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평론가] 영화 '판타스틱 플래닛'
[나도 평론가] 영화 '판타스틱 플래닛'
  • 김정우 / 화학 04
  • 승인 1970.01.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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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함 장벽 허문 푸른 빛의 감동
우리가 때때로 크게 혼돈하는 것 중에 하나가 ‘익숙하다’라는 의미와 ‘옳다’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익숙한 것이 옳은 것이고, 다수가 선택하는 것이 바른 길이라 착각할 때가 참으로 많다. 한 방향으로만 흐르던 나의 사고를, 다시 거꾸로 흐르게 해준 영화가 바로 ‘판타스틱 플래닛’이다. 내가 이 영화를 보고 났을 때 받는 느낌은 충격 그 자체였다. 내가 옳다고 믿었던 것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이미 익숙해져 무딘 의심의 칼날을 들이댔던 많은 사실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기에 이 영화는 색깔있는 영화라 말하고 싶다. 많은 영화들이 시대의 흐름을 따라, 유행을 따라 자신의 코드를 짜 맞추는 것과는 다르게, 이 영화는 시대가 많이 흘렀음에도 새롭게 다가갈 수 있는 신선함을 갖추었다. 시대와 국적을 초월해 이 영화에 공감하는 이유는 우리가 젖어있던 익숙함이란 장벽을 허문 것에서부터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푸른 빛 향기로 다가왔던 이 영화의 감동을 다른 이들에게도 전하고 싶어 잠시 소개할까 한다.

이 영화에서는 인간을 닮은 ‘옴’이란 동물과 이상한 형상을 한 ‘트라그’라는 외계 생명체가 등장한다. 우리의 정서적 측면에서 ‘옴’은 우주의 주인이 되어야 할 듯하다. 그렇지만 감독은 냉정하게도 ‘옴’을 파란 몸뚱이와 생동감 없는 눈을 가진 ‘트라그’의 애완동물로 전락시켜 버린다. ‘옴’은 그저 ‘트라그’족을 위한 광대에 불과하다. 싸우고 재롱 피우는 ‘옴’은 ‘트라그’족의 박멸작전에 힘없이 무너지는 종족이다. 이때 ‘옴’들은 ‘트라그’족의 지식을 습득하게 된다. 그 습득한 지식으로 명상 상태의 ‘트라그’족들을 공격하면서 승리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이 영화는 그 담고자 하는 깊은 의미를 미루어 두고서라도, 할 말이 많은 영화이다. 파스텔 풍의 느낌과 원색적 색감은 깊은 인상을 주었다. 강렬한 색깔과 거친 터치 속에서도 섬세한 느낌의 전달은, 나를 더욱 강하게 영화에 몰입하게 하였다. 또한 생소한 프랑스어는 영화 속에서 느끼는 외계적 느낌을 더욱 훌륭하게 살려주었다. 한국어와 영어로 되었다면 다소 우스꽝스럽게 들릴지도 모를 그러한 내용들을 프랑스어를 통해 실감나게 전달하였다. 시각적·청각적 요소들보다 더욱 눈여겨 볼 점은 소재의 참신함이다. 인간은 그저 외계의 한 동물에 불과하다는 설정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소재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단순히 새로운 설정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설정을 통해 현실을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점이 더 돋보이는 부분이다.

‘판타스틱 플래닛’이라는 이 영화에서는 인간의 오만함에 대해 잘 말해주고 있다. 영화는 뒤집어진 시선으로 세상을 조명한다. 우리에게 익숙했던 강자의 시선이 아닌 약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뒤바뀐 상황을 통해, 과학과 문명의 발전이라는 가면 속에 숨겨진 우리의 오만함을 꼬집어 내고 있다. 인간을 닮은 ‘옴’이란 동물을 내세워, 인간 역시 지배당하고 억압받을 수 있는 존재임을 말하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금빛 ‘아메리카 드림’속에 숨겨졌던 인디언의 붉은 피자국과 미 대륙을 적셨던 흑인 농노들의 눈물 방울이 생각났다. 이러한 것들은, 같은 인간을 인간으로 여기지 않고, 도구적 수단으로 치부해버린 문명과 물질의 이기요 인간의 오만함이다. 우리가 편리한 생활과 급속한 발전 뒤에 묻어두고 숨겨왔던 그 이야기들을 이 영화는 말한다.

또한 이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가진 자들과 갖지 못한 자들의 현실이다. ‘옴’족들은 발전의 근본이 되는 지식이 없다. ‘트라그’족은 지식을 기반으로 삼아 발전된 문명을 자랑한다. 하지만 ‘트라그’족들은 그 지식을 공유하지 않는다. 지식을 공유한다는 것은, 그들의 기득권을 포기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영화 속 모습은 현실과 비슷하다. 현실에서는 자본이라는 모습으로, 영화에서는 지식이라는 모습으로 형태만 달리 할 뿐이지, 있는 자들이 그것을 나누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우 비슷하다. 영화 속에서는 ‘옴’들이 지식을 얻어 반격을 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한 가닥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고전이라 함은 시대에 상관없이 누구나 읽어도 감동받을 수 있는 모범적 작품을 말한다. 이 영화는 고전이라 불리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짧은 애니메이션 속에서 현실을 투영하고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우리가 그저 덮어두고만 있었던 일들을, 아니 애써 외면했던 일들을 새로운 시선을 통해 꼬집어 내고 있다. 비판과 더불어 ‘옴’의 승리를 통해 한 가닥 희망을 안겨주고 있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그에 굴하지 않고 나아가는 희망적 모습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이다.

시종일관 푸른색 속에서 진행되는 이 영화를 보고나서 푸른색의 진한 감동을 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내용에 대한 공감이기도 하거니와 감독에 대한 존경, 그리고 나의 삶에 대한 반성이었다. ‘판타스틱 플래닛’은 한쪽으로만 흐르던 나의 사고를 뒤집은 영화이며, 내가 생각지 않고 넘어갔던 무심한 것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이 영화를 푸른 빛 영롱한 색깔을 띤 작품이라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