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향이 만들어내는 차이
지향이 만들어내는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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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4.11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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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하늘>이란 영화가 있다. 1957년 10월 옛 소련의 스푸트니크 인공위성 발사를 보고 영혼이 흔들리는 감동을 받은 아이들의 얘기이다. 탄광촌에서 자라면서 당연히 광부가 될 것으로 여겨지던 아이들이 어느 날 하늘로 치솟는 스푸트니크를 보고는 인생의 지향이자 꿈이 생기는 게 그 시작이다. 주인공은 ‘그걸 하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은’ 열병에 걸려서 독학으로 로켓 제작에 몰입한다. 주위의 반대와 차가운 시선의 와중에 학교 여선생님은 이들을 헌신적으로 지원하고, 주인공이 무작정 편지를 보냈던 당대의 유명한 로켓과학자는 답장을 보내 이들을 격려하며 꿈을 키워나가도록 멘토링(mentoring)한다. 결국 이들은 전국과학대회에서 구름 위로 로켓을 발사하며 주위를 놀라게 하고 우승한다. 실화에 기초했다는 이 영화의 에필로그에 따르면, 주인공은 탄광촌에서 탈출해서 훗날 NASA의 과학자가 되었다고 한다.
흔히 동기 부족, 모티베이션 부족이 문제라고들 하는데 이는 포스텍 학생들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국내 최고의 우수한 인재들인 우리 학생들이 ‘그걸 하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은’ 각자의 꿈을 가지고 있다면 이루지 못할 게 없을 텐데걖?걖? 첫사랑의 열병 같은 꿈은, 제대로 된 책도 구하기 힘든 탄광촌에서 에베레스트 산보다 높이 나는 로켓을 만들어낸다. 80년대 말 열악한 교육환경의 베트남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응오 바우초는 국제수학올림피아드(IMO)에서 연달아 금메달을 받는 천재성을 보이며 위대한 수학자의 꿈을 꾸다가 결국 2010년 수학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했다. 천재성의 작은 차이보다 지향의 차이가 궁극에는 더 큰 차이를 만드는 것이다.
<10월의 하늘>에 나오는 두 명의 위대한 멘토, 즉 고등학교 여선생님인 미스 라일리와 당대의 대 과학자인 폰 브라운 박사는 우리시대에도 그 역할을 반추해봄직한 인물들이다. 응오 교수는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IMO 첫 출전에서 만점을 받았는데 당시 그의 수학적 재능에 주목한 베트남 수학자들은 고등학생이던 그를  매주 불러 무상으로 지도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주위의 관심과 멘토링은 그 아이의 미래를 바꾸곤 하는 것이다. 응오는 이후 프랑스에 유학가서 대학과 박사과정을 마쳤고, 현대수학에서도 난해한 분야로 여겨지는 산술기하학의 주요 문제를 해결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2009년 타임지가 선정한 최고의 과학 발견 10개에 그의 업적이 선정되었고 결국 2012년 필즈상을 수상했다.
정해진 학교의 교육과정만 가지고도 충분히 바쁜 우리 아이들에게는 미래의 꿈과 지향을 논하는 게 사치로 보일 수도 있다. 이러한 통상의 틀을 넘는 게 역할모델(role model)인데 탄광촌 아이들에게는 폰 브라운 박사가 그런 역할을 했다. 요즘의 우리 아이들에게는 잘나가는 아이돌 스타가 역할모델인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좋은 역할모델을 발굴하고 보여주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교육기부라는 말이 최근에 화두가 되고 실제 이를 실천하는 분들도 주위에 꽤 있다. 개인적 차원의 노력과 더불어 잘 조직화된 교육기부를 통해 도시 학생들뿐 아니라 농어촌 학생들도 역할모델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늘기를 바란다.
감수성이 강하고 쉬이 상처받는 아이들은 그들이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는 확인을 지속적으로 받아야 하는데, 미스 라일리는 이러한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자기 옆에 든든한 우군이 있다는 그 <든든함>을 우리 학생들에게 주기 위한 어른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포스텍에서도 이런 멘토링이 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도록 여러 제도변화와 인식변화를 고민해 보아야 한다.
스푸트니크 발사 당시 미국 국민들은 슈퍼 파워 국가라는 자존심이 흔들리며 깊은 충격을 받았다. 비록 최초라는 타이틀은 뺏겼지만 미국은 곧바로 소련을 따라잡아 바로 다음해에 익스플로어 인공위성을 발사했고 여세를 몰아 달에 유인우주선을 착륙시켰다. 소 잃는 일은 비일비재하지만 외양간 고치는 일로 이어져야 얻는 게 생기는데, 미국은 대대적으로 외양간을 고치는 작업에 나섰다. 이는 수학ㆍ과학 교육과정의 대대적 강화와 연구비 증액 등의 정책변화로 이어졌다. 미래의 국가 간 경쟁에서 뒤처지면 안 된다는 절박함에 따라 초중고 교과과정에 수학ㆍ과학을 대폭 강화하고 우수한 인재의 과학 분야 진입을 장려했다. 스푸트니크 충격 직후인 1958년에는 ARPA(현재의 DARPA)라고 하는 연구담당 국가기관을 만들어 미래기술의 선점을 국가과제로 추진하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연간 3.5조 원가량의 연구예산을 사용하는 기관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경제적으로 큰 성장을 이룬 나라이다. 세계적인 브랜드를 가진 한국 대기업이 출현했으며, 과학기술의 수준도 빠르게 높아졌다. 하지만 미래 국가경쟁력의 기반이 되는 기초과학에서의 성취는 아직은 과학기술의 상용화에서 거둔 성공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최근 한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기초과학연구원(IBS) 설립으로 연 1조 가까운 예산을 장기간 투입하게 된다. 이러한 노력이 기초과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국내 연구소 출현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