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국제 영화제를 다녀와서
부산 국제 영화제를 다녀와서
  • 김성훈 / 물리 02
  • 승인 2004.10.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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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엔 ‘영화의 바다’에 푹 빠져보자
다큐 ‘슈퍼 사이즈 미’ 인상깊어···자갈치 시장 등 시내관광도 재미
내가 부산국제영화제(PIFF, P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라는 행사와 인연을 갖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이야기이다.
또 처음에는 영화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내가 사는 부산에서 열리는 행사이기 때문이라는 점에서였기 때문에 그리 큰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고 여가생활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부터 영화감상이 어느덧 내 취미생활 중 하나가 되어 있었고, 머릿속에 묻혀있던 국제영화제에 대한 생각들도 자연스레 내 관심사 중 하나가 되었다. 2년 전 3편의 영화를 보면서 시작된 나의 영화제 행사 참가는 올해로 벌써 3번째를 맞이하고 있었다.

10월 7일부터 15일까지의 9일간의 영화제는 사실 예매기간부터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워낙 크고 유명한 행사이다 보
니 입장권 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현장에서 판매하는 입장권을 구해서 영화를 봐야지’ 하며 우습게 봤다가는 허탕치
고 돌아오거나 원하지 않는 영화를 보며 후회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는 영화제가 시작하기 전부터 치밀한 준비를 해야한다. 내가 세운 계획은 이렇다.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한은 제한되어 있으므로 그 기간을 최대로 활용해 가능한 많은 영화를 볼 것, 감독이나 배우를 초청해 관객과의 시간을 가지는 GV(Guest Visiting) 영화를 노릴 것, 영화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아보고 지루하지 않은 영화를 선택할 것. 나름대로 의미 있게 계획한 조건들에 맞춰 올해는 11편의 영화와 함께 하는 일정을 만들었다. 올해도 헤어 나오지 못할 영화의 바다에 풍덩하고 빠질 준비가 완벽하게 된 것이다.

10월 7일, 개막식과 함께 바쁜 일정이 시작되는 날이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부산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개막식 장소는
수영만 요트경기장 내 야외상영관. 작년의 기억을 더듬어 버스와 지하철과 도보로 3시간이 걸리는 그리 짧지 않은 그 길은 개막식을 올해도 볼 수 있다는 기대 때문에서인지 그다지 지루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포항-부산간의 거리 차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을까, 일찍 도착해 레드카펫 근처에서 영화관계자들을 가까이에서 보겠다는 내 다짐은 이미 가득 메워진 좌석을 보고 와르르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개막작 ‘2046’의 감독 왕가위와 주연배우 양조위의 무대인사와 여러 국제영화제 관계자들의 환영인사가 끝나자 드디어 영화제
개막식이 시작되었다. 동서양의 조화를 의미하는 간단한 음악공연이 끝나갈 즈음에 갑자기 터진 폭죽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무심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던 대형스크린이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그 거대한 얼굴을 5000여명의 사람들에게 비추었다. 여기저기에서 터지는 함성과 갈채를 받으며 고개를 든 스크린 위에는 어느새 개막작 ‘2046’이 나오고 있었다.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의 후속작으로 소개된 ‘2046’은 유명 영화배우들이 대거 출연한 그의 최신 작품으로, 화려하고 아름다운 영상과 가슴속을 파
고드는 사운드가 인상적인 영화였다. 영화의 매력에 푹 빠진 사이에 어느새 영화가 끝났고, 기념촬영과 뒷정리로 어지러운 야외상영관을 뒤로하고 난 발걸음을 재촉했다. 내일 있는 수업에 빠질 수 없었기 때문에 내일 아침 일찍 포항으로 돌아가려면 일찍 집에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10월 8일은 아침부터 정신없었던 하루였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곧바로 포항으로 향했다. 11시와 1시 15분에 있는 수업을 무사히 듣고 다시 부산으로 출발. 오전에 그렇게 수업을 듣고 부산과 포항을 오고 가는데 시간을 쏟느라 정신이 없었다면 오후부터는 조금은 여유롭게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해운대 메가박스는 역시나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영화관 내부에 전시하고 있던 작품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 영화제 책자를 뚫어져라 살펴보는 사람들, 피곤한 여정에 지쳤는지 앉아서 쉬는 사람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만한, 아니 나보다 더한 영화광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한번 놀랐다. 오늘 내가 볼 영화는 불가리아 여성감독의 예술학교 졸업 작품으로, 시종일관 어두운 분위기를 유지했지만 행복한 결말로 끝났던 어떤 여성의 이야기 ‘화성에서 온 밀라’와 장진 감독의 작품인 ‘아는 여자’이다. ‘아는 여자’의 GV 시간에는 장진 감독과 주연배우 정재영, 이나영의 무대인사가 있었는데, 두 배우가 민망할 정도(정재영은 왜 자신과 이나영에게 질문을 하지 않느냐는 불만을 농담을 섞어 털어놓기도 했다)로 감독에게만 질문을 던지는 관객들 때문에 속으로 웃음을 참지 못했던, 기억에 남는 시간이었다.

