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촌맺기]물리학과 염한웅 교수
[일촌맺기]물리학과 염한웅 교수
  • 정해성 기자
  • 승인 2010.05.05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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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마음을 열고 변화를 수용해야"

염한웅 교수는 89년 서울대에서 학사, 91년 우리대학에서 석사, 96년 일본 도호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동경대 교수를 거쳐 연세대 물리학과 교수로 10년간 재직 후 올해 우리대학에 부임했다. 수염을 짧게 기른 그의 모습은 남다른 인상을 주었다. 연구실 앞에서 기다리던 중, 멀리서 “학생 기자죠?”라며 다가오는 그의 모습은 깔끔한 정장일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POSTECH’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와 청바지에 청재킷. 연구실에 페인트칠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냄새가 많이 난다며 기자를 학생회관 북카페로 이끌었다.

▲ 물리학과 염한웅 교수.

- 처음 사진을 통해 봤을 때 수염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기르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요?

수염은 학부 1~2학년 경부터 길러서 벌써 25년 정도 되었는데, 남다르게 멋있어 보이고 싶어서였고, 너무 동안이어서 좀 나이가 들어 보이고 싶기도 했습니다. 몇 년 기르고 나서는 저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버려서 깎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지요.

- 동경대에서 4년, 연세대에서 10년 동안 교수로 재직하다가 우리대학으로 오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요?

연세대에서의 10년 동안 연구에서는 최고의 실적을 냈고 학생들의 교육에서도 이룰만큼 이루었습니다. 연세대의 발전을 위해서도 할 만큼은 했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하지만 앞으로 10년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저는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새로운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년 전부터 포스텍으로부터 교수로 올 것을 요구받았습니다. 동경대에서도 돌아오라는 요청이 있었고, 서울대에서도 초청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포스텍을 선택한 이유는 이곳에서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현재 포스텍을 말하자면, 과거와 달리 어떤 교수가 독보적인 연구시설에 이끌려 오는 것은 힘든 실정이죠. 포스텍이 개교 초기에 전폭적인 지원을 통해 독보적인 시설을 구축했다면, 타 대학들도 20여 년의 시간 동안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비슷한 수준의 연구시설을 구축했지요.

- 어떤 면에서 포스텍에서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셨나요?

서울대나 동경대에 가서 연구하게 된다면 이미 성공한 모델을 따르게 될 것입니다. 탄탄한 국가의 지원도 있고, 뛰어난 학생들도 있죠. 하지만 그렇게 성공하는 것은 답이 있는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입니다. 답이 있는 문제를 푸는 것은 연습문제를 푸는 것이지, 과학이 아니죠.

그러나 포스텍은 딱히 롤 모델이 있다거나 성공이 보장되는 학교는 아닙니다. 포스텍의 성장 곡선을 그려보면 개교 초기에는 전폭적인 지원을 통해 다른 대학들보다 많이 앞서서 출발을 하고 비약적인 성장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성장이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생각들이 내ㆍ외부적 위기의식까지 불러오게 되었습니다. 타 대학은 뒤처져서 출발을 했지만,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현재도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현재 포스텍에서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연구실이, 물리학과의 경우 별로 없다고 봅니다. 포스텍을 선택한 계기라면 물리학과의 발전, 더 나아가 하향곡선에 있는 포스텍을 발전할 수 있게 하는 것을 새로운 도전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사명감도 가지고 있고요. 마침 저의 연구 분야인 금속 나노선 연구에 필요한 방사광가속기도 업그레이드될 예정이어서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석사학위를 우리대학에서 받았는데, 당시 힘들었던 점이나 추억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일단 개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학교에 석사과정을 하러 온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서울대를 다닐 때와 달리 동아리 등의 어떤 집단에 얽매이지 않고 연구면 연구, 운동이면 운동,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어서 자유로움을 느꼈고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포스텍은 경험이 없는 학교였고, 이로 인해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쳤습니다. 저와 전자전기공학과의 한 학생이 학과별 대학원 대표를 선출하여 ‘대학원 학과 대표자 협의회’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 발언한 것이 문제가 되어 250명 정도의 학생이 근신 처분을 받기도 했습니다. 아! 저의 배우자도 학교에서 직원과 학생으로 만났네요.

