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대학 대자보 문화
[문화] 대학 대자보 문화
  • 이기훈 기자
  • 승인 2011.09.28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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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그들의 소리가 들리십니까

 “이제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서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 탑은 끄떡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학을 버리고 진정한 대학생의 첫발을 내딛는 한 인간이 태어난다.”

 작년 3월 서울 소재 K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 양이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라는 제목으로 교내 게시판에 붙인 3장의 대자보는 우리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 대자보는 대학이 글로벌 자본과 대기업에 가장 효율적으로 ‘부품’을 제공하는 하청 업체가 되어 버렸다는 내용으로, 많은 대학생과 기성세대에게 우리사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이처럼 대자보는 대학생들뿐만 아니라 전 국민에게까지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대자보는 신라시대 진성여왕 때부터 시작되어 조선시대를 거쳐 현대까지 이어진다. 조선시대에는 “재주와 능력이 있어도 제대로 하는 일이 없고, 실농한 사람들은 일어나라. 재상이 될 만한 자 재상을 시키고, 장수가 될 만한 자 장수를 시키며, 지모가 있는 자 쓰임을 얻을 것이며, 가난한 자 부유해질 것이며, 두려워하는 자 숨겨줄 것이다” 라는 내용의 대자보가 붙었다. 이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과거의 대자보도 요즘 대학 게시판에 붙어 있는 대자보와 다를 바 없이 사회 지도층을 비판하고 시민들의 공감을 유도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이렇게 수백 년 전부터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던 대자보가 1980년 대에 이르러서는 대학에서 그 역할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최근 부실대학 선정으로 인해 거센 항의운동이 일어났던 추계예술대학교 정문에는 ‘추계예술대학교 전체교수 일동’이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한 대자보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붙들고 있었다. ‘여러분을 부실대학생으로 만들어서 미안합니다’라는 문장은 필시 자신의 일이 아님에도 보는 이의 안타까움이 배어 나와서일 것이다.

 

정문 안으로 들어서자 이채로운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예술을 취업률로 평가한다면 채플린, 톨스토이, 파바로티, 피카소 등 각 예술분야의 대가들도 모두 무직자에 불과하다는 기발한 포스터를 시작으로 “나 4수했는데 장난하냐”, “왜 너가 부실학생이냐?!”,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저항하라”, “순수예술에 상처를 입히다” 등 주말이라 교정에 사람은 없었지만 곳곳에서 분노한 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일반적으로 대학가가 가진 대표적인 문제점을 꼽으라면 역시 등록금 문제일 것이다. 기자가 다녀온 대학 어느 곳이나 ‘반값 등록금 실현!’을 모토로 한 대자보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이외에도 대학생 자살, 대학 본부ㆍ총학생회 비판 등 대학사회가 아니면 대학 자체가 안고 있는 이슈에 대한 생각을 담은 대학생들의 대자보가 캠퍼스를 장식하고 있었다.

   
 일편의 시각에서는 대자보가 단지 학생들의 불만을 토로하는 ‘배출구’로만 보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민주사회에서 대자보는 대학생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가장 강하게 낼 수 있는 참여의 상징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대자보는 대학에 자기반성의 계기를 만들어주고 때로는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이를 학생들이 공감하게 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하나의 대학 문화로 자리 잡았다. 나무 사이, 게시판마다 걸려 있는 대자보와 현수막들이 캠퍼스를 수놓은 광경이, 이제 학생들에게는 어색하지 않은 광경이다. 이에 비해 우리대학은 규정된 학칙에 따라 학내 정치활동뿐만 아니라 교외에서도 대학명의의 정치적 활동을 금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우리대학에서 각종 공연ㆍ행사, 동문회, 동아리 홍보 외에는 대자보를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는 항상 ‘소통’을 외친다. 소통이 되려면 우선 표현을 해야 한다. 지금처럼 학생들의 표현이 활발하지 못한 상황에서 우리는 얼마나 소통을 잘할 수 있을까. 언젠간 우리대학에도 교내 곳곳에 학생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날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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