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인문학
[특집]인문학
  • 신동기 / 신구대 경영학과 겸임교수
  • 승인 2010.05.05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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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내 것으로 만들 것인가?

올해 초 애플사의 CEO 스티브 잡스는 iPad를 시연하면서 프레젠테이션 말미에 iPad는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을 찾는 과정에서 이룰 수 있는 성과였다고 말했다. 세계인을 매혹한 iPad라는 작품이 단순히 기술의 총화가 아닌 ‘기술과 인문학’의 합작품이라는 이야기이다.

몇 년 전부터 국내 유수 기업들이 인문학을 들고 나오기 시작했다. 포스코를 선두로 하여 롯데ㆍ현대건설ㆍ국민은행 등 내로라하는 조직들이 장기적인 조직 성장의 한 수단으로 인문학을 선택한 것이다. 세계 최고 경영인이 신상품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인문학을 언급하고, 굴지의 국내 기업들이 인문학을 조직의 발전과 조직 구성원의 성장 수단으로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다니엘 핑크라는 미래학자는 자신의 저서 <새로운 미래가 온다>에서 미래가 필요로 하는 인재형으로 ‘High Concept’과 ‘High Touch’를 들고 있다. ‘High Concept’은 창의성을 의미하고 ‘High Touch’는 사람관계 능력을 말한다. 경쟁력 있는 인재가 되기 위해서는 창의성과 사람 관계 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클린턴 행정부 때 초대 노동부 장관을 지냈던 로버트 라이시는 자신의 저서 <부유한 노예>에서 미래의 인재형으로 ‘Geek’와 ‘Shrink’를 들고 있다. ‘Geek’는 엉뚱한 발상을 하는 사람으로 창의성을 갖춘 이를 의미하고, ‘Shrink’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가진 이로 인간관계를 잘할 수 있는 사람을 뜻한다.

그렇다면 두 사람이 주장하는 창의성과 인간관계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수단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인문학이다. 인도의 힌두교와 불교 철학에 심취한 스티브 잡스의 “IT와 인문학의 합작품”이라는 말이 바로 그 증거이고, 세계 일류를 지향하는 국내 유수 기업들이 인문학을 들고 나온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 새로운 출판 장르로 등장한 자기 계발 분야는 이제 출판계의 가장 중요한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자기 계발은 자아의 성장과 함께 인간관계 향상을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이 자기 계발서 내용의 대부분 원전은 다름 아닌 인문학이다. 성경과 논어를 필두로 해서 동서양의 역사 속에서 엣센스만을 뽑아내 읽기 쉽게 풀어낸 내용이 바로 자기 계발서의 주류를 이룬다. 인간관계 능력을 향상시키는 열쇠는 다름 아닌 인문학에 있다는 근거이다.

창의성이 가장 요구되는 분야는 광고계나 예술ㆍ문학 그리고 고도의 의사결정을 요구하는 조직 경영과 같은 영역들이다. 광고계나 예술은 가히 그리스로마 신화의 종합 전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브랜드 네이밍에서 스토리텔링까지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빌려온 예들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그림이나 음악겳П?또는 영화에 있어서도 그 사용된 모티브를 그리스로마 신화나 역사 그리고 성경 내용을 빼놓고는 이야기를 할 수 없을 정도이다.

문학 역시 당연히 신화ㆍ종교ㆍ철학 등 인문학 고전에 크게 빚을 지고 있다. 300조 원 이상의 경제효과를 유발한 해리포터 시리즈 역시 예외가 아니다. 북유럽에서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온 신화 내용을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판타지 소설로 구성한 것이 바로 이 해리포터 시리즈이다.

고도의 종합적이고 직관적인 의사결정을 필요로 하는 CEO들은 인문학의 핵심고객이다. 처칠과 네루가 <로마제국쇠망사>를 평생 참모로 삼고,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 역시 일본 근대사를 다룬 <료마가 간다>를 조직 경영을 위한 지혜의 원천이자 삶의 지침으로 삼고 있다. 우리나라의 적지 않은 경영자들 역시 막다른 골목에 부딪칠 때 그 해답을 역사와 성경 또는 철학과 같은 인문학에서 찾고 있다.

