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주의의 탄생
초현실주의의 탄생
  • 나기원 기자
  • 승인 2004.09.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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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만명의 사람들이 죽고 2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부상당한 잔인했던 제1차 세계대전 후 진보의 희망은 전쟁의 끝과 함께 죽어버렸다고 여겨졌다. 이 때 등장한 다다이즘은 기성의 전통·질서에 대한 파괴운동이었다. 다다이즘을 이끈 사람들은 전쟁이 전전의 이상과 믿음이 쓸모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믿고 전 유럽이 서로 충돌하도록 이끈 전통적인 사고에 대한 전쟁을 선언했다.

사전을 펼쳐 보이는 단어를 따서 그 이름으로 한 ‘다다’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다다이즘은 무질서하고 해학적이며 또한 매우 진지한 면을 갖추고 있었다. 다다이즘의 대표적 작품으로는 샘(1913, 뒤샹)이 있다. 그는 기성품인 변기를 전시회에 출품했으며 이 변기가 화랑에 놓임으로서 본래의 기능이 제거되고 미적 대상으로 평가된다는 개념의 변화 자체가 현대미술의 주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다다이즘의 분열 후 예전의 다다이스트들은 새로운 깃발 아래 모였다. 그들은 현실을 보는 전통적인 시각의 대안을 찾고 있었으며 이에 대한 영감을 무의식과 꿈을 분석하는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에서 찾았다.

이 새로운 조류는 초현실주의라고 불렸으며 이는 꿈과 비이성적인 무의식의 예술이 되었다. 이런 설명할 수 없는 비이성적인 무의식을 어떻게 표현하느냐는 초현실주의자들의 숙제가 되었고 그들은 이를 자동기술법과 편집광적 비평적 방법을 통해 그려냈다.

초현실주의는 앙드레 브르통이 1924년부터 1926년까지 초현실주의 선언 I, II을 발표하고 호안 미로, 막스 에른스트, 마그리드 등의 화가가 활동하며 절정에 이르렀으나 1966년 앙드레 브르통의 죽음으로 그 막을 내린다. 하지만 아직도 초현실주의는 현대미술에 있어서 이론적인 면에서 그 역할을 다했다고 볼 수 있으며 아직도 미학적인 면에서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