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물리학상 주역, 실리콘ㆍ반도체 대체할 기술
과학도 관심ㆍ연구개발 투자…한국 과학기술ㆍ산업화 선도해야
지난 10월 19일 포스코 국제관 대회의실에는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많은 인원이 몰려들었다. 이날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소장 피터 풀데, 이하 APCTP)와 엣지이론과학연구소(소장 겸 APCTP 사무총장 김승환, 이하 IES)는 ‘그것이 알고 싶다! 꿈의 신소재 그래핀’을 주제로 학생과 일반인을 위한 대중강연을 개최했다. 이번 강연은 IES 개소 기념 및 APCTP의 과학커뮤니케이션 포럼/강연 시리즈의 일환으로 열렸으며 고등과학원 손영우 교수와 성균관대 홍병희 교수가 연사로 참여했다. 흑연에서 그래핀을 분리해내는 데 성공하여 올해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안드레 가임과 콘스탄틴 노보셀로프로 인해 세계적으로 꿈의 신소재로서 주목받고 있는 ‘그래핀’을 대중들에게 쉽게 설명했던 자리였다. 포항공대신문사에서는 그래핀 대량생산 기술을 세계최초로 개발한 홍병희 성균관대 성균나노과학기술원 화학과 교수의 그래핀 응용의 미래를 담은 특별기고문을 싣는다. <편집자주>
그래핀을 처음 접한 것은 포스텍에서 학위를 마치고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포스트닥터를 하던 2004년이었다. 당시 지도교수였던 김필립 교수는 흑연으로부터 그래핀을 분리하는 방법을 연구 중이었는데 원자힘현미경(AFM)에 쓰이는 탐침 끝에 흑연 결정을 붙인 후 마이크로미터 조작에 의해 그래핀 한 층을 떼어내는 매우 복잡한 실험이었다. 흑연 층수를 10층 내외로 줄이는 데는 성공을 했지만 단층인 그래핀을 얻어내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간단히 스카치테이프를 이용해 그래핀을 분리한 사이언스지 논문을 보고 모든 연구진들이 낙담했던 기억이 있다. 이후 그 간단한 스카치테이프 방법이 세계 과학계에 얼마나 큰 파급효과를 가져왔는 지는 올해 노벨물리학상이 그래핀에 주어진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핀은 구조적, 화학적으로도 매우 안정할 뿐 아니라 매우 뛰어난 전도체로서 실리콘보다 100배 빠르게 전자를 이동시키고 구리보다도 약 100배 가량 더 많은 전류를 흐르게 할 수 있다. 그래핀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원소인 탄소만으로 이루어져 1차원 혹은 2차원 나노패턴을 가공하기가 매우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으며, 이를 활용하면 반도체-도체 성질을 조절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탄소가 가지는 화학결합의 다양성을 이용해 센서, 메모리 등, 광범위한 기능성 소자의 제작도 가능하다. 많은 사람들이 차세대 실리콘을 대체할 반도체 물질로 그래핀을 꼽고 있지만 아직 반도체 물성이 뛰어나지 않아 이에 대해서는 장기간의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하지만 투명하면서도 유연하고 전기전도도가 매우 좋은 그래핀은 투명전극 응용에 매우 적합한 특성을 가지고 있어 대량생산 기술만 개발된다면 실용화가 수년 안에 이루어 질 가능성이 있다. 최근에는 한국의 연구진들이 화학증기증착법을 이용해 30인치 크기의 대면적 그래핀 투명전극 필름을 합성하여 터치스크린에 적용 가능함을 보임으로써 상용화에 대한 기대를 더욱 높이고 있다.
올해로 그래핀이 처음 발견된 지 불과 6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동안 관련 논문 숫자의 증가 추세나 노벨상 수상에서 볼 수 있듯이 그래핀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신소재이다. 그러나 탄소나노튜브의 경우에서도 경험했듯이 아직 응용에 대한 섣부른 기대를 부풀리기에는 이르다. 특히 반도체 응용 측면에서는 지난 수십 년간 발전해 온 실리콘 기반 기술을 쉽게 이겨내지는 못할 것이다. 어쩌면 그래핀의 실용화는 가임 교수의 말처럼 수평선 넘어 보이지 않는 미래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리콘 기반 기술이 수년 내 한계에 다다르고 지난 수십 년간 이어왔던 반도체 기술의 진보가 멈추게 된다면 관련 산업을 주도해왔던 한국의 경제는 큰 위기를 만나게 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그래핀의 가능성에 더욱 과감히 투자하고 관심을 기울여야할 이유이다. 보다 많은 과학도들의 관심과 정부, 기업의 과감한 연구개발 투자가 이어져 빠른 시일 내에 우리나라가 그래핀 관련 과학기술 및 산업화를 선도하게 되기를 바라면서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