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영어강의
[기획취재] 영어강의
  • 손영섭 기자
  • 승인 2011.05.18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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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강의 필요한가요? 58%가 ‘아니오’

 우리대학은 지난해 3월 2일 신입생 입학식에서 Bilingual Campus를 선포하고 국제화 3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3년간 1,500억 원을 투자하여 국제적인 수준의 대학으로 도약한다는 국제화 3개년 계획의 세부 실천 방안 중, 대학원 수업과 학부 전공수업은 100% 영어로 진행한다는 정책이 포함되어 있다. 대학의 국제화 바람을 강의실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정책에 대하여 학생들과 교수들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학생들의 생각을 알아보기 위하여 포항공대신문사는 5월 11일부터 3일간 ‘영어강의에 대한 학부생 인식’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이 설문 조사에 2학년 이상 학부생 1028명 중 132명(12.8%)이 참가하였다.

 학부생들의 영어강의에 대한 인식을 알아본 결과, 학부생들은 대체로 전공수업을 영어로 진행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혀 필요 없다고 응답한 학생이 32.8%였으며, 필요 없다고 응답한 학생은 25.2%로 필요 없다는 응답이 58%를 차지했다. 반면 매우 필요하다, 필요하다고 응답한 학생은 합쳐서 총 24.4%에 불과했다. 전공수업 100% 영어강의에 대한 학생들의 지지가 매우 부족함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영어로 수업했던 전공과목에 대한 이해도의 경우 45.8%의 학생이 수업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응답하였고, 잘 이해했다고 응답한 학생은 20.6%였다. 반면 영어로만 강의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교수의 재량에 따라 한국어를 혼용하는 수업의 경우 83.7%가 강의를 잘 이해했다고 응답하였으며,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응답한 학생은 1.6%에 불과했다. 이는 언어의 차이가 학생들의 수업 이해도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는 결과이다.

 또한 30.4%의 전공수업이 영어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전공과목은 100% 영어로 강의하는 것이 학교의 정책인데 이 결과는 강의를 진행하는 교수들 중 학교 정책에 반대하는 교수가 있다는 뜻이다. 이에 교수들의 영어강의에 대한 생각을 알아보기 위해 상반된 입장을 보이는 두 교수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이번 학기 전공 과목 수업을 한국어로 진행하는 전자과의 모 교수는 “영어는 국제화 시대에 당연히 중요한 능력 중 하나이나, 전공을 희생하면서 영어 능력을 향상시킬 필요는 없다. 영어 능력은 전공 수업 바깥에서 향상되어야 한다. 전공 수업은 전공에 대한 이해에 충실해야 하는데,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모국어보다 서툰 영어로 수업이 진행된다면 수업의 질이 심각하게 떨어진다”라고 전공 강의를 한글로 진행하는 이유로 답하였다.

 그렇다면 영어강의를 찬성하는 교수의 생각은 어떨까? 서의호(산경) 교수는 “대학의 국제화를 통해 외국인 교수, 학자, 학생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캠퍼스가 되어야 하고, 글로벌화되고 있는 세계에 대비하여 한국학생 자체도 국제화되어야 하기 때문”이라며 전공과목 영어강의가 필요하다고 답하였다. 이어 전공 수업의 제1목표는 전공에 대한 내용 이해이지 영어 공부가 아니지 않느냐는 질문에 “지식은 습득도 중요하지만 지식의 활용이 더욱 중요하다. 많은 것을 알고 있어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없다면 지식은 반감되는 것이다. 영어가 되지 않으면 아는 지식도 국제적으로 전달할 방법이 없다”라고 답하였다. 이어 “영어로 전공을 이해하는 훈련을 해오지 않았기 때문에, 영어강의가 전공에 대한 이해도를 반감한다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다”라고 의견을 피력했다.

 국제화 시대에 영어가 학생들이 갖춰야 할 중요한 능력임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영어 능력 향상을 위해 전공과목에 대한 이해도를 희생한다는 것은 모순되어 보인다. 지식 자체도 지식을 전달하는 도구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수한 외국인 교원,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서라면 같은 전공과목을 영어, 한국어 강의 모두 개설하거나, 외국인이 수강하는 수업에서만 영어강의를 진행하고, 전공과목 외에서 영어교육을 강화하는 방안을 강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과학 분야에서 15개의 노벨상을 배출한 나온 일본의 경우 외국 전공서적을 모두 일본어로 번역하여 일본어로 전공지식을 습득한다. 그들에게도 국제화 시대에 영어가 중요한 능력이겠지만, 그들에게서 영어를 위해 전공지식을 희생하려는 자세는 보이지 않는다.

 Bilingual Campus라는 것은 한국어와 영어가 공존하는 캠퍼스인데 어찌된 일인지 강의실은 점점 English­-only Campus가 되어 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