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 교수의 ‘문화유산을 보는 눈’ 강연초록
유홍준 교수의 ‘문화유산을 보는 눈’ 강연초록
  • 유정우 기자
  • 승인 2004.03.2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18일 문화콜로키움의 일환으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완당평전> 등의 저술과 강연 그리고 교단에서 우리 산하와 문화유산은 완상의 대상을 넘어선 무수한 사연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명지대 유홍준 교수가 ‘문화유산을 보는 눈’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가졌다. 유교수는 우리문화 유산에 대하여 애틋하고도 농밀한 시선으로 유산 속의 우리 선조의 정신과 잃어버린 정서를 읽어가며 직접 찍은 답사 사진을 바탕으로 우리의 문화유산을 보는 눈과 우리의 문화 풍조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다.

문화재 복원에 있어서의 지양되어야 할 우리 풍토
경주 구황동에 있는 황룡사지에 가면 아직도 주춧돌이 남아서 과거의 웅대했던 때를 간접적으로나마 증명하고 있다. 당시 불교는 국가 운영의 이데올로기로 사찰은 단순한 신앙의 공간이 아니라 마치 그리스의 포룸처럼 당대의 지성들이 오고가고 나라를 운영하는 자리였다. 불교계에서는 이를 복원하는 것을 최대숙원사업으로 복원을 궁리 중이다. 현재 경주국립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는 평지에 우뚝솟은 황룡사의 축소복원 모형은 경이감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하다. 가로 25미터 높이는 22층 건물에 육박하는 황룡사를 복원하는 것은 가능한가. 많은 예산을 필요로 하지만 그것보다 자재의 문제가 우선이다. 어디서 그 많은 우리 목재, 우리 소나무를 구해낼 수 있을까. 이를 콘크리트, 시멘트로 지어내는 것은 복원이 아닐뿐더러 더 해치는 것이고 수입목재를 이용해서 지어내면 오래가지 못하고 주저앉게 된다. 지금의 우리 문화 풍토로는 이를 복원할 수가 없다. 방법은 딱 한가지 문화재를 이해하고 처음에 황룡사가 세워졌던 것처럼 100년에 걸쳐 터를 다지고 담을 두르고 건물을 올리고 마지막에 탑을 올리기까지 몇 대에 걸친 장기적인 계획 상에서 복원을 해내는 것이다. 문화를 이해하는 눈없이 바로 지금의 결과만을 바라고 복원하는 것은 얼마를 안가 다시 무너져버리고 만다.

명작의 진수, 다양의 조화를 보여주는 불국사

불국사를 찾아가면 고전미술이 대표하는 조화미를 느낄 수 있다. 감은사탑에서 출발해서 더할 나위없이 안정감과 상승감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석가탑이 나오기까지 백년이란 세월 동안 쌓였던 기술과 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화려한 다보탑과 단순미의 석가탑의 조화가 보여주는 아름다움은 다양의 조화를 거리낌없이 보여주고 있다. 또한 왜 절을 이렇게 비대칭적으로 지었을까를 생각하는 동안 다보탑과 석가탑 너머로 보이는 단순한 경루와 화려한 종루를 보면 다양함 속에서 조화, 완성을 찾아내는 선조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지금은 아쉽게도 불국사를 복원하는 와중에 이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깨져버렸지만 불국사의 축대를 살펴보면 이를 다시 느낄 수 있다. 인공과 자연의 조화를 어김없이 보여주는 불국사의 축대는 자연적으로 쌓여서 울퉁불퉁한 표면에 따라 인공의 화강암을 깍아 이에 이를 맞추는 수고를 보여주고 있다. 조화에 대한 고지식함 그리고 세세한 부분에서도 아름다움에 대한 철학을 살려내고 이를 지키는 것이 우리 문화유산의 명작을 이끌어 왔던 원동력이라고 볼 수 있다. 문화유산을 바라볼 때도 이를 생각하고 이런 정서를 바탕으로 바라봐야 한다.

