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평론] ☞ The Great Gatsby
[나도평론] ☞ The Great Gatsby
  • 조성열 / 화학 2
  • 승인 1999.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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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대학에 입학하기 전 내가 좋아하는 작가 무라까미 하루끼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을 통해서였다. ‘노르웨이의 숲’을 읽은 사람이라면 그 누가 Gatsby에 대해 무관심할 수 있을까. 위 소설을 통해 강한 인상을 받았던 를 그 다음날 서점에서 찾아 단숨에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또한 이 소설은 정말 영어로 된 원문을 읽고 싶다고 처음으로 느낀 소설로 기억한다. 비록 끝까지 다 읽지 못하고 중간에 그만 두기는 했지만 이 원서는 아직 내 책상 앞에 꽂혀 있다. 그리고 언젠가 때가 되면 다시 정독하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다.

는 F. S. Fitzgerald의 1925년 작품으로, Fitzgerald를 일약 세계적인 작가로 만들어 준 소설이다. 그리고 1920년대의 사회상을 잘 표현한 작품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이 소설은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그리고 이의 환상을 쫓는 한 인물의 몰락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아메리칸 드림에 관한 많은 소설들이 있지만, 특히 는 ‘부와 권력을 통한 그 욕망의 실현’으로 그 달콤함과 허무를 그려내고 있다. Fitzgerald는 이상적인 꿈의 실현을 위해 노력했던 주인공 Gatsby의 삶을 통해 무엇이 우리에게 보다 더 가치 있는 삶인지를 뒤돌아보게 한다. 그가 표현하고 싶었던 궁극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평범하지만은 않은 주인공의 행동, 그리고 삶을 대하는 태도. 비록 결국은 그의 꿈이 좌절하는 것으로 끝을 맺지만, 한편으로 자신의 이상을 목표로 열과 성을 다하여 노력하는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인간의 위대함’을 역설적으로 표현하려 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인상깊게 읽었던 부분 중에서 그의 저작에의 시대적 특성이 나타나 있다고 느껴지는 부분, 그리고 그의 문학적 표현의 아름다움을 보이는 부분을 인용해 보겠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구체성을 띠고 있는 별개의 세계였다. 그 곳에서는 공기를 마시듯 꿈을 들이마시는 유령들이 그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유령들은 일정한 형체도 없는 나무들 사이를 미끄러지듯 지나 그에게로 다가온다. 마치 인간의 모습을 한 잿빛 그림자처럼.”

“혹시 일 년 중에서 낮이 가장 길다는 그 날을 기다리다가 막상 그 날이 오면 깜빡 잊고 지나쳐 버린 일이 없어요? 난 말예요. 항상 그 날을 기다렸으면서도 그만 그 날을 지나쳐 버리지 뭐예요”

안타까움,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으면서도 사실은 그 실체를 알지 못하는 상황. 이것이 내가 이 책을 막 덮었을 때 희미하게 느낀 감상이다. 전체적으로 는 답답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향해가지만, 종종 표현에 있어서 나름의 독특한 비유를 통해 그의 순수한 감수성을, 또한 희극적이기까지 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1차 세계대전 이후 팽배했다던 지식인 사이의 환멸감과 이른바 ‘romantic readiness for life’로 상징되는 ‘새로운 희망과 정렬’, 즉 20년대 미국의 물질화된 문화라는 상반된 가치관 사이에서, 이 소설 는 어쩌면 긍정적인 시각으로 당시 상황을 바라본 것일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다.

Hemingway, Joyce, Faulkner, 그리고 Dos Passos등과 함께, Fitzgerald는 ‘Lost generation’ 작가 군에 포함되는 미국 소설가이다. “유연함과 오만함, 극단적 낙천주의와 자기 파괴적 욕망, 상승 지향과 하향 감각, 도시적 세련미와 중*서부적 소박함이 공존하며 드러나는 세계를 그려내는 것.” 어느 책에서 본, Lost generation 작가군의 주제의식에 대해 그 양상을 간단하게 정리해 놓은 표현들이다. 또한 다른 책에서, 미국문화는 미니멀리즘이란 전통이 있어 최소한의 것만으로 구체적 현실을 표현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말을 읽은 적이 있다. 겉으로는 단순해 보여도 안으로는 단단한 속내를 보이는, 인정받는 미국소설들의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서 말이다. 나는 이에 동의하며, 위의 뉘앙스를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듯 하다.

내가 제대로 이해했다면 요즈음의 90년대 식 한국 소설은 좀 아이러니컬하긴 하지만 혹자는 90년대 초반의 운동권 소설을 더 강조한다, 이런 Lost generation의 미국 소설과 유사한 흐름을 보이는 듯 하다. 나는 76년에 태어나 한국의 90년대적인 시대 상황에 동질감을 느끼고 있다. 90년대 후반, 세기말의 상황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나. 이런 내가 미국 20년대의 Lost generation 작가군의 제스처에 호감을 가지는 것도 이런 뜻으로 풀이 할 수 있지 않을까?
얼마 전 가 미국의 래드클리프 대학, 그리고 랜덤하우스사의 설문조사에서 ‘20세기를 대표하는 소설’에 1?위로 각각 랭크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지금의 미국인들이 이러한 Lost generation 작가들에 대해 느끼는 인상은 과연 어떤 종류의 감상일까? 아직 세상의 물정에 어둡고 미래에 대한 낙관적 기대보다는 불안감이 더 강한 ‘나’의 생각으로는 어쩌면 지금 미국의 상황이라는 것도 우리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세기말의 혼돈의 시대로서 과거 또 다른 정체성 혼란의 시대(Lost generation)를 자연스럽게 느끼고 회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감히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