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봅시다] 김명곤 국립극장장
[만나봅시다] 김명곤 국립극장장
  • 김혜리 기자
  • 승인 2000.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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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의 향기 물씬 풍기는 영원한 비가비 광대
“여러분도 나이 들어봐. 저절로 가락이 변할겨.”

영화 ‘서편제’에서 딸 오정해에게 호통치던 무서운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수십년 동안 한길을 걸어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관록의 미소를 내내 입가에 물고 있던 그는 지난 4월 27일 ‘판소리의 생명력과 재창조’를 주제로 한 강연 내내 청중을 사로잡고 중강당 안을 웃음으로 몰아갔다.

연극인이자 영화인, 극작가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그는 다양한 경력의 소유자다. 서울대학교 독어교육과를 졸업하고서 교사, 잡지사 편집부 기자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으며 극단 아리랑을 만들고 영화에 얼굴을 내밀고 ‘명인명창’ 등의 저서를 내기도 했다. 93년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 출연으로 명실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배우에 등극하게 되고 제 14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까지 했다.

매일 연극 동아리 방에서 잠을 자다시피 하며 연극에 빠져들었던 학창시절, 그는 우연한 기회에 판소리를 접하고 명창 ‘박초월’ 선생으로부터 사사했다고 한다.

연극인이라고 불러야 할지, 판소리꾼이라 해야할지 헷갈린다며 어떻게 불리는 게 좋으시냐는 질문에 “처음부터 나는 연극인이었다. 판소리가 좋고 명창이 되고 싶었지만 지금 나는 판소리’꾼’이라고는 할 수 없고 그저 비가비 광대일 뿐이다”라고 대답했다.

이런 그가 작년 말 일반공채로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국립극장장이라는 직함을 새로 얻었다. 국립극장장으로 있으면서 그가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는 분야는 창극이라고 한다. 국악이 집대성되고 연극을 접합한 ‘한국판 오페라’인 창극을 키우기 위해 요즘은 국립창극단에서 ‘수궁가’를 준비하고 있다. 또 다른 바램은 일반인에게 사랑받고 세계적으로 이름있는 국립극장을 만드는 것. 그래서 다른 일들을 잠시 접어두고 첫 국립극장장으로서의 책임감을 다하려는 그의 어깨는 한층 더 무거워보였다.

90년대에 서구문명이 활개를 치고 전통문화가 위축되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그는 그래도 ‘서편제’를 통해 전통음악, 판소리의 잠재력을 확신했다고 한다. 서양문화에 물들어가지만 그래도 잠재된 한국인 정서의 뿌리를 느끼고 ‘서편제’에 이어 영화 ‘춘향뎐’의 각색도 맡았던 것이다. 흥행은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칸영화제의 경쟁부문에 거론된 것은 영화 바닥에 깔린 전통 가락과 정서가 외국인에게도 어필할 만큼 영향력이 있는 것이라 했다. 이번 춘향뎐이 칸 영화제에서 어떤 결과를 얻든 서편제에 이어 판소리를 세계에 알려놓았으니 “다음 한국전통영화는 세계 영화제에서 분명히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다”라며 확신했다.

신세대들 자신보다 오히려 신세대들이 우리 음악을 어떻게 느끼는지 잘 알고 있는 그는 “지금 신세대들보다는 장년층이 오히려 더 서구문화에 서서히 익숙해져 있다. 젊은이들이 국악을 이끌어나가려는 움직임이 더 활발해지고 있는 것 같다”며 엘리트 출신의 국악 전공자가 늘어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점에서 우리 음악발전의 가능성을 점쳤다. 또 과학을 하는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는 “현재 큰 극장은 서구 음악에만 맞도록 음향설치를 해두어 우리 음악에는 전혀 적합하지 못하다”면서 전통음악에 음향학, 음성학 등 과학을 접목시키는 시도를 해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학생들에게 한말씀 부탁하자 판소리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느끼고 흥얼대는 가락이라고 생각해 달라는 그. 대학 시절 성악을 좋아하고 괴테와 니체를 읊다가 어느샌가 우리 가락으로 돌아서서 광대로 불리기를 원하는 그에게서 장인의 향기가 물씬 풍겨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