나의 국제영화제 일정 중 절정을 꼽으라면 10월 9일이 되겠다. 하루 동안 무려 5편의 영화를 계획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간만의 한국 호러 영화의 수작 ‘알 포인트’를 시작으로 ‘죽은 사람들’, ‘한국단편: 프로그래머의 시선 1’을 연속해서 봤다. 잠시
숨쉴 시간을 갖는 사이, 영화제를 함께 하기로 한 누나를 만나 저녁을 먹고 앞으로 남은 2편의 영화를 보기로 했다. 애인과 아버지와 아들과의 애정 속에서 갈등하는 세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 ‘파라다이스 걸즈’를 보고 GV 시간을 보내고 있던 중이었다.
문득 시간을 봤더니 다음에 이어서 보기로 한 영화가 시작한지 10분 정도가 지난 시간인 것이었다. 영화 상영이 시작하면 입장
할 수 없다는 말이 순간 떠올랐고, 서둘러 그곳을 나오긴 했지만 역시나 들여보내 주지 않았다. 한국의 사라져 가는 야생동물들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영화 ‘침묵의 숲’은 어이없게도 그렇게 입장권만 남겨놓고 허공 속으로 날아가 버렸다. 영화를 보
고 있었어야 하는 그 시간동안 난 해운대 바닷가에서 파도와 바닷바람을 맞으며 그 아쉬움을 달래야 했고, 이 일은 영화제 기간
동안 최대의 에피소드로 남게 되었다.

10월 10일, 주말이 끝남과 함께 내 영화제 일정도 막바지에 이른 시점. 2편의 영화를 보고 포항으로 돌아가야 했다. 오늘은 남포동에서 일정이 계획된 날. 처음 본 영화는 ‘인어공주’이다. 시간이라는 가시밭길을 걸으며 불행해져버린 순수한 사람의 이야기라고 하면 어느 정도 요약이 될까? 아무튼 영화도 감동적이었고, GV 시간에 무대 인사를 하러 왔던 감독과 배우 박해일을 보며 더 감동을 받았던 시간이었다. 다음으로 본 영화는 ‘슈퍼 사이즈 미’라는 영화로, 감독이 몸소 패스트푸드만을 먹으며 변해 가는 모습을 통해 맥도널드라는 대기업의 폐해를 보여준 다큐멘터리영화였다. 이번 영화제 기간동안 봤던 영화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로, 패스트푸드를 좋아하는 현대인들에게 일침을 놓을 엄청난 영화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다시 버스를 타고 포항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아직 내 영화제 일정이 끝난 것은 아니다. 15일의 폐막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아직 일정을 끝내지 못한 상태에서 영화제에 대한 글을 쓰려니 완결되지 못한 상태로 끝이 날까봐 걱정이 되지만, 올해 영화제
에 대한 반성과 다음 행사에 대한 계획을 미리 세우면서 글을 마무리한다. 올해 가장 아쉬웠던 점은 너무 일정을 빡빡하게 세운
것이 아닐까 한다. 처음엔 제한된 일정에 가장 큰 만족감을 얻으려면 쉴 틈도 없이 많은 영화를 감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
만 막상 너무 바쁜 일정도 그렇게 큰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순히 영화를 상영하는 것만으로 국제영화제
가 구성된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야외무대와, 감독과 배우들의 무대인사도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상영장소 근처에는 유명한 부산의 관광명소(해운대 해수욕장, 자갈치 시장, 먹자골목 등)가 있기 때문에 영화제 기간동안 그것들을 즐기는 것 또한 또 다른 즐거움이라 하겠는데, 정작 지금까지는 그런 곳에 시간을 투자해본 일이 없었던 것이다. 만일 내년에도 시간이 주어진다면 이런 점들은 미리 생각해두어야 하겠다. 앞으로도 영화제에 대한 내 관심은 계속될 것이고, 개인적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역시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