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편지] 인간의 탐구, 신인간의 창조
[문학편지] 인간의 탐구, 신인간의 창조
  • 박상준 / 인문 교수
  • 승인 1970.01.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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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근대문학, 인간성 해방의 이야기

문학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는 수없이 많다. 문학이 갖고 있는 여러 측면 중 어느 것에 주목하는가에 따라 입장이 갈린다. 한편에서는 문학의 역사 전체에 걸쳐 재미와 유흥을 보아왔다. 다른 한편으로 전근대 사회에서 예술로 인정된 문학들은 대체로, 그 시대의 지배적인 이념을 전파하는 기능 면에서 주목되었다.

이러한 사정이 바뀌는 것은 근대에 들어와서이다. 이제 문학은, 이미 존재하는 무언가를 효과적으로 전달해주는 기능이 아니라, 가려져 있던 진실을 파헤치는 주요한 장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좀더 나아가서는, 미지의 것을 탐구하여 진실을 확장하는 것이 문학의 몫으로 여겨지게도 되었다. 이때 근대문학이 탐구의 대상으로 놓은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하나이고, 이 자리에서 살펴볼 ‘인간’이 다른 하나이다.

근대문학의 주요 과제 중 하나가 인간 탐구로 설정되었다는 사실에서 중요한 것은 다음 세 가지이다. 탐구의 대상이 될 만큼 인간의 본질이 알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는 것이 첫째이고, 그러한 탐구 자체가 인간성을 발양·확장하는 과정이기도 했다는 것이 둘째이다. 말을 바꾸자면, 문학을 통해 인간을 알아나가면서 새로운 인간을 창출해내었다고 할 수 있다. 셋째는, 이 모든 과정의 바탕에 ‘인간성의 해방에 대한 열망’이 깔려 있다는 점이다. 인간을 알아나가는 과정은 인간의 자유로운 면모들 각각을 드러내고 승인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었으며, 궁극적으로는 각종 금기를 넘어선 보다 자유로운 인간, 신인간의 창조를 향하는 것이었다.

인간에 대한 하나의 관념 즉 기성사회가 제시하는 규범적이고 이상적인 인간형을 폐기하고 살아있는 인간들이 보여주는 자유분방한 모습들을 인정하고 키우는 것, 이것이 바로 근대문학이 인간을 탐구하는 목적이었으며 동시에 그 결과이자 성과라고 할 수 있다.


2 관념적 인간, 현실의 인간, 인간의 현실

근대문학이 보여준 인간 탐구의 첫 번째 양상은, 현실의 인간을 긍정하면서 전근대적인 인간관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근대문학의 첫머리에 오는 보카치오의 <데카메론>(1353)이나, 세르반떼스의 <돈 끼호테>, 중국 근대문학을 연 노신의 <아Q 정전>(1921) 모두 이러한 의미를 공유한다.

흑사병을 피해 도시를 떠난 귀부인과 청년들 열 명이 열흘 동안 나눈 100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데카메론>은,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사람살이의 모습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마음을 즐겁게 하는 얘기 이외는 무엇이고 결코 갖고 들어오지 말라’는 등장인물들의 결의대로, 이 소설에는 성적으로 자유분방하며 재치가 번득이는 보통사람들의 자유로운 모습이 풍성하게 엮여져 있다. 중세 서민들의 이야기 전통을 이어서 인간의 세속적인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것인데, 이를 통해서, 중세적인 세계관에 토대를 둔 이상적인 인간관에 가려져 있던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인간이 문학작품의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다.

영웅이나 기사, 이상적인 여성 등과 같은 관념적인 인간이 아니라 보통사람들의 자유로운 면모에 주목하는 이러한 근대적 전통은,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1378~1400)를 거쳐 라블레의 <팡타그뤼엘>(1532)과 <가르강튀아>(1534) 등으로 이어진다. 이들 작품에는 ‘하고 싶은 바를 행하라’라는 계율 아래 육체적인 만족을 통하여 삶을 즐기고 정신적 쾌활함을 내세우는 현세적인 태도가 잘 드러나 있다.

이렇게 이어진 ‘새로운 인간성의 옹호’ 경향이 제 힘을 키워 전근대적인 인간관을 공격한 기념비적인 작품이 바로 세르반떼스의 <돈 끼호테>(1605, 1616)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중세 기사도에 대한 신랄한 풍자인 한편, 이 소설은 새로운 인간의 모습을 담고 있는 점에서도 주목되었다. 예컨대 괴테나 실러 등 독일 낭만주의자들은 ‘돈 끼호테’에게서 ‘자유에 대한 불타는 신념’과 ‘이상을 향해 강인하게 돌진해나가는 의지’를 가진 근대적인 자아를 보았다.

