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색채과학을 소개합니다
[학술] 색채과학을 소개합니다
  • 곽영신 / 울산과학기술대학교 조교수
  • 승인 2010.10.13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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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 정량화 요구에 의해 탄생한 색채의 과학

1931년 이래 색 표시 표준화 작업이 꾸준히 이루어져
자연에서 직접 보는 색과 같은 느낌의 색 표현이 목적

 색채과학이란 말 그대로 색과 연관된 내용을 다루는 과학분야이다. 색채과학이란 용어가 생소한 우리나라에서는 도대체 색이 과학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반문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색이 과학과 연결된다고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 이유는 색은 사람의 감각이기 때문에 즉 색을 인지한다는 것은 상당히 개인적인 경험이므로 이를 객관화한다는 것이 쉽게 납득이 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의 글을 통해 왜 색이 디자이너나 예술가의 예술적인 감각의 범위를 넘어 과학을 필요로 하는지 살펴보고, 색채과학의 발전 동향에 대해 알아보자.

 현대 사회에서 색 특히 상업적 목적의 색은 매우 중요하다. 옷이나 가구, 전자제품, 집 단장을 위한 벽지나 페인트 등을 구입할 때 제품의 디자인과 더불어 색상이 구매요인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잘 팔리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색상 및 디자인 결정을 할 디자이너의 역할이 크다 할 수 있으나 디자인 이후의 문제들을 생각해 보자. 회사의 이미지를 위해서 같은 색상을 유지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만약 임의의 회사에서 출시되는 제품의 패키지 색상이 구입시마다 조금씩 다르다거나 옷의 경우 자켓과 바지의 색상이 다소 다르다는 걸 발견하게 되면 무성의해 보일뿐만 아니라 제품의 질마저 낮게 느껴지게 된다. 즉 고품질의 제품을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품질 관리가 요구된다. 그렇다면 색상의 품질 관리를 하기 위한 방법을 생각해보자. 우선 길이나 질량을 측정하는 것처럼 색상을 측정하여 수치화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산업체의 이러한 “색 정량화 방법”에 대한 요구에 의해 1931년 현대 색채 과학은 탄생되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지난 수백 년 동안 사람이 색을 인지하는 메커니즘을 이해하고자 하는 많은 연구가 있었으나, 1931년은 국제조명기구(CIE)에서 색을 숫자로 표시할 수 있는 국제 표준을 최초로 제안한 해로, 이후 제안된 모든 색채관련 국제 표준 및 산업체의 색채 표기는 이때 결정된 방식에 기반하고 있다.

 색이라는 인지 자극을 유발하는 물리적 자극은 눈에 입사하는 380nm~780nm 파장대의 가시광선 영역의 빛이다. 눈에 입사하는 빛은 광원의 특성과 물체의 반사 특성이 결합된 것이다. 빛의 물리적 특성만으로 사람이 인지하는 색을 설명하기는 불가능한 데, 사람 눈의 망막에는 색을 인지하는 세포가 단 3종류 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계 덕분에 우리는 텔레비전(Red, Green, Blue 빛의 가법 혼합)이나 책(Cyan, Magenta, Yellow 잉크의 감법 혼합)을 통해서도 실제 자연에서 보는 것과 같은 색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 인지하는 색을 과학적으로 정량화하기 위해서는 광원, 물체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람 눈의 작동 메커니즘에 대한 정량화가 요구된다.

<그림 1> CIE XYZ 색공간

 <그림1>은 1931년도에 국제조명기구에서 제안한 색채 정량화 방법(Colorimetry)을 개념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광원은 파워 분포 스펙트럼, 물체는 반사 스펙트럼으로 표현된다. 사람 눈은 세 종류의 민감도 함수(color matching function)로 표현된다. 광원, 물체, 사람 눈, 이 세 가지 요소들을 모두 결합하여 색은 삼자극치(tristimulus) XYZ라는 숫자들로 표현할 수 있다. 그림1의 가장 오른쪽 그래프는 XYZ값들을 2차원 평면에 투영시킨 것으로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색들은 말굽모양 안에 표현 가능하다.

