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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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영섭 기자
  • 승인 2012.05.02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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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 작가와의 대화, '웹툰 심의 사건'
올해 초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에서 웹툰을 심의하겠다고 하여 만화계가 한동안 소란스러웠었다. 사건의 시작은 조선일보였다. 조선일보의 1월 7일자 신문 1면에 ‘귀귀’ 작가의 ‘열혈초등학교’ 작품이 학교폭력을 희화화하고 있고 학교폭력을 조장할 수도 있다는 내용의 기사가 게재되었다. 이 기사를 촉매제로 방심위에서 폭력성을 담고 있는 웹툰이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하여 학원 폭력을 주제로 하는 웹툰들을 집중 단속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반발한 웹툰 작가들은 목동 방심위 건물 앞에서 1인 시위를 전개하고 공영방송, 라디오 등에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하며 1달 반 정도의 투쟁을 벌였다. 결국 문화관광부의 중재로 방심위와 만화계는 MOU를 체결하고 웹툰 자율규제체계 마련에 협력하기로 하며 사건이 일단락되었다.
이에 본지에서는 ‘본초비담’ 등의 작품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철 작가에게 이번 사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이번 웹툰 심의 사건에 대한 견해를 묻자마자 나온 정 작가의 말은 작가들이 심의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작가들도 청소년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이해하고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다시 말해 심의 여부에 대해 반발한 것이 아니라 방심위의 몇 가지 정책들에 대해 반발한 것이라고 했다
정철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번 건에 만화계가 크게 반발한 이유는 다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 이유는 웹툰의 심의기준이 다른 문화 장르보다 높다는 것이고, 두 번째 이유는 청소년 유해매체로 지정되었을 때 영업의 자유가 제제를 받는다는 것이다.
만화계에서는 웹툰의 심의기준이 다른 문화 장르보다 높았다고 보고 있고, 이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었다. 또한 정 작가는 방심위에서 몇 웹툰을 청소년유해물로 판단하는 기준인 청소년보호법이 ‘폭력적 소재’ 사용에 대한 의미를 왜곡하고 있다고 했다. 폭력을 소재로 다루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폭력을 미화하거나 이로 인해 청소년의 정서에 악영향을 미칠 때 청소년유해물이 되는 것이라고 만화계는 해석하고 있다. 방심위의 주장과 같은 맥락이라면 슈퍼맨, 베트맨, 아이언맨 같은 미국의 히어로 영화도 청소년유해물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청소년들에게 공개된 웹툰에서 단순히 폭력을 미화한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다.
또한 청소년 유해매체로 지정되었을 때 영업의 자유가 제제를 받는다는 것에 대해 정 작가는 불만의 소리를 냈다. 영화 같은 경우 청소년에게 유해한 작품이라고 판단되어 18세 관람가 등급을 받는다 하여도 청소년들이 그 영화의 팜플렛, 예고 영상 같은 홍보물을 접할 수 있는 반면, 웹툰이나 만화의 경우 유해매체에 대한 청소년들의 접근이 완전히 차단되는데, 이는 명백한 차별이라고 하였다.
정 작가는 이 외에도 청소년유해매체 지정 절차상의 문제도 지적했다. 작가의 작품이 유해매체로 지정되었다면 어떠한 장면이나 표현이 유해매체로 지정되어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러나 방심위에서는 구체적 이유를 제시하지 않고 단순히 작가의 작품이 정보통신법, 청소년보호법에 의거해 청소년유해매체로 지정되었다고 통보할 뿐이다. 유해매체로 지정된 작가들이 모두 동일한 문서를 받았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정 작가는 “이미 만화계에서는 스스로 사전 심의를 거쳐 작품을 내놓는다. 이 때 외부로부터 ‘어떤 표현이 유해하다’고 지적 받으면, 작가는 그 표현이나 그와 유사한 표현에 대해 기피하게 되고 사전검열의 범위가 넓어진다. 이는 더 나아가 학원액션 장르 같은 특정 장르에 대한 기피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는 표현하는 사람에 대한 폭력이다”라며 심의가 가져올 수 있는 부정적인 면을 언급했다.
방심위의 발표가 있은 후, 만화계에서는 방심위 건물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고 공영방송, 라디오 등에 글을 기고하거나 인터뷰를 하였으며, ‘No cut 로고’를 각 만화가의 작품 끝에 붙이며 자신들의 입장을 대중들과 방심위에게 전달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했다. 그 결과 이번 심의 논란은 만화계의 자율심의로 종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