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촌맺기] 박진화 화백
[일촌맺기] 박진화 화백
  • 박지용 기자
  • 승인 2010.10.13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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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눈)은 자신의 처지(발밑)에서 생겨난다”

 지난 1년간 포스텍 구성원들이라면 학교 곳곳에 걸려있는 그림들을 접해왔을 것이다. 무의식 중에 캠퍼스 전역에 걸린 그림들은 우리와 함께 캠퍼스 생활을 해왔다. 지난 해 10월 27일부터 8월 30일까지 10개월 동안 우리대학에서 <발밑과 눈>이라는 초대전을 가진 박진화 화백을 포항공대신문사에서 만나보았다. <편집자주>



- 지난 10월부터 약 1년 동안 포스텍 캠퍼스 전역에 걸쳐 작품 전시를 하였는데, 마친 소감은 어떠신가요?

 그동안 전시 작품을 같이 감상하는 투어 강의 때문에라도 포스텍에 자주 오게 되어 정이 깊이 들었는데, 전시가 끝나서 포스텍에 올 기회가 별로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조금 아쉽습니다. 무엇보다 제 부족한 작품들이 캠퍼스 곳곳에 오랫동안 전시되는 행운을 누린 데 대해 포스텍의 모든 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덧붙여 훗날 <발밑과 눈>의 이름으로 캠퍼스에 전시되었던 제 그림들이 포스텍 학생들의 자긍심을 키운 또 하나의 거름이었다는 소식이 제게 들렸으면 좋겠습니다.     

- 어떤 계기로 대학 캠퍼스에, 그것도 예술과는 거리가 있는 이공계 대학인 포스텍에서 전시회를 갖게 되었나요?

 어떤 ‘인연’이었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었는데, 제 미학적 이념과 포스텍이 추구하는 이상이 만난 듯 싶습니다. 저는 그림이 미술관에만 가두어져 대중과 멀어진 점을 반성하자는 쪽의 화가입니다. 인간적 삶과 관계없이 예술(특히 그림 작품들)이 너무 상업화되어 스스로 공중 부양되어버렸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왔습니다. 아무튼 이공계 대학이라서 오히려 예술성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있었던 듯합니다. 특히 과학과 예술의 만남의 중요성을 강조하신 총장님의 배려가 컸다고 생각합니다.     

- 포스텍에서의 작품전 이름이 <발밑과 눈>입니다. 이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주십시오.

 이번 포스텍의 초대전에 응하여 전시 명칭을, <발밑과 눈>이라 했습니다. 알아듣기 쉽게 ‘현실과 이상’이라고 해도 큰 차이가 없을 전시명을 굳이 <발밑과 눈>이라 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건 다름 아닌 ‘미술은 몸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미술을 대하는 것이야말로 단순한 ‘시각(눈)’의 문제만이 아니라 ‘몸의 총체성’ 문제로 의식을 넓힐 필요가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어쨌거나 미술작품을 접할 때 몸의 체험 없이, 순간적인 눈의 판단으로만 대하게 된다면, 그 작품이 지닌 깊이(역사성과 예술성)에 대한 소통은 반감되거나 곡해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의 주체는 ‘눈’이 아니라 ‘몸 전체’인 까닭이지요. ‘발밑’의 바탕을 통해 ‘눈’이 꿈꾸는 이상을 화폭에 담아내려 힘쓰는 주체는 바로 나의 ‘몸’인 것입니다.

- 여러 작품전 중 대학 캠퍼스에서의 전시회는 아마 처음인 것으로 아는데, 미술관에서의  작품전과는 어떤 또 다른 매력이 있나요?

 제가 알기로도 대학 캠퍼스 전체를 전시장으로 작품전을 갖는다는 건 아마 우리미술사에 처음 있는 일일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 개인적으로 매우 뜻있는 소중한 전시 경험을 하게 된 셈입니다. 보는 이가 미술관의 그림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감상자의 뜻과 상관없이, 학교생활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많은 그림을 접하게 되는 전시형태가 대학캠퍼스 전체에서, 그것도 일 년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뤄졌다는 점은 매우 의미 있는 일임에 틀림없을 겁니다. 또 거의 일 년 동안, 다수가 왕래하는 오픈된 장소에 걸린 100여 점의 그림들 중, 단 한 점의 손상이나 손실 없이 무사히 전시가 종료되었다는 사실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이는 포스텍 뿐 아니라 우리 미술사의 멋진 사건이자 긍지가 될 것입니다.
    
- 그림을 그릴 때 어떤 주제와 의도를 가지고 그리시나요? 박진화 화백님만의 작품관 혹은 세계관을 듣고 싶습니다.

 한마디로 제 붓이 추구하는 미학의 중심은 우리가 사는 이 땅의 ‘현실성’을 화폭에 담아내려는 것입니다. 때문에 ‘역사성’이나 ‘현실의식’, ‘시대정신’이나 ‘참여(민중)미술’ 같은 말들과 제 붓의 지향점이 상당 부분 겹쳐있다고 보면 맞을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우리 역사와 삶의 현실은 매우 특별합니다. 우리민족만이 지닌 독특한 현실성이 있다는 얘기지요. 특히 분단문제는 우리시대의 과제이기도 하지만, 진정한 인류애를 실험해내는 토대이자, 실현시킬 수 있는 에너지원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역사성=개인성=예술성’이라는 등식을 바탕으로, 저의 의식은 ‘나는 나만이 아니다’ 혹은 ‘내 그림은 내가 그린 것만이 아니다’라는 문제를 깊게 파보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더불어 함께하려는 공동체적 정신을 내 붓의 화두로 삼고 있는 셈이지요. 앞으로도 제 붓은 이 땅에서 살아내는 ‘인간’과 ‘인격’ 문제에 더 깊이 빠져 뒹구는데 초점을 맞추게 될 것입니다.      

- 우리대학 학생들은 예술 작품을 많이 접해보지 않은 탓에 그런지 작품 감상에 어려움을 느끼고, 약간의 거부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림, 예술 작품을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 지에 대해 조언 부탁드립니다.

 자신의 판단을 앞세우지 않는 게 제일의 감상법인 듯합니다. 일단 작품을 접할 때 ‘좋다, 싫다’는 판단을 유보하고, ‘나는 예술을 모른다’라는 선입견도 버리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면 ‘왜? 이걸 이렇게 했지?(그렸지?)’라는 호기심이 생깁니다. 그 호기심이 차츰 깊어지면 자연스럽게 작품과 만남(소통)이 가능해 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이렇게 했구나(그렸구나)’라는 낌새를 알아채는 것이 바로 감상이기 때문이지요. 어쨌거나 자신의 의식을 처음으로 건드리는 ‘호기심’이야말로 낯설음을 몸에 받아내는 데 필요한 일차적인 통로인 것입니다.
        
- 마지막으로 포스텍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자신이 자기만이 아니다’라는 사유를 몸에 붙이길 바랍니다. 또 하나는 ‘꿈(눈)은 자신의 처지(발밑)에서 생겨난다’라는 신념을 가슴에 심기를 바랍니다. 포스텍 학생 모두, 자신의 꿈이 실현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