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호 축사] 신문사 선배 축사
[300호 축사] 신문사 선배 축사
  • 백 정 현 / 신소재 94, 포항공대신문사 8기
  • 승인 2011.01.01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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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팩트의 전달이 아닌 전문성이 살아있는 기사 써주길

   

백 정 현 / 신소재 94
포항공대신문사 8기ㆍ초대 총무국장
현재 네오플럭스 컨설팅사업부 근무

 ‘포항공대신문 300호의 축사를 부탁드립니다’라는 부탁에 기쁜 마음으로 응하긴 했지만, 어떤 필설로 감히 여러분들의 그간의 노력에 대한 ‘축하’를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 적지 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와중에 가장 많이 생각했던 것은 제 기자생활의 추억이었습니다.

 제가 입학했던 94년 즈음은 참 많은 일이 벌어졌었고, 벌어지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최초의 노란색 화학실험 교재를 만든 선배도, 포스비의 초대 시삽도 아직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WWW라는 것이 인터넷의 붐을 일으키던 때였습니다. 그리고, 초대 총장님께서 돌아가셨던 해였습니다. 아직도 가끔 그날 토요일 아침잠을 악몽으로 바꾼 총장님의 사고 방송이 생각납니다. 아마도 이 사건이 제가 신문사에 입사하게 된 가장 큰 계기가 아니었나 생각되네요.

 반면에 저의 신문사 생활은 한마디로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상 최대의 수습기자들로 신문사가 가득 채워졌고, 훌륭한 동기들이 있었기 때문에 3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신문사에서 버틸 수 있었습니다. 때마침 불어 닥친 인터넷의 열기는 포항공대신문이 전자신문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큰 상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입대 전까지, 그리고 복직 후에도 함께 일했던 선, 후배들로부터 참 많은 것을 배웠고, 지금의 ‘생각의 틀’, ‘행동의 원칙’을 형성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울러 최장기간 재직이라는 재미있는 기록도 남기게 되었네요.

 기자로서 기억에 남는 일들도 많았습니다. 학생 전원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설문조사를 한답시고, 각 기숙사 우편함에 설문지를 배달했던 일, 신년호 화보사진을 찍기 위해서 새벽부터 본관 옥상에서 떨면서 일출을 기다렸던 일, 카이스트 등 타 대학 신문사와의 교류활동, 버스 안에서 급히 이루어진 박태준 회장님과의 인터뷰, 감격적인 100호 신문의 발간, 처음으로 교내외 선후배 기자들과 함께 했던 홈커밍 데이 등.

 지나고 나서 돌아보니, 제 학창시절에서 기자시절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기가 어려울 정도인 것 같습니다. 절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도 했지만, 가장 많은 고민과 토론이 이루어졌던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젊은 날의 치기 어린 반항과 불만을 다스릴 줄 아는 법을 배웠고,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서 ‘틀린 것’이 아닌 ‘다른 것’을 인정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여러분들에게 포항공대신문은 지금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혹은 나중에 어떤 의미로 남기를 원하시나요?

 선배라는 자격으로 지금 현재 신문사의 주인인 여러분께 기사에 대해서나 신문사에 대해서 어줍잖은 충고를 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처럼 느껴집니다. 다만 ‘문제가 있는 곳에 답이 있다’는 격언대로, 항상 발로 뛰면서 문제와 답을 찾아내는 노력을 경주한다면, 단순한 팩트의 전달이 아닌 기자의 전문성이 살아있는 기사와 신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지금 여러분들이 고민하고 있는 것들, 겪고 있는 것들이 누구나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보내라는 조언을 조심스럽게 드리면서 축사를 갈음할까 합니다.

 다시 한번 포항공대신문의 300호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