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의 대중문화- 0과 1사이의 사랑싸움
디지털 시대의 대중문화- 0과 1사이의 사랑싸움
  • 안상헌(제일기획 카피라이터)
  • 승인 2000.05.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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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순서
1. 디지털 시대의 광고문법
2. 디지털 시대의 사이버문화
3. 디지털 시대의 문화란 무엇인가
‘잘자! 내꿈꿔!’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너 행복하니?’

40대는 ‘걸고 받기’, 30대는 ‘걸고 받고 음성듣기’, 20대는 ‘걸고 받고 듣고 문자보내기’ 10대는 ‘주머니속의 세상?’ 바로 이동통신관련 광고다. 이러한 것들이 요즈음 가장 치열한 광고의 최전방으로 디지털 시대 광고문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TTL, i touch, N, M 등의 광고를 통해 디지털시대의 광고문법의 변화를 볼 수 있다. ‘292513(이것이 옷일세)’라는 브랜드를 통해 알려진 ‘스톰’에서 예견되었듯이 처음엔 숫자라는 코드로 시작, 한동안 ‘디지털 이라서 어떠하다’라는 식의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를 강조하는 선언식 광고가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디지털이라는 개념은 심플한 대신 생경하기 마련. 그래서 디지털이라는 단순한 개념전달이 아닌 디지털 시대의 하나의 문화코드가 되려고 한다. 예를 들다면 ‘21세기, 디지털 시대가 열립니다’ 라는 헤드라인에서 ‘진짜? 골뱅이?’라는 식의 디지털 어법으로 바뀐다.

알다시피 디지털은 0과 1의 조합이다. 과정을 중시하는 아날로그와 달리 디지털은 결과를 중시한다. 광고에 대한 소비자들의 좋고 싫은 감정은 이전보다 더 빠르게 결정된다. 더 빠르고 미세해진 차이, 그 속에서 사랑받기 위한 광고들의 경쟁이 일어난다. 바로 0과 1사이의 ‘사랑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소녀는 낮잠을 자지 않는다

“사이버 공간에는 계절은 물론 밤낮의 구분도 없다. 인터넷 타임은 태양의 위치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이 시간의 중심이 된다” 인터넷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MIT대 니컬러스 네그로폰테 교수가 말하는 인터넷 세상이다. 인터넷 타임의 단위는 비트, 이를 환산하면 1비트는 1분 26.4초에 해당된다. 예를 들어 포항에서 파리로 전화를 걸어 @219경에 미팅을 갖자는 약속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흥미로운 사실은 기존의 표준시가 그리니치 천문대를 중심으로 한 것에 비해, 인터넷 타임은 스위스에 있는 시계회사 스와치(www.swatch.com)를 기준으로 했다는 사실이다.

인터넷 타임은 아주 작은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디지털이 만든 사이버 공간은 광고에 있어 새로운 화두다. 현실과 가상공간 사이의 이동이 자유롭고 익명성이라는 장점까지 더하니 21세기 에덴 동산인 셈이다. 그래서 화려한 화면을 보여주다가 깨어보니 꿈이라는 식의 광고문법은 디지털 시대에 통하지 않을 성 싶다. 이제 광고속의 소녀는 꿈을 꾸기 위해 낮잠을 자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광고를 보여준다.

▲ ‘잘자! 내 꿈은 내가 해석한다’ - 설명이 없으면 각양각색으로 해석되는 광고, 친절한 설명이 필요없이 그 자체가 기억으로 남는 광고다. 소비자 나름의 해석이 주는 상상력을 극대화한 방법이다. TTL ‘소녀’ 편과 마이클럽닷컴의 ‘선영아 사랑해’ 같은 류가 이에 해당한다.

▲ ‘예순살의 011?’ - 테크놀로지는 인간의 심리와 만날때 그 영향력을 발휘하기 마련이다. 어려운 디지털이라는 개념을 쉽게 소화하고자 하는 노력이 돋보이는 광고이다. 삼성전자의 ‘또 하나의 가족’, 네이버의 ‘사랑검색’편은 이를 잘 보여준다.

▲ ‘파도 타러 갈래?’ - N세대의 일상을 통해 디지털시대를 여과없이 보여준다. 011 n top이나 016, 017, 018 광고에 등장하는 이동통신은 단순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아닌 희망사항의 실현과 감정의 변화까지 읽어주고 있다.

▲ ‘클릭은 피보다 진하다’ - 디지털 시대의 개인은 사이버 커뮤니티를 통해 같은 브랜드를 사용함으로서 자유롭게 소속감을 맛볼 수 있다. 브랜드를 통해 소비자를 묶어주자는 아이디어다. 나우누리 ‘파란피’, 천리안 ‘진짜 골뱅이’ 삼성 프린터 ‘난 컬러로 숨을 쉰다’ , 코넷의 ‘6mm’ 등이 그 것이다.

▲ ‘감각의 제국?’ - 비논리의 논리가 등장한다. 바로 논리보다는 감성이라는 코드로 상식을 뒤엎는다. 스니커즈의 ‘초코바로 맞을래’, 롯데리아 ‘버거소녀’, 하이트맥주의 ‘목말라’ 편은 감성의 코드를 잘 살리고 있다.


디지털 시대의 식스 센스

문화평론가 정진홍 교수는 그의 저서 ‘아톰@비트’를 통해 이렇게 이야기 한다. “각 시대엔 시대에 맞는 로직(logic)이 필요하다. 디지털 시대엔 산업시대의 그늘속에서 이성과 논리에 의해 밀려났던 직관이나 감성이 아주 중요해진다.” 지금까지 주먹구구로 여겨졌던 ‘감(感)’라는 것이 디지털 시대엔 감동의 패스워드로 등장한 것이다. 콜럼부스가 발견했던 신대륙, 그 대륙 너머로 ‘감성의 신대륙’이 펼쳐진다. 예전같으면 명쾌한 스토리에 설명적인 카피가 광고의 필수요건이었지만, 요즈음엔 비논리가 되어도 결과적으로 소비자의 인식속의 하나의 코드만 잡을 수 있다면 문제가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점점 다양한 광고문법이 씌여지고 있다. 좀더 다른 그림과 스토리를 통해 인터넷 검색 건수만큼이나 많고 털끝만한 차이로 가부가 결정나는 소비자의 니즈(needs)를 잡으려고 노력한다.

중국 혁명의 아버지 모택동의 어록엔 이런 말이 나온다. ‘혁명의 시대, 모든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만약 그가 2000년 광고현장에 온다면 이런 말을 남기지 않을까? ‘디지털 시대, 모든 감동은 ‘털’끝 차이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