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평론] ☞ 블레어 윗치
[나도 평론] ☞ 블레어 윗치
  • 이재윤 / 생명 2
  • 승인 1999.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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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놓고 돈먹기 위험줄인
할리우드 또다른 돈먹기
블록버스터를 지향하는 일반적인 영화들은 그 영화의 시뮬라시옹(simulation)이 실재(reality)에 가까워지기 위해서 천문학적인 자본을 쏟아 붓는다. 눈앞에서 달리고 있는 공룡을 컴퓨터 그래픽에 불과한 거짓으로 파악할 것인가, 아니면 두 시간 동안의 재미를 위해 미필적 고의(?)를 행할 것인가는 최종적으로 관객의 선택이지만, 제작사나 감독으로서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다행히 요즘엔 영화기술의 발달 덕분에 그들의 노력은 영화의 완성도와는 관계없이 보통은 성공적이게 마련이고, 관객의 입장에서도 이 비싼 ‘거짓’을 믿기로 작정했느냐 아니냐에 따라 재미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이 완벽한 초실재(hyperreality)에서 료타르가 말하던 ‘숭고함’을 느끼기는 마찬가지이다. 이것이 블록버스터의 미덕이라면 미덕이다. 마술의 경우도 비슷하다. 마술이 재미있는 건 그것이 단순히 숙련된 기술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어떤 정교함을 근거로 하기 때문이다. 즉 “믿으면 더 재밌지만 안 믿어도 재밌다”는 것이 ‘사기’를 본질로 하는 엔터테인먼트의 핵심인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블레어 윗치>는 뻔뻔한 영화이다. 왜냐하면 <블레어 윗치>는 이 영화의 공포를 즐기기 위해 극장에 찾아든 관객들에게 종교적인 통과의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믿으면 무서울 것이고, 안 믿으면 돈만 아까울 것이다.” 이 영화가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다고 믿는, 혹은 믿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굉장히 무섭다. 보이지도 않는 ‘그것’이 주는 공포! 그런 사람들은 이 영화의 광고카피인 ‘가장 두려운 것은 당신의 상상력’에 절절히 공감하며 구토를 유발할 것 같은 진한 공포를 즐길 수 있다. 반면 이 영화가 조잡한 사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단지 거대한 넌센스일 뿐이다. 그런 사람들이 이 영화에서 5천원을 건지는 유일한 방법은 에두아르도 산체스와 다니엘 마이릭, 이 두 감독의 거짓말이 얼마나 진짜 같은지 비교, 분석하는 길뿐이다.

이 영화의 뻔뻔함은 여기에 있다. “재밌으면 내 탓이요, 재미없으면 (안 믿은) 니 탓이다.” 진짜라고 생각하며 본 관객들에게 이 영화가 무서운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다큐멘터리(이하 다큐)의 형식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뭔가 근사한 걸 보여줄 능력도 돈도 없는 감독들로서는, 다큐라면 일단은 진실성 혹은 사실성과 맞닿아 있을 것이라 믿는 순진한 관객들이 있다는 사실이 다행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시도는 참신한 것인가? 물론 아니다. 우리는 이런 종류의 영화를 적어도 3개는 알고 있지 않은가? <카니발 홀로코스트1, 2, 3>. 사이비 다큐 형식으로 공포감을 유발하자는 이런 종류의 시도가 ‘허잡함의 본질’에 대한 많은 시사점만을 남겨두고 혹평 속에 사라졌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 신인 감독들이 동일한 전략을 취하기로 작정한 것은 일종의 용기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용기의 결과는 어떠한가? 우선 이런 종류의 사이비 다큐의 한계로서 자명한대로 이 영화는 어떠한 미학적 완성도도 보여주지 못한다. 따로 촬영감독도 두지 않고 연극하던 신인 배우 3명에게 직접 카메라를 맡겼으니 무엇을 더 바라랴? 물론 허를 찌르는 극적인 반전 같은 것도 기대하기 어렵다. 이 영화의 시놉시스는 다음의 단 두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을 정도이니까. “대학생 세 명이 마녀 다큐를 찍으려다 실종됐다. 아무래도 마녀 소행 같다.” 결국 리얼한 공포를 묘사하는 배우들의 좋은 연기를 제외하곤 한마디로 한심할 뿐인 영화가 만들어졌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신드롬에 가까운 반응을 일으키며 역대 최고의 수익률을 기록했다고 한다. 그 원인은 인터넷을 통한 효과적인 마케팅이라 분석되고 있지만 보다 본질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것 같다. 말하자면 이것은 관객들 상상력의 결과가 아닐까? 진짜 같은 가짜에 익숙할 뿐만 아니라 가짜를 진짜처럼 여기는 데에도 아무런 거부감이 없어진 사이버 시대의 젊은 관객들이 조잡할 뿐인 영화에 축복을 내려주고 재주 없는 감독들을 졸지에 돈방석 위에 올려놓은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이 영화에서 관객들의 위치가 이전에 영화가 제공하는 이미지를 소화해낼 뿐인 수동적인 ‘구경꾼’에서 없는 의미도 만들어내는 능동적인 ‘생산자’로 격상된 것으로 파악한다면, 그것은 너무 천진난만한(naive) 생각이다. 이 영화는 어디까지나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시도된 웹 마케팅의 산물일 뿐이고, 그것이 어쩌다 관객들의 취향과 맞물려 분에 넘친 흥행을 하게 된 것뿐이다. 이 영화를 가지고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영화제작의 패러다임을 바꾸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솔직한 심정인 것처럼 보인다. 블록버스터 한 편이 망하면 제작사도 휘청할 정도로 막대한 자본이 들어가는 요즘의 추세이고 보면, 영화의 완성도가 아니라 아이디어만 좋으면 떼돈이 들어올 수 있음을 증명해준 이 사례를 보고 어찌 ‘여차하면 망할 수도 있는 돈놓고 돈먹기’의 패러다임을 안 바꾸고 싶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