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인생의 명반] Mezzanine-매시브 어택 (Massive Attack)
[내인생의 명반] Mezzanine-매시브 어택 (Massive Attack)
  • 문중선 / 본지 학생기자
  • 승인 2000.02.1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98년
EMD/VIRGIN 출시
기분이 몹시 우울할 때 (melancholy and the infinite sadness) 우리는 두 가지 극단적인 해소 방법을 취할 수 있다. 우선 신나는 음악(사람에 따라 다르다. 필자는 그런지나 펑크음악이 신나겠지만 사람에 따라서 HOT나 핑클의 노래가 훨씬 신날 수도 있다)에 맞춰서 한껏 우울함을 떨쳐버리면 우울함이 어느 정도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대개 어디까지나 미봉책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우울한 감정을 숨길 수 없게 된다. 다른 방법은 아예 우울함의 끝까지 가보는 것이다. 어차피 슬프다면 이를 피하려 하지말고 온몸으로 우울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구체적 방법으로 트립합 음악을 추천한다.

트립합. 어쩐지 ‘힙합’이라는 글자를 떠올리게 하는 단어다. 실제로 트립합은 환각*중독을 뜻하는 트립(trip)과 힙합(hiphop)의 합성어이다. 사실 ‘힙합은 이런 것이다’라고 정의하기도 힘들고 또한 그런 정의 자체를 힙합에서는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힙합의 뜻은 랩처럼 자유분방하게 생각이나 리듬, 춤을 즐기는 경향 또는 일련의 문화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이러한 두 가지가 합쳐진 트립합이라는 음악은 아마도 몽롱한 분위기 가운데 멜로딕한 노래와는 거리가 조금 있는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음악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 트립합 음악 가운데 필자가 ‘내 인생’을 걸고 소개하는 ‘음반’은 매시브 어택의 최근작인 <메자닌(Mezzanine)>이다. 매시브 어택은 영국 서부의 브리스톨(Bristol) 지역에서 탄생한 밴드이다. 브리스톨은 인구가 포항정도 되는 규모의 도시이다. 그런데도 세계적인 트립합의 3대 아티스트로 불리는 매시브 어택, 트리키(Tricky), 포티쉐드(Postishead)가 모두 브리스톨 출신이다. 극히 일부 마니아 층들만 즐기던 트립합은 지난 94년 즈음 브리스톨 출신 포티쉐드의 <더미(Dummy)>와 매시브어택의 <프로텍션(Protection)>이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며 단숨에 인기 있는 장르로 떠올랐다. <메자닌>은 이렇게 트립합이 이미 주류장르로 떠오른 뒤에 발표된 앨범이라 혁명적 가치는 그다지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메자닌>은 출시전부터 충분히 화제가 되었으며 상업적으로는 오히려 프로텍션을 훨씬 뛰어넘는 성공을 거두었다.

트립합이라는 음악자체가 우울한 데다가 노래도 엉망(?)이라 귀에는 그리 쉽게 익지 않는다. 매우 노력이 필요한데 필자도 처음에 <메자닌> 앨범을 사서는 몇번 듣다가 방안에 처박아두고 한동안 듣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필자는 우연히 영화 ‘오픈 유어 아이즈’를 보게 되었다. 이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얼굴이 망가져 테크노 바 비슷한 곳에서 서글퍼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때 바로 <메자닌>의 ‘Risingson’이 흐르는데 느릿느릿한 비트와 함께 점점 우리를 옥죄어 들어와서 “이제 그만!”이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로 강한 느낌을 주는 곡이다.

영화를 본 뒤 인상에 깊이 남아 다시 이 앨범을 꺼내서 노래 하나하나를 곰씹었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정말 ‘중독되는 것(trip)’과 같은 기분을 느꼈다. 정말이지 기숙사 방에 홀로 누워 조용히 ‘Angel’부터 ‘(Exchange)’에 이르는 열한 곡을 듣고 있으면 온갖 서러움과 싸우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상쾌한(?) 트립합 곡인 ‘Teardrop’과 같은 곡의 박자를 떠올리며 무의식중에 몸을 흔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울증의 여왕’이라고까지 불리는 베쓰 기븐스가 이끄는 포티쉐드의 음악과 더불어 매시브 어택의 음악은 언제나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또한 역설적으로 그만큼 우울감에 빠진 우리들을 위로해 줄 것이다. 단 한가지 경고하자면 그렇다고 해서 침대에서 가만히 음악을 듣다가 라디오헤드의 “We hope that you choke”를 떠올리며 자신의 특정부위를 자해하는 일은 삼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