- 일부 학생들은 포항의 지리적 위치 탓에 문화생활이 힘들다고 하는데, 당시 우리대학에 입학할 때 이에 대한 걱정은 없었는지요?

그런 걱정이 있었고, 이에 대해 영화를 전공하던 형에게 물었죠. 똑똑히 기억나는 형의 말은 “무슨 문화를 원하느냐? 문화는 자신이 만드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문화가 아니다. 문화가 그런 수동적인 것이라면, 그것은 소비일 뿐이다.”라는 답변이었죠.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진짜 중요한 문화가 무엇인가’이지, 남들과 함께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 동경대ㆍ연세대 거쳐 우리대학에서 3번째로 교수생활을 시작하게 되는데, 세 대학 학생들을 비교해본다면?

포스텍에 온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지금의 포스텍 학생들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어요. 동경대 학생들은 서울대 학생들과 비슷해요. 공부를 열심히 하고, 대학원 진학생들은 정말 우수하고 성실하죠. 교수의 입장에서는 최고의 학생들이죠.

연세대 학생들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잘 논다’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학생들이 대학원에 와서 공부하는 데 조금은 어려움을 느낍니다. 상대적으로 진지한 연구자의 자세를 가진 학생들이 적기도 하고, 공부에 몰입하는 것도 조금 떨어지고요. 그래도 대학원에 와서 몰입하기 시작하면 잘하는 학생들입니다. 하지만 학부 때 여러 활동을 통해 폭넓은 대인관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는다고 알고 있어요. 대인관계, 리더십, 커뮤니케이션 등 학교 공부 외적인 부분에서 많은 성장을 하는 것 같습니다.

포스텍 학생들은, 대학원 재학 당시 느낌을 말하자면, 전공지식은 많지만 사회적 능력이 떨어집니다. 사회적 능력은 학문 세계에서도 성공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능력입니다. 규모가 작고 학교가 지방에 있는 탓에 학교 외에는 커뮤니티가 없어 생기는 일이지만, 전반적인 인격 형성을 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기회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 포스테키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얼마 전 게시판에서 학교 축제에 너무 많은 인력과 노력이 동원되어 학업에 방해되는 것이 아닌가하고 우려하는 학생의 글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앞의 대답처럼 포스텍 학생들에게 부족한 사회적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장려해야 할 것들입니다. 축제에 참여하는 것이 학업에 방해되는 학생들은 참여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공부하면 될 일이죠. 포스테키안들이 사회에 나갔을 때 가장 부족함을 느끼게 될 부분이 경험의 부족에서 온다고 봐요. 공부도 좋지만 많은 경험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방학 때 학교에 있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 대학에 바라는 점은?

현재 학교는 위기 상태에 있습니다. 외부에서 봤을 때 과거의 포스텍보다 위상이 떨어졌습니다. 포스텍은 ‘세계 일류수준의 연구중심대학’이라는 목표가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포스텍은 학생ㆍ교수ㆍ연구설비에서 국내 최고의 연구중심대학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포스텍의 과거를 돌아보면, 지난 25년간 이룬 일들은 대부분 설립 초기 10년 동안 이룬 일들입니다. 포스텍을 다시 뜯어고치지 않으면 더 이상의 발전은 없을 것입니다. 현재의 흐름대로 카이스트가 이공계의 중심이 되면 좋은 학생들이 모두 카이스트로 가버릴 것입니다. 변화가 필요하지만, 학교가 나이가 들어 경직되어 있어 변화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개교 때만큼의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또한 학교의 구성원들은 마음을 열어 변화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