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날아오르는 용, 싱가포르
다시 날아오르는 용, 싱가포르
  • 김정택 기자
  • 승인 2012.03.21 22: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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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로부터 배우다. 국제화, 교육 시스템, 국가 R&D 투자 프로그램

포항공대신문사에서는 지난 2월 11일부터 15일까지 싱가포르를 방문해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두 대학인 싱가포르국립대학교(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 NUS)와 난양기술대학교(Nanyang Technological University, NTU)를 방문했다. 이번 방문을 통해 싱가포르의 교육 시스템 및 국가 R&D 투자 프로그램과 싱가포르의 국제화 정책을 취재했다. ‘다시 날아오르는 아시아의 용, 싱가포르’ 기사는 2편으로 나눠져 게재된다. 1편은 싱가포르의 국제화 정책과 교육 시스템, R&D 투자 프로그램을 다루며, 2편은 싱가포르의 대학과 난양기술대학교 장욱 화학공학과 교수의 인터뷰가 실릴 예정이다. 이번 기사를 통해 우리나라의 국제화 정책을 점검하고 엘리트 교육을 추구하는 싱가포르와 우리나라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할 것이다. 그리고 싱가포르의 국가 R&D와 우리나라의 R&D가 어떻게 다른지 알아볼 것이다. <편집자주>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사이에 위치한 63개의 섬으로 구성된 나라이다. 전체 면적은 서울특별시보다 조금 큰 697.2km2이다. 작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1인당 GDP가 37,000 달러에 이르는 부유한 나라인데 주된 산업은 무역과 석유화학과 같은 제조업, 금융업, 관광업 등이다. 싱가포르와 같은 작은 나라가 아시아의 용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지리적 이점을 잘 이용한 면도 있지만 리콴유(Lee Kuan Yew) 수상을 필두로 한 권위주의식 정치 및 자본주의이다. 리콴유 수상은 42년 동안 싱가포르를 집권하며 국가를 성장시켰다. 그의 생각은 사회 전반에 반영돼 있는데 국제화 정책을 비롯하여 엘리트 교육 시스템 등이 있다.

국제화

싱가포르는 다민족*다종교*다언어 사회이다. 2009년 현재 전 국민의 74.2%가 중국인, 13.4%가 말레이시아인, 9.2%가 인도인, 3.2%가 기타 민족으로 구성돼 있으며, 2010년 현재 불교가 33%, 기독교가 18%, 무교가 17%, 이슬람교가 15%, 도교가 11%, 힌두교가 5.1%이다. 그리고 싱가포르의 공용어는 영어, 중국어, 말레이어, 타밀어로 2010년 현재 중국어를 쓰는 인구가 49.9%로 절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영어를 쓰는 인구가 32.3%로 다음을 차지하고 있다. 이외에 전체인구 중의 12.2%가 말레이어를, 3.3%가 타밀어를 쓰고 있다. ‘melting pot'이라고 불리는 미국보다 더 다양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어울러져 살고 있다. 그로 인해 법을 포함한 모든 공문서 등이 영어로 표기하는 것을 의무로 하고 있으며, 모든 표지판과 안내판이 영어를 주된 언어로 표기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싱가포르 대학들의 국제화 정도는 매우 우수하게 평가받고 있다. 2011년 더 타임즈 세계대학순위의 국제화 점수(International Outlook)에서 싱가포르국립대학교는 93점으로 25점인 우리대학에 비해 월등히 높다.
국가 전체가 국제화되어 있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우리대학을 비롯한 우리나라에 국제화 정도와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싱가포르의 사례를 살펴보면 모든 문서가 영어로 작성돼있고, 외국인들이 문제없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점이 국제화에 첫 걸음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사실을 놓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가 국제화를 이루기 위해서 가야할 방향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엘리트 교육 시스템

