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평론] <아버지들의 아버지> - 베르나르 베르베르
[나도평론] <아버지들의 아버지> - 베르나르 베르베르
  • 공석영 / 산업 2
  • 승인 2000.03.0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신이 원치않는 진실 외면하려는 경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 필요
이 책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작가중의 하나이다. 중학교 때 처음 ‘개미’라는 책을 읽은 다음부터 작가의 팬이 되어버린 나는 지금까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이라면 무엇이나 빠짐없이 읽어왔고, 이번 책도 내용은 잘 몰랐지만 지은이의 이름만으로 고를 수 있었다.

소설은 인류의 기원을 탐구하던 고생물학자 아제미앙 교수의 죽음에서 시작한다. 교수의 죽음에 의문을 가진 소설의 두 주인공인 과학부 기자 뤼크레스 렘로드와 이지도르 카첸버그는 함께 사건을 취재하기 시작한다. 두 기자는 아제미앙 교수가 클럽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의 회원이었음을 알아내고 아제미앙 교수의 이론을 반대해 왔던, 클럽의 다른 회원 3명의 명단을 입수하는 데 성공한다. 이로서 사건의 실마리가 보이는 듯 하고, 아제미앙 교수가 연구하던 학설을 밝혀낼 수 있을 듯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점점 더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우여곡절 끝에 두 기자는 아프리카의 탄자니아에서 아제미앙 교수가 남긴 편지와 화석을 발견한다. 편지는 주인공들이 추측했던 대로 인류의 기원에 관한 충격적인 사실을 담고 있었다. 알아서는 안 되는 진실을 알게된 충격에 두 기자는 교수가 남긴 화석을 도난당한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주인공들의 손에서 벗어난 화석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게 되고 그들은 하나같이 화석을 없애버리려 노력한다. 그들에게 그 화석은 은폐해야 하는 진실의 유일한 증거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뜻밖에도 고생물학자 콩라드 교수에 의해 화석이 가짜임이 드러나면서 소설은 반전을 하게 된다. 충격적인 진실을 담은 화석이 가짜라는 사실은 두 기자를 다시금 충격에 빠뜨리게 된다. 그렇다면 인류의 기원은 과연 알아낼 수 없는 진실일까? 또한 아제미앙 교수를 죽인 범인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인류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진실을 진실로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눈과 귀를 막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래서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우리에게 ‘진실’이라는 것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진실이란 결국 거짓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사람들은 명백한 진실마저도 그것을 거부해서 거짓으로 만들어버리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어떤 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것을 알고 싶어하지도, 또 알려주고 싶어하지도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아제미앙 교수는 아무도 자신의 이론을 믿어주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진실에 대한 관심을 가지도록 가짜 화석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자살을 한다. 이로서 진실은 마침내 진실이 된다. 아니, 적어도 아제미앙 교수는 사람들이 진실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하는 데에 성공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고정관념과 편견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 동안 지내오면서 지식적인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생활에서도 많은 편견과 고정관념에 휘둘려 내가 원하는 것들만 믿어온 게 아닌지. 주어지는 사실들을 그대로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열린 마음을 갖기 위해 노력하라는 것이 작가가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