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랭크 인, 문화 충전소! #3 인디음악
크랭크 인, 문화 충전소! #3 인디음악
  • 이용우 / 대중음악 평론가
  • 승인 2003.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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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질문. 2002년 가요계 최고의 승자로 손꼽지 않으면 서운해 할 윤도현 밴드와 체리 필터의 공통점은? 두 번째 질문. 지난 해 컬트적인 인기를 모은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에서 이나영이 연기한 경, 그리고 올 초 개봉한 영화 <마들렌>에서 박정아가 연기한 성혜의 공통점은? 세 번째 질문. 크라잉 넛, 델리 스파이스, 넬의 공통점은? 마지막 질문. 앞서 세 가지 질문으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이 문제들의 정답은 바로 인디(indie)이다.

인디란 말은 더 이상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인디펜던트의 약자라는 것, 메이저의 공고한 시스템과는 ‘다른’ 자발적인 대중예술 씬을 의미한다는 것을 부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서울 홍대 앞과 신촌을 중심으로 라이브 클럽이 우후죽순 들어서고 젊은 뮤지션들과 죽돌이(clubber)들이 모여들며 하나의 흐름을 이루고, 기형적인 한국 대중음악의 대안으로 성마른 기대를 받은 ‘좋았던 옛 시절’에 대해서는 더 반복해서 이야기 하지 않겠다.

현재 한국의 인디음악 씬은 ‘잔치’가 끝나고 철시(撤市)도 완료된 것처럼 보인다. 정말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5-6년 전의 활기와 비교할 순 없다 해도 여전히 인디 씬은 현재진행형이다.

물론 많은 라이브 클럽들이 문을 닫았고, 남아 있는 클럽의 활기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반면 저예산으로 자가제작한 인디 음반들은 꾸준히 발매되고 있다. 디지털 테크놀러지의 발달로 홈 레코딩 및 음반 발매가 더 용이해졌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겠지만. 달리 표현하자면 현재 인디 씬은 폐허 속에 새싹들이 움트고 있는 모습이다. EP 음반 발매가 비용과 부담의 절감, 즉 효용성면에서 선호되는 현상에서 볼 수 있듯, 더 이상 인디 프리미엄이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각개약진으로 하나씩 단계를 밟겠다는 생각이 인디 음악인 사이에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유기적이지 못하고 각개전투의 양상을 보이지만, ‘움직임’ 자체는 계속되고 있다.

인디 씬의 음악 스타일은 오히려 그 이전에 비해 더 다양해 보인다. ‘전통’의 펑크 록을 비롯해, 얼터너티브 메탈, 기타 팝, 일렉트로니카, 힙합, 턴테이블리즘, 훵크, 포스트록, 트위팝, 포크 등 수많은 스타일들이 동거하고 있다. 단일 장르로는 주석, 다 크루 등을 배출한 힙합이 독자적인 세를 형성한지 오래고, 일렉트로니카는 마약 단속 같은 주기적인 악재에도 불구하고 건재하다. DJ 소울스케이프처럼 턴테이블리즘이란 새로운 ‘DJ의 예술’을 실천하는 무리들도 늘어나고 있다. 최근 메이저 가요계의 한 축을 형성했다고도 볼수 있는 매력적인 여성 보컬이 주도하는 ‘가요 필 나는 한국형 모던 록’이나 스타일간 합종연횡이 보편화된 형태도 인디의 다양성에서 성숙되어 나간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제 인디 씬에 주류를 전복하겠다거나, 주류의 대안이 되겠다는 공허한 강박은 없다. 대안은 연역적인 것이 아니라 귀납적인 것이라고, 지금처럼 다양한 음악적 실천과 전유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는 과정에서 나올 거라고 말하는 듯하다.

현재 인디 씬의 상황은 인디의 본연을 상기시켜 준다. 흔히들 주류 음악이 최대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올인’하는 동안, 인디 음악은 나름의 느슨한 네트워크에서 주류 음악과는 다른 혹은 거기서 누락된 음악들을 생산하고 소통시킨다고 말한다. 또 주류 음악이 직업적 기예와 유흥으로 무장한 채 우리 삶과 유리될 때마다, 음악의 ‘본연’을 일깨워준다고도 말한다. 어떤 자발성(DIY: Do It Yourself)과 자율성(indie) 말이다. 아직 인디가 유효하다면, 바로 그런 맥락에서이다. 이것은 사소한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