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오름돌]포스테키안의 '잔인한 4월'
[78오름돌]포스테키안의 '잔인한 4월'
  • 정해성 기자
  • 승인 2010.05.05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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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은 가장 잔인한 달 /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길러내고 /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 겨우내 잠든 뿌리를 봄비로 흔들어 깨운다.’ T.S 엘리엇의 ‘황무지’에 나온 이 시의 첫 구절을 들어 사람들은 흔히 ‘4월은 잔인한 달’이라 말한다. 유난히 늦게 봄을 알려온 2010년 4월은 어떤 해보다 잔인했던 4월이었다.

아직도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천안함의 침몰, 천안함 장병 구조를 위해 물속에 들어갔다가 참변을 당한 한주호 준위, 천안함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가 사고로 침몰한 저인망어선 금양 98호, 링스헬기 추락, 철원에서 일어난 총기사고 등 수많은 사건이 일어났다. 한 달이 지난 오늘도 차가운 바다에서 탈출하고 싶어도 나갈 수도 없는 딱딱한 쇠로 갇힌 공간 속에서 살려달라고 외치며 억울하게 생을 마감했을 천안함 희생자들을 생각하면 쏟아지는 슬픔을 막을 수 없다.

천안함 침몰에 대한 필자와 필자 주변의 모습을 보면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필자에게 잔인했던 4월은 그저 밀려오는 숙제와 중간고사를 준비하며 더 많이 공부하지 못함을 슬퍼한 다른 의미의 ‘잔인한 4월’이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연일 쏟아져 나오는 천안함 사고의 기사만 읽을 뿐, 직접 임시분향소에 가서 추모하지는 못했다.

개인적인 일이 있어 추모 기간 중에 기회가 생겨 가게 된 대전에서는 여기저기서 천안함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플래카드를 볼 수 있었으며, 5월 1일 유니스트에서 열린 포스텍-카이스트-유니스트 축구ㆍ농구 교류전의 개회식 식전에서는 천안함 희생자들을 위해 묵념을 하는 시간이 있었다. 우리대학 주변에서 느낄 수 있는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는 느낌을 주었다.

돈을 내어 플래카드를 내거는 것과 식전에 잠깐 시간을 내어 하는 묵념은 큰 힘을 들이지 않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추모를 한다는 것이 꼭 돈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대학에서는 나라를 위해 병역의 의무를 다하다가 꽃다운 나이에 저세상으로 가버린 그들을 기억하려는 모습은 보기 힘들었다. 알게 모르게 그들을 추모하거나 학교에서 운영하는 조문버스를 타고 직접 조문을 다녀온 학우들도 있었을 것이다.

최근 포스텍 리더십센터의 프로그램 중 하나인 멘토십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멘토 선생님인 양명승 한국원자력연구원장님으로부터 조언을 얻을 기회가 있었다. 학부생 시절 이야기를 하며 그는 다양한 것을 해보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고 했다. 공부를 다양하게 해보지 못한 것도 있지만, 사회 참여를 해보지 못했다는 곁가지가 필자에게는 더욱 가슴에 와 닿았다.

혹자는 포항이라는 위치 때문에 사회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대도시에 있을 때보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지 못하며, 어떤 현상에 대하여 듣고 같이 토론해볼 기회는 적을 수 있다. 하지만 의지만 있다면 신문ㆍTVㆍ인터넷 등 매체를 이용하여 사회현상에 적극 관심을 가지는 일이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관심마저 끊어버린다면 진정 포스테키안들은 포스텍이라는 사회와는 단절된 곳에 자발적으로 갇혀 공부만 하는 생원과 다를 바가 없다. 밀려오는 시험으로 ‘잔인한 4월’을 보내며 이공계 글로벌 리더가 될 포스테키안들이 수많은 사건 사고로 물든 ‘잔인한 4월’도 한 번 떠올려보길 바라며, 천안함 희생자들과 같은 군인들이 있기에 우리가 지곡골에서 열심히 학업에 열중할 수 있다는 것을 항상 마음에 담아두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