자연과학 분야라고 예외는 아니다. 전자기 유도 현상을 발견한 마이클 패러데이(1791~1867)가 전자기 유도 현상의 원리를 그의 종교적 믿음에서 가져왔고, 다윈(1809~1882)과 같은 혁신적인 인물도 맬서스의 인구론에서 진화론을 설명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빌려왔다. ‘불확실성의 원리’ 이론을 주장한 하이젠베르크는 그리스 철학에 조예가 깊은 과학자로 알려져 있다. 어떻게 보면 자연과학에서 가장 멀리해야 할 것 같은 ‘불확실성’을 이야기하는 ‘불확정성의 원리’가 하이젠베르크에 의해 주장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철학에 대한 그의 깊은 이해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결국 창의성은 광고부터 시작해 자연과학에 이르기까지 인문학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창의성과 인간관계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인문학을 어떻게 하면 내 것으로 만들 수가 있을까.

인문학 학습은 3단계로 나눌 수 있다. 1단계는 15개 테마로 된 ‘인문학 바탕지식’의 틀을 갖추는 것이고, 2단계는 1단계의 바탕 위에 자신의 관심분야로 좁혀 각론적인 학습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3단계는 1단계와 2단계 학습에 기초해 인문학을 문제 해결이나 글쓰기, 새로운 아이디어 개발, 사람 관계 향상 등 자신의 관심 사항에나 업무에 직접 적용하고 응용해보는 단계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1단계이다. 모든 학습은 범주를 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유교의 학습 범위를 사서삼경으로 정한 것이나 구약ㆍ신약을 39권(또는 46권), 27권으로 확정하는 것이 바로 카테고리를 정하는 작업이다.

인문학은 인간과 관련된 문화를 다루는 분야이다. 따라서 인문학은 신화ㆍ종교ㆍ철학ㆍ역사ㆍ정치ㆍ경제 그리고 자연과학과 같이 모든 분야를 아우른다. 그리고 각 분야별로 현실적 유용성과 바탕지식성을 고려해 주요 테마를 선정하면 ①그리스ㆍ로마 신화 ②불교 ③성경 ④동양철학사 ⑤플라톤ㆍ아리스토텔레스 ⑥서양철학사 ⑦동양고대사 ⑧로마제국사 ⑨영국사 ⑩일본사 ⑪우리나라 역사 ⑫사회계약론 ⑬신자유주의와 신경제 ⑭국부론과 자본론Ⅰ ⑮자연과학사와 같은 15개 테마이다<표 참조>.

이 15개 테마를 학습하는 데 있어 포인트는 각 테마를 세세한 내용까지 다루는 것이 아니고 각 테마별로 전체적인 틀과 주요내용만을 다루는 것이다. 학습자들의 유용성을 극대화시키면서 동시에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깊이와 넓이로 범위를 잡아야 할 필요가 있다.

대학생활에서 인문학 전반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갖추면서 아울러 인문학에 대한 ‘맛’을 본다면 그 이후 대학생활 동안 인문학 각론 과목에 대한 관심 유발은 물론 계획적이고도 알찬 독서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20대 초반 인문학 주요 테마에 대한 전반적인 학습은 대학생활 4년 동안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대학 졸업 이후에도 정신적인 풍요로움과 주도적인 삶 그리고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종합적인 시각을 잃지 않는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

세계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낸 대학교는 하버드나 케임브리지가 아니다. 1891년 세워진 시카고대학이다. 세계 유수대학 중 그리 길지 않은 119년의 역사를 가진 시카고대학이 70명 이상의 노벨상 수상자를 낸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인문학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1929년 5대 총장으로 부임한 로버트 허친스가 제안한 ‘철학고전을 비롯한 세계의 위대한 고전 100권을 달달 외울 정도로 읽지 않은 학생은 졸업을 시키지 않겠다.’라는, 일명 ‘시카고 플랜’이라는 인문학 프로젝트가 오늘날의 그러한 결과를 가져왔다.

통섭이나 인문학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이제 더 이상 새삼스레 강조할 필요가 없다. 그 중요하다는 통섭과 인문학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필요한 이들에게 자기 것으로 만들도록 할 수 있는지 그 솔루션이 제시되어야 할 때이다.

20대 초에 인문학의 기본을 갖추는 것은 그야말로 인류의 축적된 지혜로 이루어진 거인의 어깨 위에서 삶을 출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종합적이고 균형 잡힌 통찰력을 갖추게 됨으로써 개인의 성장은 물론이고 건전한 사회발전도 함께 기대할 수 있다. 당연지사 노벨상도 따라올 것이다. 시카고 대학이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