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교육과정개편안
[기획취재] 교육과정개편안
  • 강명훈 기자
  • 승인 2011.05.04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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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4학년’ 커리큘럼, 이면에는 무엇이 있나
 원안대로 시행되지 못해…기존 커리큘럼에 축적된 꼴
 교육정책위원회, 우리대학도 학업량 늘려야 해

▲ 하루 일과를 마치고 밤늦게 기숙사로 돌아가는 학생들의 뒷모습이 안쓰러워 보인다.
 올해 11학번으로 입학한 K군은 매주 수요일이면 아침 9시에 방을 나서 밤 12시가 넘어서야 돌아온다. 정규 수업은 밤 10시 반에 끝나지만 매주 있는 동아리 정기모임까지 마치고 나면 피곤함에 침대에 몸을 맡긴다. 다른 평일도 별반 다르지 않다. 다음 날까지 제출해야 하는 실험보고서와 글쓰기 과제, 인문과목 과제, 기초과목 과제, 조모임 등으로 인해 방에 돌아올 때마다 녹초가 된다.

 지금 가입한 동아리 말고도 2, 3개 정도 더 들고 싶은 동아리가 있었지만 “올해부터 졸업학점이 10학점 이상이 늘었다”, “1학년 과정이 더 힘들어졌다”는 선배들의 얘기를 듣고 하는 수 없이 포기했다. K군은 입학한 후 학기의 반을 보낸 지금 2개 이상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현재의 학업량을 무사히 소화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우리대학이 2011학년도부터 실시한 교육과정개편이 시작 첫 학기부터 1학년 학생들에게 과도한 학업량을 부과한다는 비판적인 목소리를 듣고 있다. 현재 1학년이 수강하고 있는 정규 학점은 21~22학점으로 지난해보다 3학점 더 늘어났고, 실천교양교육과정(ABC) 중의 하나인 ‘대학생활과 미래설계’ 2Units을 추가로 수강하고 있다. 대학생활과 미래설계 과목의 경우 지난해까지는 1학점 정규 과목이었으나 교육과정개편 이후 2학점으로 늘어났다. 때문에 학생들은 정규 학점에 대학생활과 미래설계 과목까지 더해 23~24학점을 수강하는 것처럼 느끼고 있다. 보통 대학 1학년 이수학점이 35~40학점인 것을 고려하면 수치상으로도 많을뿐더러 특정과목에서 학생들이 실질적으로 느끼는 학업량을 고려했을 때 흔히 일컫는 ‘고등학교 4학년’이 결코 엄살에서 나오는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이와 같은 1학년 1학기 학업량이 개편안 중에 정해져 있었느냐이다. 이진수 교무처장은 처음 개편안을 만들 때 1학년 첫 학기에는 신입생들이 학교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해 학업량에서 부담을 크게 느끼지 않는 커리큘럼을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불만의 원인은 무엇일까.

 교육정책위원회(이하 교정위)가 지난해 8월에 발간한 ‘교육체제 개선안’에 의하면 2010학년도까지 기초필수과목에 해당했던 과목이 미분방정식과 함께 University Core(이하 UC)로 개편되고 기존에 1년에 걸쳐 수강했던 것을 3학기에 걸쳐 수강하도록 되어있다. 인문사회학부 과목(HASS)이 새롭게 매학기 개설될 것을 고려해 편성한 것이다. UC 중 2학년 1학기에 수강해야하는 과목은 미분방정식, 일반물리2, 디자인 앤 빌드랩 등이다. 원래 지구환경 과목이 새롭게 UC에 추가되었으나 준비시간 및 학생들의 부담 등을 고려하여 자유선택 과목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모든 학과가 2학년 1학기부터 전공과목을 개설했기 때문에 2학년 1학기까지 UC를 수강하게 하는 데에 많은 이의가 제기되었다. Science & Technology Core(STC)도 처음에는 15학점 모두 2학년 2학기에 수강하도록 계획했지만 각 학과의 반대에 부딪혀 2학년 2학기부터 졸업 이전까지 이수하는 조건으로 바뀌었다. 또한 학과마다 커리큘럼 문제도 있어 어쩔 수 없이 2학년 1학기에도 STC를 수강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러나 STC 중에는 일반물리2 과목을 선이수 해야 수강할 수 있는 과목이 있어 여기서 문제가 재차 발생했다. 화학과 같은 경우 2학년 1학기부터 실험과목을 수강하여 졸업하기 전까지 실험과목을 꾸준히 이수해야만 한다. 때문에 UC를 2학년 1학기까지 들을 수 없게 된다. 기존 기초필수 과목 중 일반물리2, 디자인 앤 빌드랩이 2학년 1학기 과목으로 채택된 연유에 대해서 학사관리팀 관계자는 “신입생 300명이 모두 같이 듣는 과목 중 수학 과목을 제외하면 일반물리 밖에 남지 않는다. 다른 과목의 경우 앞분반과 뒷분반이 1년만큼 진도 차이가 나면 안 되기에 300명이 모두 듣는 과목을 택했다”고 말했다.

