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동산]수학적 사고
[노벨동산]수학적 사고
  • 장수영 / 산경 교수
  • 승인 2010.05.05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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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적 사고는 우리에게 매우 유용하다. 수학적 사고 덕분에 현대 과학기술 문명이 꽃피웠고, 우리는 그 문명의 열매를 향유한다. 그런데 그 열매의 향유가 공짜로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사실 깊은 생각 없이 수학을 생각하면, 수학은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과 같은 ‘조용한’ 명제들의 집합체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조용하다’는 형용사를 사용한 것은 그 명제들이 어떤 주장도 담고 있지 않으며, 어떤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려 하지도 않는 듯 하다는 뜻에서 선택한 말이다. 도대체 수학이 무슨 주장과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수단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영향을 준다. “망치를 든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우습긴 하지만 따끔한 진실을 담고 있는 말이 아닐 수 없다. 현대 기술과 오늘날의 대중문화에 대한 까칠한 비평으로 유명한 닐 포스트만(Neil Postman)은 “미국인들이 현대 기술에 대한 사랑에 빠져 진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라고 탄식한 적이 있다. 사실 매우 유용한 도구나 연장은 그 주인의 사랑을 받는다. 그것을 어찌 나무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모든 사랑이 그렇듯이 수단에 대한 사랑도 우리로 하여금 눈이 멀게 한다. 시력을 잃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에는 큰 영향을 주는 것이다.

수학적 논리의 세계가 갖는 정연함에 매료된 우리의 마음은 우리가 처한 현실 자체가 갖는 불확실성과 애매모호함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이런 마음을 갖게 되면, 우리는 모든 불확실성과 애매모호함을 피해보려 한다. 그래도 여의치 않아 그 상황을 직면해야 한다면 그 상황을 전체로 파악하기보다는 이해 가능한 작은 조각으로 잘게 나누려 한다. 이러한 잘게 나눔, 곧 분석을 통해 상황에 대한 탁월한 직관을 얻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작은 조각들은 전체의 맥락을 떠난 잘못된 상황 인식에 이르기 쉽다. 잘게 나누어진 작은 이해의 조각들은 종종 파편화된 인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작은 조각들의 모임이 전체가 될 수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를 구분해야 한다. 우리의 삶이 ‘의-식-주’의 충족 위에 존속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의 삶을 ‘의-식-주’의 합으로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 사람이 누리는 ‘의-식-주’의 어떠함을 더하여 그의 삶의 무게를 측정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생명 윤리에 대한 사상으로 유명한 한스 요나스는 분석적 사고가 갖는 위험을 경고하면서, “만일 우리가 세상을 파악 가능한 작은 조각들의 조합일 뿐이라는 방식으로 바라보고 믿게 되면, 우리는 파악된 작은 조각을 조합하여 세상을 구축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우리 몸속의 생명 현상을 전기 신호와 화학적 반응으로 파악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러한 지식은 그 자체가 갖는 흥미로움뿐 아니라 치명적 질병의 치료 방법을 개발할 수 있게 하여 모진 병마를 이길 수 있게 하는 유익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과학적 산물의 향유 속에서 우리는 “흠, 그러니까 생명 현상이 전기신호와 화학적 반응으로 구성되어있구나.”라는 각성과 함께, 계속 나누고 쪼개 간다면 “생명은 전기 신호와 화학적 반응으로 환원될 수 있겠다.”라는 극히 제한적인 현실 인식에까지 다다르게 한다. 그리 되면 생명현상 속에 존재하는 우연성과 신비의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전기 신호와 화학적 신호만으로 설명되는 것만을 생명현상으로 인식하려는 극히 제한된 현실 인식 속에 자신을 가두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인식된 삶에 ‘행복’, ‘사랑’, ‘고귀함’이라는 가치가 설 자리는 매우 좁아질 것이니, 그의 인식뿐 아니라 그의 삶마저 척박해질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으리라.

수학을 활용하여 그 유용성의 열매는 향유하되 수학적 사고 속에 ‘조용히’ 설득 당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 것은 과연 가능할까? 아마도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노력해볼 수는 있다고 믿는다. 수학적 방법론의 열매는 누리되 그 도구에 대한 사랑에 빠지지는 말아야 하리라.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는 광고 카피가 생각난다. 그렇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여 흥분하고, 실망하고, 기뻐하고 눈물 흘리는 많은 수들을 접할 때, “흠 그것은 단지 숫자일 뿐이야.”라는 생각을 가져 보면 어떨까? “진정 중요한 삶의 가치는 어떤 수로도 환원될 수 없다.”라는 생각을 마음에 되새기자. 그렇게 바라볼 때, 나의 삶은 일차원인 數직선상에 묶여있지 않게 되며, 2차원, 3차원, 다차원의 부피를 갖게 될 것이다. 그만큼 우리의 삶도 풍요롭게 될 것이다. 알 수 없는 영원한 신비 그 자체로 자신을 인식하고 세상을 인식하는 생각의 넉넉함이 우리 삶에 넘치게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