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현장] 푸리 10주년 기념 공연 ‘길’ (10. 11 ~ 12)
[문화현장] 푸리 10주년 기념 공연 ‘길’ (10. 11 ~ 12)
  • 류정은 기자
  • 승인 2003.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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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타악의 새 길을 연 한국 음악의 전령
맺힌 것을 풀어 조화롭게 한다는 의미를 가진 푸리의 공연이 지난 11일, 서울 LG 아트센터에서 있었다. 이번 공연은 푸리 창단 10주년 기념 공연이면서 동시에 국내에서 정식으로 갖는 첫 공연이었다. ‘길’ 이라는 공연 타이틀에서도 느낄 수 있듯 그들은 이번 공연을 지난 10년 동안의 음악을 돌아보며 개척자로서의 의지를 다짐하는 음악적 정체성과 방향을 보여주는 자리로 큰 무게를 두었다.

리더인 중요 무형문화재 ‘대취타 및 피리 정악’ 이수자이며 국악작곡가인 원일(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타악연주자인 김웅식, 판소리를 전공한 소리꾼 한승석, 객원 연주자인 전 긱스 멤버였던 베이시스트 정재일로 구성된 이번 푸리 3기 역시 정통 국악을 배운 멤버들답게 진지한 우리 음악을 풀어가면서도, 그것이 지루한 것이 되지 않게끔 항상 새로운 방법을 모색한다.

이날 공연에서는 앞으로의 한국 음악의 길을 기원하며 비장감을 담아 ‘푸리비나리’라는 의식곡을 연주했고 ‘In a landscape’, ‘간’ 등의 실험적인 작품도 연주했다. 힘찬 네 남자의 목소리, 타악과 해금의 선율이 어우러진 ‘달빛항해’를 연주했다. 지리한 음악이 되지 않게끔 항상 고민한다는 그들의 우려를 뒤엎고 공연장은 신명과 환호성으로 가득했다. 또한 이 자리에는 재일교포인 피아니스트 양방언씨가 함께 하여 국악과의 즐거운 교류를 묘사했다.

한편 ‘자룡 활쏘다’ 라는 곡에서 판소리 적벽가의 한 대목을 각색, 다양한 리듬과 성음, 다양한 악기의 조합으로 타악그룹을 넘어서서 소리그룹으로의 음악적 확대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또한 1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답게 1기와 2기 주자들도 함께 자리하여 원일이 작곡한 ‘궁궁’이라는 곡도 선보였다. 노란색과 파란색 원색의 조명이 그들의 역동적이고 힘찬 음악과 어우러지면서 그들의 시원시원한 음악의 깊이에 객석에서는 앵콜이 터져나왔다. 정재일의 피아노와 한승석의 소리로 마무리된 앵콜곡 ‘추억’은 유랑 음예인들을 추모하는 마무리로 푸리 그룹의 진정성을 증명했다.

최근에 퓨전 국악 쪽의 음악을 하는 많은 그룹이 생겨났지만 아직은 그 음악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상태이다. 서양 음악의 형식이나 곡조를 우리 악기로 연주하는 것을 퓨전 국악이라 하는 사람도 있고 악기간의 결합 자체를 퓨전 국악이라 하는 사람들도 있다. 푸리 역시 국악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있다. 국악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실험하면서 우리의 소리에서 현대적 감각에 맞는 것을 찾아내고 우리 음악의 느낌과 형식을 현대적으로 표현하며 우리의 것을 재음미하고 재해석하려는 노력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 날은 공연뿐만 아니라 푸리의 새 앨범이 나오는 날이기도 했다. 공연 중에 김웅식 씨는 “10년 동안 활동하면서 이제야 두 번째 앨범이 나왔어요.”라고 부끄러운 듯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그들의 앨범 2장에는 그들의 10년 활동을 고스란히 담은 음악작업과 철학이 충분히 녹아있다. 첫 앨범 ‘이동’에서 국악 창작의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정체성을 확보해가고 국제적인 활동을 했고 이번에 나온 ‘길’에서는 10년 동안 고민해왔던 정체성 문제를 되짚으면서 그들 음악의 길에 대한 성찰과 다짐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진지한 음악 활동, 우리 악기 특유의 매력인 쨍함과 신명, 고답적이지 않은 신선함과 실험적인 모색, 네 명의 남성이 창출해내는 화통함과 역동성의 조화, 그리고 열정적으로 넘치는 에너지. 그 에너지 때문인지 그들의 공연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외국인들과 젊은 팬들. 이것은 그들이 10년 동안 꾸준히 추구해 온 음악이 이루어 낸 것들이다. 공연장을 떠나면서, 서두름 없이, 지속적으로, 재미있게 그러나 치열하게 작품을 만들고 연주해 한국 음악의 전령이 되겠다는 푸리 멤버들의 다짐처럼 그들의 음악이 국악의 새 길을 만들어 가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