한편 <돈 끼호테>는 인간의 행위와 그것을 추동하는 욕망의 원리를 보여준 작품으로도 해석되어 왔다(르네 지라르,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돈 끼호테’를 움직이는 힘은 그가 이상적인 기사로 흠모하는 ‘아마디스’를 모방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이 욕망에 의해 주인공 자신이 ‘알론소 끼하노’에서 ‘돈 끼호테’로 되는 것이며, 마을 처녀 ‘알돈사 로렌소’가 숭배의 대상 ‘둘씨네아 델 또보소’로, 말라빠진 말이 ‘로시난떼’로 바뀌게 된다. ‘돈 끼호테’의 욕망은 사실 ‘아마디스’의 욕망인 셈이다.

이렇게 우리의 욕망이 대상과의 관계에서 직접 촉발되는 것이 아니라 중개자에 의해 조종되는 것임은, 우리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확인된다. 학생들은 부모에 의해, 소비자들은 광고모델에 의해 중개되면서 욕망을 키우며, 같은 원리로, 사랑은 질투에 의해 증식된다. 우리들의 욕망이란 사실 우리 자신 고유의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방하고자 하는 중개자나 라이벌의 것이라는 사실, 근대인의 이러한 특성을 잘 보여준 작품들로 지라르는 스탕달의 <적과 흑>(1830),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1857), 도스토예프스키의 <미성년>(1875),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913~27) 등을 <돈 끼호테>에 이어 언급하고 있다. 이들 모두 근대인의 한 특징을 탐구한 성과라는 것이다.

이성에 대한 신뢰를 특징으로 하는 18세기로 접어들면서 문학은 근대인들이 생각하는 새로운 인간상을 직접 제시한다.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1719)가 대표적인 예가 된다. 무인도에 홀로 떨어진 주인공이 무려 28년 동안 살아남을 수 있게 한 합리적인 삶의 자세는 그대로 계몽주의의 인간상 곧 합리적이고 자율적인 개인 주체의 핵심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후, 인간 이성의 절대성을 회의하면서 감정의 가치와 자아의 의지를 강조하는 새로운 경향이 인간의 면면을 좀더 풍성하게 해주었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74)은 이런 경향의 선구로서, ‘낭만적 사랑’이라는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을 품은 근대적 개인의 모습을 포착하고 있다.

개인 내부에 존재하는 규율되지 않는 욕망의 발견은, 한편으로는 분열된 의식의 발견으로 이어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성이나 낭만적 감성 너머에 있는 새로운 영역에 눈 뜨게 하였다. <악령>(1871~2)과 <카라마조프의 형제>(1879~80) 등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의 광인들은 바로 이러한 인간 발견의 서주로서 계몽주의적·합리적인 인간상을 해체하고 새로운 인간들의 새로운 세계를 열어보였다.

‘의식의 분열’은 모더니즘 소설의 주요 테마로 다루어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새롭게 발견된 인간성의 영역인 비합리적인 것들은 에드거 앨런 포(1809~49)에 의해 판타지, 그로테스크, 괴기 등의 양식으로 근대문학에 포괄되었다. 스티븐슨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1886) 등을 잇는 현대의 장르문학들이 그 직접적인 후손이라 할 수 있다. 또 다른 갈래인 에로티즘은 18세기말의 사드(1740~1814)를 선구자로 하여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1928) 이후 문학의 인간 탐구 영역으로 끌어들여졌다.


3 자유로운 인간의 거울, 근대문학

지금껏 살펴보았듯이 문학의 역사는 한편으로 근대인의 다양한 면모에 대한 발견의 역사이기도 하다. 종교와 이념의 눈으로 조명되던 인간상이 르네상스기 이래로 현실의 인간으로 대체되고, 계몽주의를 지나면서는 합리적인 존재로 제시되었다. 여기에 감성과 욕망이라는 새로운 측면이 발견되고, 언어로 규정하기 힘든 비합리적인 속성까지 부가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이러한 개괄에서 중요한 것은, 근대문학은 인간성의 본질을 하나의 전형으로 내세울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반대로 근대문학은 인간들이 보이는 차이와 개성, 새로운 면모에 주목하여, 인간의 다양하고도 이질적인 모습을 강조해왔다.

근대사회에서 인간의 삶이 갖는 궁극적인 의미나 인간의 본질을 추구하기는 하지만, 그 결과를 모아 하나의 전형적인 인간상을 수립하고자 하지는 않는 이러한 태도의 바탕에는, 인간을 자유로운 존재로 보는 관념이 깔려 있다. 대상이 무엇이든 마찬가지이듯, 인간에 대해 하나의 상을 제시할 때 인간성에 대한 억압이 필연적으로 뒤따른다는 점을 근대문학은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인식 위에서 근대문학은, 배제되거나 억압되어온 인간성을 새롭게 발견하여 생명을 불어넣어줌으로써 우리의 인간 이해를 진정 자유로운 것으로 만들어온 것이다.

사실 근대문학이 발견해온 이질적인 속성들의 총화가 바로 우리 현대인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사정이 이러하기에 근대문학이 행한 인간 탐구의 역사는 불연속적이되 축적적인 것으로서 끊임없이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