며 공감할 수 있는 투명한 심의가 요구된다.
소비자는 콘텐츠의 구매와 평가를 통해 문화산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강력한 주체이다.  행정권 심의기구뿐만 아니라 소비자 계층 또한 모니터링, 불매운동 등을 통해 능동적으로 유해 문화콘텐츠 생산자에 대한 단호한 거부의사를 표현하고 있다. 더불어 소비자 고유의 영역을 침해하는 규제에 대해서도 제제를 가하여, 작품을 자유롭게 이용하고 해석할 권리를 확보하기도 한다. 이러한 행동들은, 간혹 일부 집단의 정치적ㆍ종교적 가치관에 따라 일어나는 경우도 있으나, 국가 공공의 재산인 대중문화의 질적 향상을 위한 노력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또한 문화산업의 생산자 측에서는 단순한 상업적 논리 뿐 만 아니라 대중문화의 형성이라는 문화적 책임감을 가지고 자정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와 같은 콘텐츠에 대한 자율적인 심의는 웹툰 분야에서부터 확대되고 있어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부당하게 적용된 심의기준에 대해서는 생산자 고유의 창작물을 통해 이를 풍자하며 소비자 계층과 소통하고 함께 대항하기도 한다.
문화콘텐츠의 심의에 대해서는 생산자ㆍ심의기구ㆍ소비자로 이어지는 문화산업 각 주체가 서로 공감할 수 있는 합의점을 모색해야 한다. 이러한 요구에 발맞추어 오는 7월에는 민간등급위원회가 구성되어 게등위와 함께 게임물에 대한 심의를 맡아보게 된다. 이처럼 행정권에서 독점하던 콘텐츠 심의권이 실제 문화의 창작자이자 수혜자인 대중으로 이양되는 과도기를 거쳐 자정능력을 갖춘 문화산업 구조가 확립된다면, 대중문화는 규제를 넘어서 우리나라 고유의 가치관과 소통의 매개체로 그 역할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