 사람이 색을 인지할 때는 주변 정보까지 함께 이용하여 색을 해석하기 때문에 같은 물리적 자극이라 하더라도 환경에 따라 다르게 지각되는 경우들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밝은 낮에는(별이 하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빛을 볼 수 없으나 한 밤중에는 별빛을 볼 수 있고, 검정 바탕 위의 회색은 흰색 바탕 위의 회색보다 밝아 보이는 현상이 발생한다. 색이 다양한 주변 색과 함께 다양한 관측 환경 하에서 제시될 때는 XYZ만으로는 눈에 보이는 색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1980년대부터 서로 다른 관측 환경 하에서 인지되는 색이 어떻게 변화하는 가에 대한 많은 실험이 이루어졌고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색채 외양 모델 (Color Appearance Model)들이 제시되었다. 색채 외양 모델들은 삼자극치값과 주변 환경에 대한 정보를 입력 받아 눈에 보이는 색상, 명도, 채도 등의 정보를 제공한다. 색채 외양 모델을 영상 장비 등에 적용하고자 하는 산업체의 요구에 따라 국제 조명 기구에서는 1997년 CIECAM97s라는 표준 모델을 제시하게 되고 이를 보완하여 2002년 CIECAM02를 제안하였다.

<그림 2> 매체 간 색 보정
 색채 과학은 색 정보의 기록 및 품질 관리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이용되는데 가장 대표적인 예가 영상 기기에서의 이용이다.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은 후 모니터에 띄워 보고, 포토샵 등을 이용하여 보정한 후 컬러프린터로 인쇄하는 일은 일반 가정에서 일상적인 일이 되어버린 지 오래이다. 이때 각각의 영상 장비가 표현할 수 있는 색의 범위는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는 실제 자연에서 본 것과 동일한 색감이 모니터나 프린터에도 표현되기를 원한다<그림2> 이 때문에 영상 기기에서의 색표현을 위해서는 기기들 간 정확한 색 정보 교환 방법(ICC Profile), 매체간 색 일치 방법들에 대해 연구되어오고 있으며, 이미 기기 간 색보정 장치 등은 시중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 색채 과학의 핫 이슈라면 ‘시각적 외양(Visual Appearance)’ ‘감성 조명과 색채’ 두 가지를 대표적인 연구 주제로 볼 수 있다. 현재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많은 제품들, 예를 들어 자동자, 가전제품, 직물 등의 표면을 관찰해보면 광택, 텍스처, 메탈 칼라, 펄 칼라 등 다양한 표면 특성을 갖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런 표면들의 색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평평한 표면의 색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기존 색 정량화 방식을 적용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요즘은 색 자체 뿐 아니라 표면 특성을 포함하는 시각적 외양 정량화 연구가 많이 요구되고 있다.
기존 색채 과학이 인지되는 색을 표현하는데 무게 중심을 두었다면 요즘은 감성적인 부분을 수학적으로 정량화 하고자 하는 연구들이 많이 진행되고 있다. 머리말에서 소개한 제품 디자이너를 생각해보자. 디자이너가 본인의 주관적인 판단만으로 소비자들이 원하는 색을 결정할 수 있을까? 색에서 연상되는 사람들 사이에 공통된 감성을 정량화 할 수 있다면, 보다 객관적인 의사 결정이 가능할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LED 조명의 상업화에 따라 감성 조명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 조명은 조명 자체의 색 뿐 아니라 조명의 스펙트럼 구성에 따라 실내에서 느껴지는 전체적인 색감이 영향을 받으므로, 조명의 색재현 능력 표현은 기존 색채 외양 정량화와는 다른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

 색채과학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산업체에서의 응용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발전해나가는 학문 분야이며 색이 제품 구매를 유발하는 요인에 포함되는 모든 산업군에 필요한 학문이나, 국내에서는 색채과학 연구 기반이 아직 상당히 약하다. 2009년에 개교한 울산과학기술대학교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에서는 국내 최초로 대학원에 색채 과학/공학 전공을 개설하여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있으며, 색채 과학 연구실에서 색채 과학 전반에 걸친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울산과기대 색채 연구실이 국내외 색채 과학의 새로운 연구 중심지로 자리 잡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 즉 우수한 학생들이다. 본 글을 읽고 색채 과학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싶은 학생들의 많은 연락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