싱가포르는 치열한 엘리트 교육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철저한 실적주의를 바탕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개천에서 용 나기’는 거의 불가능한 시스템이다. 초등교육(Primary Education), 중등교육(Secondary Education), 고등교육(Pre-university Education)으로 나뉘는데 초등교육을 마치면 초등졸업시험(Primary School Leaving Examination)을 치른다. 이 시험의 결과에 따라 중등교육의 과정이 결정된다. 중등교육 과정은 크게 상위 성적 6%의 특별(Special) 과정, 상위 성적 60%의 신속(Express) 과정, 그 외의 보통(Normal) 과정으로 나뉘며 특별 과정과 신속 과정만 고등교육으로 진학할 수 있는 GCE 'O' 시험(Singapore-Cambridge GCE Ordinary Level Examination)을 치를 수 있다. 성적이 우수할 경우 과정별로 이동이 가능하다. GCE 'O'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면 3년제(최근 2년제인 경우도 있음) 주니어 칼리지(Junior College)에 진학할 수 있고, 보통 성적을 거두면 3년제 폴리테크닉(Polytechnic)에 진학하여 전문교육을 받게 된다. 그리고 낮은 성적을 거두면 직업훈련원에 진학하거나 취업을 하게 된다. 주니어 칼리지나 폴리테크닉에 진학할 수 있는 비율은 초등교육에 입학한 학생의 20~25%에 불과하며 이는 싱가포르가 치열한 엘리트 교육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고등교육 과정을 수료한 학생들은 졸업자격시험(GCE Advanced Level Examination)을 치를 수 있다. 이 시험을 치르면 대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싱가포르에는 2000년 싱가포르경영대학교(Singapore Management University)가 설립되기 전까지 싱가포르국립대학교와 난양기술대학교만 설립돼 있었다. 그로 인해 일부의 학생들만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으며, 현재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는 위의 세 대학을 포함해 6개의 대학이 운영되고 있다.
싱가포르의 엘리트 교육 시스템은 모든 국민을 자리에 맞게 사용한다는 원칙 아래 운영돼 왔다. 이 원칙이 바뀔 가능성은 매우 낮으며, 현재 총리인 리콴유 전 수상의 장남, 리센룽(Lee Hsien Loong) 총리는 “민중주의와 획일적 평등주의의 환상에 사로잡혀 엘리트 교육을 포기하고 교육의 평준화를 고집한다면 국가의 열등화와 사회의 하향 평준화를 초래하여 결국은 망국의 길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며 교육 시스템에 대한 확신을 드러냈다.
싱가포르의 교육 시스템의 원칙은 우리나라의 교육 시스템과 다르다. 우리나라는 평등한 교육을 추구하며, 개천에서 용 나는 것도 가능한 시스템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경쟁이 치열해지고 사교육이 활발히 이뤄지면서 학생들 수준의 ‘양극화’가 일어나고 있다. 싱가포르의 사례를 보면 우리의 미래를 예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국가 R&D 투자 프로그램

싱가포르는 독립적인 과학기술 연구기관으로 A*STAR(Agency of Science, Technology and Research)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국가 R&D 투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싱가포르 전체의 R&D 예산은 2010년 현재 65억 싱가포르 달러(약 5.79조 원)를 투자하고 있으며, 이는 국가 GDP에 약 3%이다. 우리나라와 비교했을 때, 전체 액수나 국가 GDP에서 비율은 낮지만 A*STAR 주도로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과학기술에 투자하고 있다. A*STAR에서는 BMRC(Biomedical Research Council)와 SERC(Science and Engineering Research Council) 등을 운영하면서 연구의 방향이나 목적을 선구적으로 설정하고 목적에 맞게 투자하고 있다. BMRC와 SERC 등의 위원회에는 세계 유수 대학의 교수나 기업의 CEO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이들은 정기적으로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싱가포르를 방문한다. 이와 같은 세계 석학들의 정기적인 방문으로 인해 싱가포르에는 세계의 모든 지식이 모이게 되며, 새로운 아이디어가 창출되게 된다.
우리나라도 BK21 사업이나 WCU 사업과 같은 세계 석학들을 불러 모으고, 정기적인 세미나와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자금을 지원하는 프로그램들이 운영하고 있지만, 약 50년 간 꾸준히 지속되어 온 싱가포르의 R&D 투자 프로그램과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국제화가 완벽히 이루어져 있는 싱가포르에서는 우리나라보다 더 쉽게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에 석학들이 큰 문제없이 방문하고 연구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투자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내는 이유라 볼 수 있다.

우리나라와 싱가포르는 구조부터 차이가 많다. 도시 국가인 싱가포르는 경제나 정치 체계에 대한 이해나 접근이 우리나라에 비해 수월하고, 모든 국민이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쉽다. 따라서 세계의 어느 나라보다 세계정세를 빠르게 읽어 내고 정책을 수립해 나가고 있다. 싱가포르의 모든 점을 배울 수는 없지만 싱가포르의 장점을 알아내고,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적용해 나간다면 더 큰 도약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