 이진수 교무처장은 “교육정책위원회 구성 당시 개편안과 학과의 기존 커리큘럼에 대해 고려하지 않은 바가 아니나 위원회 위원에 모든 학과의 교수가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기존 커리큘럼에 의한 문제가 일어났다”며 기존 커리큘럼과의 충돌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음을 밝혔다.

 결국 기존 2010학년도 시간표 위에 HASS 과목과 ABC가 더해진 상태로 시간표가 책정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같은 사태는 지난 4월 4일 열린 백성기 총장과 학생자치단체와의 간담회에서 학생대표들에 의해 문제가 제기되었고, 4월 8일에는 교무처장을 중심으로 관련 대책 회의가 열렸다.

 이후 학사관리팀은 1학년 학생들에게 수강포기 신청(Withdraw) 대신 수강취소 신청(Drop) 기간을 줌으로써 완화책을 강구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당시에는 이미 학기가 시작한 지 절반이 다되어가고 있었고 새로운 커리큘럼에 적응되었다며 계속 수강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더 많았다. 학사관리팀과 11학번 분반장들과의 면담에서도 개편안 원안대로 일반물리2와 Design & Build lab 과목을 2학년 1학기에 수강하도록 하는 것에 대해 대다수가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이러한 구도가 계속될 경우 개편안이 적용되는 학번부터는 입학 후 2학년까지 이번 학기처럼 기존 커리큘럼 위에 HASS 1과목과 ABC가 더해진 커리큘럼을 수행해야 한다. 게다가 미분방정식이 UC에 추가되고 STC 과학 과목 선택 시 적어도 1개 이상은 타과의 전공수업을 듣도록 되어있어 기존보다 3~6학점이 더 늘게 된다. 

 한편 개편안으로 인한 학업 부담에 관해서 백성기 총장을 비롯한 교육정책위원회는 1학년 첫 학기를 제외한 학기는 이전보다 학업량을 늘려야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백성기 총장은 “10학번까지는 교양과목 수강을 너무 쉽게 한 감이 없지 않다. 11학번부터는 인문사회학부 과목을 강화시킬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고 이진수 교무처장도 “지금 신입생들이 힘들어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인문사회학부 과목의 많은 변화에서 기인한다. 교육과정개편 이후 인문사회학부 과목이 전보다 체계화되었다”라고 말하며 인문사회학부 과목 공부를 강조했다. 이진수 교무처장은 또한 “MIT에서는 학생들을 밀어붙이고 그 다음 두단계 더 밀어붙이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며 우리대학도 학생들에게 지금보다 더 많은 학업량을 요구해야한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정규교과과목 외에도 ABC 또한 구설수에 올라 있다. 현재 11학번 학생들이 수강하고 있는 ‘대학생활설계’는 원래 정규교과목 중의 하나로 11학번 학생들 중에는 이 과목을 2학점짜리 과목으로 생각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게다가 작년에 비해 1학점 더 늘어나 활동량도 늘어난 모양새다. 학생 중에는 조모임 시간으로 밤이나 주말까지 할애해야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

 ABC 커리큘럼을 편성한 김정기(인문) 리더십센터장은 “현재 학생들이 ABC에 대해 갖고 있는 불만은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데서 비롯한 거부감인데, ABC의 취지를 이해하고 장기적으로 봤을 때 학생들을 위한 것임을 이해해줬으면 한다”며 “현재 공표된 ABC 커리큘럼은 가장 기본적인 구조일 뿐, 이후 얼마든지 유동적 변화가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개편안에 관해 문제점이 지적된 후 교무처에서는 지속적인 회의를 통해 내후년의 커리큘럼에 대해 해결책을 찾고 있다. 내년 1학년 1학기에는 HASS 과목 하나를 제해 주는 방식을 도입할 계획이라고 한다. 원안대로 UC를 3학기에 걸쳐서 운영할지는 미지수이나 적어도 1학년 1학기는 학생들이 학교에 적응할 기간을 주자는 게 교육정책위원회 측의 공통적인 생각이므로 내년에는 학생들의 불만을 최대한 완화시킬 수 있는 방식으로 바뀌지 않을까 기대되는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