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해변의 카프카 / 무라카미 하루키 저
[리뷰] 해변의 카프카 / 무라카미 하루키 저
  • 최윤섭 / 컴공 01
  • 승인 2003.10.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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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 가출 소년의 방황과 그 끝은
▲ 해변의 카프카 책 표지
무라카미 하루키가 <태엽 감는 새> 이후 7년 만에 장편 소설, <해변의 카프카>를 발표했다. 오랫동안 그의 신작을 기다려 왔던 국내의 많은 하루키 매니아들에게 가뭄 속의 단비와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해변의 카프카는 전작들에서 보여준 폭넓은 상상력과 문학적인 깊이가 더해져 23년의 하루키 문학을 집대성하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그리스 신화와 일본 고대문학에 대한 깊은 고찰을 모티프로 인간 삶의 원형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소설은 전작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처럼 두개의 이야기를 축으로 사건을 전개시켜 나간다. 열다섯 살 생일을 맞은 소년은 ‘오이디푸스’에 나오는 “너는 언젠가 그 손으로 아버지를 죽이고, 언젠가 어머니와 관계를 맺게 될 것이다.” 라는 아버지의 예언을 피해 집을 나온 후, 자신에게 ‘카프카’ 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한다. 그는 시코쿠의 고무라 도서관에 운명처럼 이끌리게 되고 그 곳에 머물면서 떠나가 버린 어머니처럼 느껴지는 사에키 상 그리고 그녀의 생령과 만나게 되는 초현실적인 체험을 한다. 또 다른 하나의 이야기의 주인공은 어릴 적 미스터리한 사건으로 글자를 읽는 능력을 잃어버리지만 고양이와 대화 할 수 있게 된 나카타 상이다. 집 나간 고양이를 찾아주는 일을 하던 그는, 고양이를 납치해 배를 갈라 심장을 먹고 고양이 머리를 수집하는 조니 워커를 만나게 된다. 조니 워커의 부탁대로 그를 살해한 나카타 상은 알 수 없는 힘에 끌려 그 역시 시코쿠를 향해 간다. 나카타가 죽인 것은 바로 카프카의 아버지였음이 밝혀지고, 그 날 카프카도 그날의 기억을 잃어버린 채 피투성이가 된다. 카프카와 나카타는 조니 워커의 죽음을 매개로 시공을 뛰어 넘어 연결되며 이야기는 급박하게 전개된다.

소설의 제목과 어린 주인공은 이 난해한 소설을 이해하기 위한 키 포인트다. 왜 하필 15살의 주인공이어야 했을까. 유년시절의 종말과 성인의 시작의 기로에 서 있는 인간은 아직 고착되지 않은 인간성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으며, 자기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외부의 부조리한 세계에 대항해 몸부림치는 시기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카프카’는 인간 운명의 부조리성과 존재의 불안에 대해서 통찰했던 실존주의 문학자 프란츠 카프카와 같은 이름인 동시에 일본어로 ‘카(可) 후카(不可), 즉 ‘옳으냐 그르냐’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는 삶과 죽음, 아이와 어른, 선과 악 등의 상반된 두 세계의 경계를 의미한다. 또한 제목에서 나타나는 ‘해변’은 육지와 바다의 경계인 동시에 카프카가 도달하게 되는 세계의 끝과 또한 시작이기도 한 극적인 전환의 장소였다.

이번 작품에서 하루키는 평소와는 달리, 다양한 인물들의 개성을 살리기 위해 3인칭 기법을 시도했다. 카프카의 이야기는 1인칭 방식으로 주인공의 내면세계를 그려내었다면, 나카타 상의 이야기는 3인칭 기법으로 폭력과 부조리로 가득찬 세계상을 명확히 드러내려고 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소설에는 각자 뚜렷한 색깔을 가지고 저마다 살아 움직이는 독특한 인물들이 조화를 이룬다. 그리고 현실세계의 인물들과 그들의 내면세계의 분신을 의미하는 인물들을 절묘하게 등장시킴으로써 인물의 외면과 내면세계를 동시에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추리 소설을 연상케 하는 급박한 스토리 전개와 퍼즐을 하나하나 맞추어 가는 듯한 미스터리적 요소, 환타지를 넘나드는 작품의 성격이 독자들에게 주는 흡입력은 대단하다. 이러한 전개 속에서도 요시모토 바나나를 연상 시키는 미려하고 환상적이면서도 담백한 여운이 남는 문체를 보여주고 있다.

하루키가 원했던 것처럼 이 소설이 <카라마조프의 형제들>과 같은 총합 소설로서 세계 문학사의 불후의 명작으로 남을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전작들에 비해 원숙미가 물씬 느껴지는 멋진 작품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세계에서 가장 터프한 15살 소년 다무라 카프카 군이 방황 끝에 얻게 된 결론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와 같은 시기를 막 지나서 어른의 출발점에 선 우리의 삶에도 이 작품이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으리라 생각된다.