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 포항시립연극단 ‘연화재의 통곡’
연극 : 포항시립연극단 ‘연화재의 통곡’
  • 최여선 기자
  • 승인 2007.03.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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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말 사신으로 고국 떠난 남편 기다리다 죽은 열녀이야기
포항시 북구 용흥 1동에 ‘신라소재상부인순절비(新羅蘇宰相夫人殉節碑)’라는 비석이 있다. 지금은 검은 아스팔트 위에 덩그러니 서있지만, 과거엔 동해바다가 넓게 펼쳐진 경치 좋은 곳이었다고 한다. 이 비석은 신라 말기 자신을 유혹하는 왕으로부터 정절을 지킨 소랑부인의 절개를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것이다. 연극 ‘연화재의 통곡’은 이 망부석에 얽힌 전설을 모티브로 하여 만든 창작연극이다.

포항시립연극단은 지난 19?0일 이틀간 포항문화예술회관에서 ‘연화재의 통곡’을 선보였다. 1983년 창단한 포항시립연극단의 73회째 공연이다. 포항의 명산물 과메기를 먹으러 온 두 남녀가 길을 잃고 헤매다가 ‘신라소재상부인순절비’를 보고, 이 비석에 얽힌 설화를 궁금해 하던 중 지나가던 노파에게 묻게 된다. 노파가 전설을 이야기 해준다며 자기 집으로 가자고 하면서 본격적인 연극은 시작된다.

신라 말엽 왕과 귀족들은 술과 여자와 같은 향류를 즐기는데 빠져있어 나라 일엔 점점 소홀해지고, 신라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이 시기에 소랑 병부령이라는 보기 드문 청렴한 신하가 있었는데, 그의 부인이 정숙하고 아름답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이 소문을 들은 왕이 소랑부인을 한번 만나고 싶어 소랑에게 집을 방문하겠다고 한다. 소랑은 기쁘게 왕을 맞이하지만 왕은 심중에 소랑부인을 탐하려는 흑심을 품고 있었다.

소랑부인을 본 왕은 소랑부인을 취하고 싶은 마음이 더더욱 커져 소랑과 소랑부인을 떼어놓기 위해 소랑을 전쟁터로 보내고, 심지어는 왜나라 사절로 보낸다. 그 사이 왕은 비단과 보석으로 소랑부인을 끊임없이 유혹하지만 소랑부인은 꿈쩍도 하지 않고, 오히려 멀리 있는 소랑에 대한 그리움만 커져간다. 왕이 계속 수청을 들기를 강요하자 소랑부인은 얼굴에 흉한 탈을 쓰고 왕을 찾아간다. 왕은 흉한 소랑부인을 보고 분노하며 모든 재산을 빼앗고 내쫓는다.

소랑부인과 하인들은 산천을 헤매다가 정착한 곳이 망부석이 서있는 포항시 북구 용흥 1동이다. 소랑부인은 그 곳에 움막을 짓고 살면서 밤낮으로 동해건너 왜나라에 간 남편을 기다린다. 5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남편을 기다리던 소랑부인은 병(몽유병)을 얻게 되고, 몸은 나날이 쇠약해 간다. 그러던 중 동네 사람이 5년 전에 왜나라에 갔던 사신단이 돌아오던 중 거친 파도에 휩쓸려 난파되었다는 소식을 소랑부인 하인에게 전해준다. 하인은 차마 소랑부인에게 슬픈 소식을 전하지 못한다.

소랑부인의 건강은 점점 악화되고, 어느날 밤 소랑부인은 잠결에 소랑을 찾으며 헤매다가 물에 빠져 죽고 만다. 소랑부인의 싸늘하게 식은 주검 앞에 동네사람들이 슬퍼하고 있는데, 한 사람이 허겁지겁 달려오면서 왕의 승하소식을 알린다. 사람들은 모두 왕이 제 값을 치르는 것이라며 혀를 찬다. ‘연화재의 통곡’은 소랑부인의 상여와 곡소리가 울려 퍼지며 막이 내린다.
우리나라에는 많은 열녀 설화가 있다. 열녀 설화가 많은 이유는 우리나라가 예로부터 여성의 지조와 절개를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열녀들의 행적을 설화나 소설로 만들어서 후세에 전하고, 열녀비로 열녀의 지조를 기리는 것을 보면, 과거에 우리사회가 여자들에게만 정절을 요구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현재 우리나라엔 서구문물이 많이 들어와 예전보다 여성들에게 많은 자유를 주고 있다. 이혼을 흉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이혼율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런 변화는 여성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 방향이 과연 좋은 것인지 의심이 든다. 백년가약인 결혼을 가볍게 여기는 풍토에서 과연 진정한 사랑이 싹틀 수 있을까?

사회의 요구에 의해 소랑부인이 어쩔 수 없이 소랑을 기다렸을지라도 소랑만을 바라보며 그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소랑부인의 애틋한 마음이 아름다운 것은 변함이 없다. 과거의 열녀들을 가부장제가 낳은 피해자로 보지 말고 두 사람 간의 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사랑으로 본다면 열녀들의 모습은 이혼 등과 같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될 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연화재의 통곡’은 우리 가슴 깊은 곳에 숨겨진 진정한 사랑을 일깨워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