우리문화의 백미, 자연과 인공의 조화

평지에 위치하던 절이 세속을 떠나 산속으로 들어가면서 우리 문화의 독특한 점을 만들어냈다. 선암사 길목에서 볼 수 있듯이 세속을 떠나 산으로 들어가는 길에서도 우리 건축이 시작되며 산 속에 위치한 절을 만날 때에 우리는 마치 원래 그 곳에 있던 듯이 주변의 자연환경과 맞물려 조화를 이루고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마치 마을 전체를 보는 듯이 다가오는 풍경, 산과 들, 물과 집이 공존하며 사람이 살고 있는 풍경은 다른 문화권에서는 찾기 힘든 자연과 인공의 조화라고 자신이 만나왔던 외국인들은 극찬했다고 한다. 비단 산사만이 아니다. 강가에 위치한 작은 누각과 물 받아내는 연못 하나하나까지 우리 선조들은 자연 속에서의 조화미를 찾으려 했다. 산세가 험하면 이에 뒤질세라 솟아오르는 석등을 세우고 주변이 차분하면 단정하고 빈하지 않게 건물을 짓는 검소하지만 약해보이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롭게 보이지 않는 조화 속에서 주변 환경과의 맞물림의 정서를 바탕으로 문화를 만들어왔다.

이러한 정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때 우리의 문화유산 복원은 눈꼴사납게 되기 일쑤다. 외나무다리 하나에도 이런 정신이 반영되었던 것을 무시하고 시멘트로 대충 눈막음하고 지속적인 사용을 통해 충분히 유지가 가능한 문화재임에도 불구하고 복원만 하고 방치하여 몇 년 뒤 다시 복원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 현재 우리 문화의 풍토이다.

잃어버린 정서를 찾아서

우리문화 유산을 만나고 그 바탕에 숨겨진 사연들을 읽어내는 것은 자연 속에서 인공미의 조화를 찾아내고 우리 선조들의 문화를 만들어내고 읽어내던, 하지만 지금은 상실해버린, 우리의 잃어버린 정서를 찾는 것이다.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던 많은 그림과 시들, 김시습과 같은 방랑객의 이야기가 없이는 금강산은 그저 화려한 산으로 다가올 뿐이듯이 자연 속에서 우리 삶, 정신을 조화롭게 일구어내는 정신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우리 문화유산을 바로 바라볼 수 없으며, 올바른 문화유산도 복원 할 수 없다.

문화를 바라보는 눈에서 또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민족적 자부심이 높은 반면 문화적 열등감도 높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 문화와 역사를 평가하는데 있어 자초하는 손해가 많다. 특히 우리 문화가 한 번도 세계의 중심에 서서 문화를 주도한 적이 없다는 데에서 오는 열등감은 수 천년의 세월동안 흡수되지 않고 나름의 독자적인 문화를 만들어온 선조들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역사상 세계의 중심에서 문화를 이끌어 온 문화는 많지 않다. 도리어 이를 바탕으로 중심문화에 동참하고 각자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전체 문화권의 발달을 이뤄내는 것이며 우리 선조들은 동아시아 문화권에 나름의 자리를 차지하고 흡수되지 않기위해 무단한 노력을 해왔다는 것을 알고 이를 자랑스럽게 평가해야한다. 주변국 문화라고 열등의식 속에 가두기보다는 그 속에서도 우리의 문화를 꽃피우기 위해 노력했던 선조들을 본받고 우리 정신, 문화를 이해하도록 노력해야한다. 문화적 열등감을 털어내고 우리 문화를 바라보는 올바른 눈을 가지고 있을 때 우리의 잃어버린 정서를 찾고 지금의 문화 역시 올바르게 키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강연이 끝난 뒤, 지금 우리가 남겨줄 문화유산이 무엇이라는 질문에 “문화유산은 과거의 유물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유산들을 지금 우리가 접하듯이 지금의 우리의 삶, 문화 모든 것이 미래에는 문화유산으로 남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하는 모든 것들이 우리 후손들에게 유산으로 남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 문화를 다양하게 하고 발전시키는데 있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답한 유 교수는 문화유산 전도사로서 앞으로 우리 나라를 이끌어 가게될 포항공대 학생들 앞에서 강연을 하게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며 우리 학생들이 이 삼십년 뒤 이 땅의 과학 기술을 이끌고 우리의 문화를 세계에서 자리를 잃지 않고 지속적인 발달을 이루어내기를 바란다고 말하면서 미래를 보고 나아가라는 말로 강연을 마쳤다.

잃어버린 정서를 찾고 우리 선조들의 문화를 일구어내던 정신을 이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문화유산을 대한다면 과거의 것들도 지금 이 자리에서 재해석하고 다시 현재의 문화를 풍요롭게 할 수 있는 바탕이 되지 않을까. 문화유산을 통해 과거를 떠올리고 현재를 생각하며 다시 미래를 바라보는 눈을 길러내는 것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우리 문화를 올바르게 일구는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