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르포] 백남준 특별전시회
[문화르포] 백남준 특별전시회
  • 강명훈 기자
  • 승인 2010.09.22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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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이 남긴 아름다운 유산을 찾아서

 비디오 아트로 유명한 세계적 미디어 아티스트 고(故) 백남준의 특별전시가 9월 9일부터 11월 21일까지 포항시립미술관에서 열린다. 전시 제목이자 주제인 ‘텔레토피아(Teletopia)’는 작가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텔레비전의 ‘텔레’와 이상적인 사회를 일컫는 유토피아의 ‘토피아’를 합성한 말로 백남준의 예술철학과 비전을 반영한다. ‘드로잉에서 레이저까지’라는 부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전시회에는 총 150여 점의 비디오 조각, 회화·드로잉, 사진 등 백남준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평일 화~금 오전 11시, 오후 3시나 주말 오전 11시, 오후 2시, 4시에 가면 도슨트 자원봉사자들에게 자세한 전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주말에 연인 혹은 친구와 함께 거장의 흔적을 감상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미디어 아티스트의 거장, 백남준의 전시회가 열리는 포항시립미술관을 방문해보았다. <편집자 주>



 오후 1시. 환호해맞이공원 바로 전 역에서 내리라는 미술관 안내원의 말을 듣고 105번 버스를 타고 미술관을 향해 출발했다. 우리대학과 미술관이 각각 종착역 부근이라서 50여 분을 버스에서 보내고서야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로비의 한 가운데 3m는 되어 보이는 탑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물론 탑은 텔레비전을 쌓아 만들어진 것이었다. 마치 다보탑을 보는 듯한 전통 기법의 탑이지만 텔레비전 옆에 부착한 네온 조명과 비디오 이미지와 함께 있어 이색적인 인상을 풍겼다.

 미술관 직원의 안내를 받아 1층 제1전시장을 둘러보았다. 꽤 넓은 공간이었지만 단 두 작품만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장 한 가운데에 우뚝 웅크린 거북이와 그 시선 끝에 있는 커다란 벽을 보며 둘의 존재감만으로 방안이 가득 차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번 전시회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작품 ‘거북’은 등껍질의 중심에서부터 거북이 이미지, 꽃, 나무의 비디오가 재생되며 반짝이고 있었다. 통일감이 아주 잘 살아있는, 하이라이트라는 이름에 걸맞은 작품이었다.

 계단을 타고 2층 발코니에 들어서서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자 벽면 도화지 위에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초등학생들의 공모전 그림이라도 걸어놓은 것이냐 물으니 전부 백남준 선생의 회화라고 한다. 설명에는 순수함과 장난끼 어린 밝음, 긍정적 마인드 등 작가 자신을 표현한 회화라고 적혀있었다. 설명을 보고 나서야 그림의 터치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속으로 웃으며 다음 작품을 향했다.

 발코니 끝에 위치한 수상기 안은 다양한 소재들을 이용해 표현한 네온 텔레비전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발코니를 나와 제2전시실로 가는 복도의 벽면에 백남준 선생의 일상이 담긴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큐레이터 조형일 씨는 “이번 전시회의 특징 중 하나가 기존의 백남준 전시회와는 달리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비디오 작품뿐만 아니라 백남준과 관련된 다양한 종류의 작품이 전시된 점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비디오 아티스트뿐만이 아닌 백남준 선생의 또 다른 아티스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제2전시실 앞 천장의 샹들리에가 심상치 않다. 샹들리에의 끝에서 시선을 점점 위로 올려다보면 역시나 촘촘히 박혀 있는 텔레비전이 보인다. 그가 살던 집의 모든 가구는 전부 텔레비전이 박혀 있지 않았을까 상상해보게 된다.

 제2전시실에 들어서면서 받은 느낌은 ‘정원’이었다. 텔레비전, 디스크, 박제 까마귀, 자전거 바퀴로 이뤄진 ‘인플럭스 하우스’ 바로 앞에는 다섯 방향으로 뻗친 넝쿨 숲이 자리하고 있다. 정원의 끝에는 중절모를 쓴 한 신사가 산책을 즐기는 여유를 보여주고 있다. 인플럭스 하우스 안으로 들어가면 푹신해 보이는(?) 침대에 누워 벽면의 레이저 비디오 ‘글로벌 그루브’를 보고 있는 중절모 신사의 모습이 떠오른다.

 제2전시실 끝에 자리한 자그만 방에 들어서면 이번 전시를 통해 최초로 선보인다는 90년대 백남준 선생의 콜라주 73점을 볼 수 있다. 콜라주 작품 한가운데 있는 해골과 함께 찍힌 고(故) 백남준 선생의 사진을 마지막으로 바라보며 1층 로비로 내려왔다.

 거북이라도 한 번 더 볼까하고 발코니를 통해 계단을 내려가다 처음에 미처 못보고 지나친 벽에 새겨진 글귀를 볼 수 있었다.

‘나의 환희는 거칠 것이 없어라 My jubilee ist unverhemmet’.

 몇 초간 묵묵히 벽을 응시하다 이미 세상을 떠난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묘해진 가슴을 안고 미술관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